평신도 사도직-1,000명 입교운동 - 박종권의 사담기
평신도 사도직-1,000명 입교운동 - 박종권의 사담기
  • 시사안성
  • 승인 2019.10.2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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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 - 39
선교운동 계획서/ 천주교 안성 대천동 성당이 2004.5.3~9.5일까지 100일간 예비신자 1,000명을 목표로 입교운동을 벌이기 위해 발간한 선교계획서 책자의 표지 사진
선교운동 계획서/ 천주교 안성 대천동 성당이 2004.5.3~9.5일까지 100일간 예비신자 1,000명을 목표로 입교운동을 벌이기 위해 발간한 선교계획서 책자의 표지 사진

필자는 20045월 천주교 대천동 성당 사목평의회(이하 사목회) 총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 주임신부가 이끄는 새 신자 1,000명을 목표로 계획한 새 가족 찾기선교운동에 참여하여 불과 100일 만에 1,188명을 입교시키는 사도직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강정근(마티아)신부는 이 운동을 선포하면서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길을 안내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라고 독려하였다.

신자들(당시 4,842)이 짧은 기간 안에 차근차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6단계 선교법실행이다. 이 소식이 가톨릭 매체를 통하여 전국에 알려지자, 선교사례 특강 요청이 폭주하였고 강 신부는 필자를 강사로 파견하기에 이르렀다(추후 수원교구청 복음화국으로 이관하였음).

입교식 언론기사/ 2004.9.8(수)일 대천동 성당 신자들이 벌인 전 방위 선교운동 전개로 1,188명의 예비신자를 맞아들이는 입교식 행사를 소개한 신문기사
입교식 언론기사/ 2004.9.8(수)일 대천동 성당 신자들이 벌인 전 방위 선교운동 전개로 1,188명의 예비신자를 맞아들이는 입교식 행사를 소개한 신문기사

200410.5일 대구 불로동 성당 선교세미나 특강을 비롯하여 포항 연일 성당 주일미사 강론, 마산교구청 선교분과위원장 연수회 등에 초대되어 <소공동체 선교의 효율적인 방안>이란 주제로 본당 구역, 반 공동체의 단계적 선교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성공의 비결 등을 잠시 소개하면, 우선 신자 한 사람이 비신자 1명씩을 입교 시킨다는 목표아래 입교식 날짜(95일 오전10)를 미리 제시함으로써 성당 좌석이 꽉 차있는 흐뭇한 모습을 미리 생각하게 하였다.

선교계획은 선교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2004.5.30-9.5일 까지 100일간 준비단계 22, 실행단계 40, 총력단계 17, 결실단계 21일간을 카운트다운 하면서 대내적, 대외적 홍보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기도와 교육이다. 기도 방법은 고리기도(24시간 끊기지 않게), 9일기도(구역, 반별 약 90일간), 금식기도와 성체조배를 구역별로 시행한다. 한 밤 중이라도 고리기도 다음 순번자에게 연락하면 나도 깨어 있다는 기쁨으로 이어 받는데서 벅찬 감명을 느끼게 된다.

총회장 임명 모습/ 2004.8.1일 천주교 대천동 성당 강정근 주임신부가 필자에게 본당 사목평의회 총회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총회장 임명 모습/ 2004.8.1일 천주교 대천동 성당 강정근 주임신부가 필자에게 본당 사목평의회 총회장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선교교육 방법은 선교세미나, 구역 파견미사(“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구역별 사례공유, 구역장 반장교육(회계, 서기까지 참석)과 타 본당 선교법 강의, 그리고 매 미사 때 마다 사제의 강론(講論)을 듣는 것이었다.

입교운동의 핵심적인 방법은 소공동체 도우미 제도였다. 본당 내 11개 지역, 45개 구역 내에 조직되어 있는 반()모임의 세포조직 사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23명의 자매님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사전에 묵상회를 통하여 관상(觀想)기도와 성()독서법(Lectio Divina)으로 무장된 사람들로서 주임신부와 구역, 반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한다. 필자도 소성당에서 한 시간 동안 정좌(正坐)하여 참선하는 묵상기도에 참여 한바 있었는데 상당히 힘들었다.

다음은 선교정신이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마르 16,15)는 성경 말씀에 따라 기다리지 않고 두루 다니면서 이방 민족에게 까지 복음을 전파하였던 초대교회 정신을 그대로 본 받는 것이었다.

