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랜 세월 동안 불러온 노래 중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곡이 있다. 한국 통기타 대중가요의 초창기 가수인 서유석의 노래이다. 노래가 발표되었던 당시 스무 살 무렵이었던 나는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창곡으로 즐겨 부르고 있다.
오래 전에 나는 서유석씨를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서유석씨가 건네준 명함에 두 곡의 이름이 적혀있었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가는 세월>이었다.
대학원에서 헤르만 헤세 문학을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독일어로 된 헤세의 시집을 읽어나가다가 놀랍게도 예전에 내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와 똑같은 시를 접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아름다운 사람> 노래의 노랫말이 다름 아닌 헤세의 시였던 것이다. 1914년 경 헤세가 약 38세쯤에 쓴 그 시의 원 제목은 <아름다운 여인 Die Schöne>이다.
2009년에 헤세도서관장을 맡게 되었던 나는 헤세의 시와 관련된 대표적인 두 가수 서유석과 김정식을 초청하여 <헤르만 헤세의 시와 노래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서유석은 스스로 말하기를 “헤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시를 접했을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동기로 인하여 이 시를 노래로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식구가 많은 대가족의 집안에 형수가 시집을 와 온갖 힘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형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아름’이라는 말이 열매가 충분히 무르익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이 사람을 수식하는 말로 쓰여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 노래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여기에서는 헤세의 원시 <아름다운 여인>을 번역시로 함께 감상해보자.
아름다운 여인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껴안고,
그리곤 부셔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걸 준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아이처럼,
그대는 내가 드린 내 마음을, 예쁜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장난하듯이 쥐고서,
그 마음이 쓰리고 고통당하는 걸, 알지 못하네.
이 시는 시적 자아가 품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상대방 여인이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에서 느끼는 ‘안타까운 짝사랑의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헤세는 언젠가 자신에게는 여성과의 사랑의 관계가 늘 수월하지 않고 어려웠다는 것을 고백한 적이 있다. 헤세가 이 시를 쓴 시기는 이미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베르눌리와 결혼한 지 10년 정도 지난 시기이다. 헤세가 어떤 여성에 대해 품었던 짝사랑의 마음이 이 시의 배경이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서유석은 헤세의 원시 내용을 거의 변형시키지 않았는데, “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라는 후렴구를 첨가한 것이 특징적이다. 후렴구가 첨가된 노래는 여러 차례 “아름다운 나의 여인”을 부르면서 흡사 짝사랑의 여인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듯한 분위기가 더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서유석은 이 곡을 경쾌한 리듬에다가 호소력이 있는 멜로디로 작곡하였다.
<헤르만 헤세의 시와 노래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에 서유석씨와 얘기를 나누던 중 내가 <아름다운 사람> 노래를 어려서부터 수십 년 동안 즐겨 불러왔노라고 말하자, 서유석씨는 즉석에서 노래를 듀엣으로 함께 하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서유석씨와 함께 <아름다운 사람>을 이중창으로 부르는 인상적인 무대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때 노래가 끝나자마자 무대에서 서유석씨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했던 말: “교수님 중에 이렇게 기타를 잘 치는 분은 처음 보았어요!”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