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숙 도예작가는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지난 2013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했고, 2013년 남원 아시아 공모전 우수상 등 여러차례 수상했고, 20차례에 걸쳐 단체전을 펼친 도예작가다.
현재 양성면 조일리에서 “흙뚜박이야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비워서 더 아름다운 것
도예를 하면서 나는 자주 옛것을 바라본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을수록 오래된 것들 속에서 답을 찾게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사진을 배우는 작가들과 함께 한옥 고택을 찾아갔다.
카메라를 들고 바라본 한옥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사진을 찍는 눈으로 바라보니, 익숙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낮게 내려앉은 지붕과 휘어진 나무 기둥,
반듯하지 않은 돌담과 마당 한쪽에 놓인 오래된 항아리.
어느 것 하나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은데 멋이 있고,
꾸미지 않았는데 깊이가 있었다.
한옥의 처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담장도, 휘어진 나무도,
반듯하지 않은 돌 하나까지도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조용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래된 것들은 낡은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덜어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도자기를 빚는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아름다움을 배우고 있다.
많이 꾸미기보다 덜어내고,
꽉 채우기보다 비워두고,
반듯하게 만들기보다 흙이 가진 자연스러운 선을 따라가는 것.
이번 한옥 여행에서 특히 오래 바라본 것은 옹기 항아리였다.
한옥의 마당에 줄지어 놓인 수많은 항아리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저 항아리들은 무엇을 담기 위해
저렇게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간장과 된장, 곡식과 김치였을까.
계절이 건네준 것들을 차곡차곡 담았을 것이다.
집집마다 담으려 했던 것은 서로 달랐겠지만,
그 안에는 한 가족의 먹을거리뿐 아니라
그 집의 계절과 시간, 그리고 살아가는 마음까지도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항아리는 자신이 무엇을 담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옹기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담아내기 위해 자신을 비워놓은 그릇이다.
그제야 그릇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릇은 많이 채워져 있을 때보다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비워져 있을 때
비로소 그릇다운 모습을 갖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채워놓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어진다.
조금 비워놓아야
다른 생각도 들어오고,
새로운 마음도 머물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도 그랬다.
지붕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기보다 부드럽고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마당은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고 빈 공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 빈자리 때문에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지나갈 자리도 생겼다.
비어 있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집이었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내가 만들고 있는 도자기를 생각했다.
도예를 하면서 나는 형태를 만들고 선을 만들며
무언가를 더해 작품을 완성하려 한다.
하지만 오래된 그릇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릇 안에 남겨진 빈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옛것을 그대로 따라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마음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좋은 그릇은 자신의 존재를 크게 외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더 잘 보이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준다.
한옥도 그렇고 옹기도 그렇다.
오래된 것들은 시간과 싸우지 않는다.
빛이 바래면 바랜 대로,
금이 가면 금이 간 대로,
세월이 남긴 흔적을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오래된 것에는
새것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깊은 표정이 있다.
사진을 찍으며 한옥의 지붕선을 따라가 보았다.
휘어진 소나무 가지 하나가 기와지붕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사람이 만든 집과 자연이 만든 나무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한 장면 안에서 조용히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도 이런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에 남는 것.
화려한 색보다 흙의 결이 살아 있고,
완벽하게 반듯한 것보다 조금은 흔들리고,
조금은 비어 있는 것.
세월이 지나도 곁에 두고 싶은 것.
아마 내가 옛것을 바라보는 이유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옛것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법보다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이번에는 한옥을 사진에 담았지만
사진 속에 담긴 것은 오래된 집 한 채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있었고,
사람의 손길이 있었고,
비워둔 마당이 있었고,
무언가를 오래 담아왔던 항아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선 나는
다시 흙을 생각했다.
흙은 불을 만나야 비로소 하나의 그릇이 된다.
하지만 그릇이 된 뒤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 안에 남겨둔 빈자리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담을 수 있도록 얼마나 비워둘 것인가.
옛 한옥과 항아리 앞에서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흙 한 덩이를 손에 올려놓는다.
오늘은 조금 덜 만들고,
조금 더 비워볼까.
시간이 흘러 누군가 내 도자기를 바라보았을 때
“참 화려하다”는 말보다
“참 편안하다.”
그 한마디를 들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을 만들고 싶다.
옛것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새로운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비움의 아름다움이었다.
— 도예가 강은숙


멋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