의식화도 중요하다. 본당 내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실패한다. “믿고 기도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입교식 날 성당을 꽉 메운 예비자들을 생각하자” “내 자신이 하나의 불씨가 되자하면서 마인드 컨트럴기법으로 큰 소리로 다짐하면서 구호도 힘차게 제창하였다.

안성지구 마리아군단 창단 모습/ 1981.5.23일 안성 구포동 성당에서 가진 신심단체(‘레지오 마리애 꼬미시움’) 창단식 미사와 행사를 마치고 성직자와 신자 간부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안성지구 마리아군단 창단 모습/ 1981.5.23일 안성 구포동 성당에서 가진 신심단체(‘레지오 마리애 꼬미시움’) 창단식 미사와 행사를 마치고 성직자와 신자 간부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총력 단계에서는 매일 성당에 들러 기도 후 짝을 지어 출발하여 가두선교와 방문선교를 전개하였고, 구역별 이웃초대의 날과 외짝교우 초대 행사, 자기가 선교한 입교대상자 명단을 각자 제대(祭臺)에 봉헌하는 것으로 총력을 다 하였다.

선교운동 마지막 단계인 결실단계(8.16~9.5)에 다다르자 놀랍게도 마감 전인 823일 오후 330분 현재, 입교 대상자가 1,000명을 돌파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리면서 환호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실단계에서는 입교식 준비, 예비자에게 보내는 주임신부의 서한 발송, 예비자 교리서 책자 구입과 교리반(20~30) 편성, 교리교사(25명 정도) 선정, 시간표 작성 및 교실(40~50) 배정 등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구포동 성당 영세기념/ 1982.12.18일 천주교 구포동성당(당시명칭) 총회장 재직 시 새 신자들의 세례성사를 마치고 주임신부와 대부 대모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구포동 성당 영세기념/ 1982.12.18일 천주교 구포동성당(당시명칭) 총회장 재직 시 새 신자들의 세례성사를 마치고 주임신부와 대부 대모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부족한 교실은 요일별 분산으로 해결(20개 교실로 충분)할 수 있었으나 복잡한 시간표 편성은 중고등학교에서 시간표 작성을 경험했던 교원이 사목위원으로 있어서, 쉽게 해결 할 수가 있었다.

교리반은 노인, 일반, 주부, 직장인, 초등, 중등학생으로 각각 구분하여 편성 하였다. 성당에 교리공부를 나올 수 없는 장애인에게는 수녀님이 가정을 방문하여 담당하였다. 외국인 특별반과 통신교리 대상자 등을 세심하게 따져서 배려하였다.

드디어 200495(주일) 오전10시 입교식은 신자 및 예비자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열렸고 주임신부는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움을 찾기 위해 나온 분들이 우리 공동체의 한 가족이 된 것을 환영 한다.”고 인사하였다.

200주년 기념위원 임명장/ 1983.9.9일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위원회(위원장 윤공희 대주교)로부터 받은 임명장 사본/ 필자는 1984.5.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으로 서울여의도에서 거행된 ‘103위 시성식’에 참례한 후 교황이 주관하는 전국 사목회의에 참가하게 된다
200주년 기념위원 임명장/ 1983.9.9일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위원회(위원장 윤공희 대주교)로부터 받은 임명장 사본/ 필자는 1984.5.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으로 서울여의도에서 거행된 ‘103위 시성식’에 참례한 후 교황이 주관하는 전국 사목회의에 참가하게 된다

이날 입교식이 끝난 오후에는 예비신자들을 위한 환영회가 풍물과 함께하는 큰 잔치 가운데에서 열렸으며, 대천동 성당은 입교한 신자들을 포함, 5,000여명이 넘는 큰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전 신자들은 교구장 최덕기(바오로)주교로부터 묵주(黙珠) 하나씩을 선물로 받았다.

평신도사도직(平信徒使徒職)이란 교회 내 평신도가 복음 증거 사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서 그 역할이 매우 중대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중세시대에서는 역사적으로 평신도의 권한이 성직자로 부터 제한되어 왔었다.

필자가 평신도로서 사도직을 활발하게 수행하기 시작한 것은 40대 초반인 198121일 안성 구포동 성당(주임신부 이정운 베드로)에서 사목회 부회장 겸 전례분과위원장으로 임명 되면서 부터이다.

천주교 신자 영성교육 수료식/ 1985.8.1~4일 까지 3박4일간 수원교구청에서 열린 사도직 ‘꾸르실료 남성 제32차 교육’을 주관하고 나서 참가자 일동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천주교 신자 영성교육 수료식/ 1985.8.1~4일 까지 3박4일간 수원교구청에서 열린 사도직 ‘꾸르실료 남성 제32차 교육’을 주관하고 나서 참가자 일동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1982년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 군단) ‘꾸리아(Curia)’ 단장 취임에 이어 상급평의회인 꼬미씨움(Comitium)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다. 1983년엔 윤공희 대주교로부터 한국천주교회 200주년기념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984년엔 필자로서는 처음으로 본당 총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마침, 같은 해 5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리는 ‘103위 시성식전례에 참여하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임석 하에 가톨릭대학 마리아 홀에서 별도로 개최되는 전국 사목회의 개회식에 대의원으로 참석(1층 나열 400)하여 영광스럽게도 교황님과 악수로 알현할 기회를 가졌다.

1985년엔 스페인에서 들여온 평신도 재교육 운동인 천주교 수원교구 꾸르실료(Cursillo)' 교육회장이 되어 34일 일정을 주관하였고 매년 교육 일정이 있을 때 마다 교수부장, 신심부장 또는 교육회장으로 여러 차례 활동하게 된다.

총회장 연수회/ 2009.7.4~5일 천주교 수원교구 평신도 협의회 주관으로 교구청에서 가진 총회장 하계연수 및 교구장과의 만남 행사가 끝난 후 찍은 단체사진
총회장 연수회/ 2009.7.4~5일 천주교 수원교구 평신도 협의회 주관으로 교구청에서 가진 총회장 하계연수 및 교구장과의 만남 행사가 끝난 후 찍은 단체사진

교적(敎籍)이 원래 안성성당 소속인데 안성지구 관할변경으로 한때 대천동으로 이적 되어서도 총회장을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신자 수 증가로 다시 안성성당으로 편입된 필자는 20086월 박형주(안드레아) 주임신부로 부터 불림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4년 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서 봉사직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성경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2005년부터는 7년에 걸쳐서 성 바오로 딸 수도회시청각통신 성서교육원에 계속 등록하기도 하였다. 구약, 신약성서 입문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중급과정과 성 바오로 신학 영성 과정에 이르기 까지 수료하여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려면 정의와 사회교리 실천을 위한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한 때는 성지 인근 자연 생태환경을 파괴하려는 시설 설치반대를 위해 신자들과 함께 단식투쟁, 노숙투쟁, 관청 앞 밤샘시위 등을 지원하거나 어깨띠를 두르고 직접 참가하기도 하였다.

십자가 순례 행사 모습/ 2013.9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1963)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안성성당 십자가 도보순례단이 행렬(대천동 성당 출발)에 앞서 전례를 주관하고 있는 사제와 신자일행
십자가 순례 행사 모습/ 2013.9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1963) 50주년 기념으로 열린 안성성당 십자가 도보순례단이 행렬(대천동 성당 출발)에 앞서 전례를 주관하고 있는 사제와 신자일행

안성 땅은 신앙적으로 미리내 성지와 죽산 성지가 있는 복 받은 땅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안성성당을 설립한 공베르 안또니오(한국명 공안국) 신부가 순교한 역사적 증거를 모아 로마 교황청에 복자(福者, 성인 전 단계) 품위에 올려 달라는 시복(諡福) 청원이 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 공안국 안또니오 사제가 시복되어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면 안성 땅에는 또 하나의 성지로 공식 지정되어 국내외 순례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성성당 본 성전은 현재 경기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82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010월에는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본 성전 앞에 또 하나의 100주년 기념성전을 지어 봉헌하기도 하였다.

2004년에 신축한 100주년 기념관은 최근 박물관 형식으로 리모델링되어 역사자료 및 서적 3500여점, 미술품 46, 제의 78, 전례물 기타 48점 등 총 3672점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비공개이며 성지(聖地) 추진이 마무리 된다면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독자 참고사항> 성당 명칭: 공베르 신부가 안성 땅에 부임(1900.10.19.)하여 설립한 성당 명칭은 안성성당이다. 1970대천동성당을 분가하면서 구분하기위하여 구포동성당으로 변경하였으나 2000100주년 때 다시 안성성당으로 환원(교구장 승인)하였음. 1985년 문화재 신청 당시 명칭이 구포동성당이었으므로 안성(구포동)성당으로 혼용되기도 한다.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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