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와 조병화
헤르만 헤세와 조병화
  • 시사안성
  • 승인 2023.11.0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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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고 편운 조병화 시인

안성을 대표하는 시인 중에 편운 조병화 시인이 있다. 헤르만 헤세 문학 전문가인 내가 헤세 문학이 한국 작가에게 미친 영향을 연구할 때, 조병화 시인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의 시인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조병화가 헤세의 문학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289일 헤세가 사망하자 조병화는 경향신문<은혜>라는 제목의 애도시를 싣는다. 그 시에서 조병화는 헤세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렇게 고백한다:

 

생명의 폭풍우 속에서

청춘의 검은 방황 속에서

스스로의 영혼으로 안내해 준

당신은 최초의 내 안내인이었습니다.

 

이 시에서 또한 조병화는 헤세가 외로움과 즐거움이 같이 흐르는 곳 / 빛과 어둠이 같이 흐르는 곳을 살아왔다고 말하면서, 양극성을 내포하는 단일성의 세계를 추구한 헤세 문학의 진수를 간파했다.

1957년에 쓴 시 <안개>에서 조병화는 나무도 돌도 사람도 사라지는 기억 아득히 / 모두 호올로 제각기 자기 자리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헤세의 유명한 시 <안개 속에서>와 아주 유사한 내용과 주제를 보여준다. 헤세는 이 시의 제1연에 이렇게 쓴다:

 

수풀과 돌은 저마다 고독하고,

나무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헤세와 조병화 모두 외로운 인간 존재와 고독한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헤세는 자연에서 무엇보다도 구름을 노래한 시인이다. <흰 구름>이라는 헤세의 시가 특히 아름답고 유명하다. 적지 않은 한국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이 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와 자작곡 가수 김정식이 어린 시절에 이 시로부터 커다란 감동을 받아 시인과 예술가가 되었다. 그래서 2012년 헤세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이 두 분을 모시고 목원대학교에서 헤세문학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조병화 역시 헤세와 마찬가지로 구름을 소재로 하여 많은 시를 썼다. 조병화는 심지어 자신의 호마저 편운(片雲)”, 즉 조각구름이다. <모나코>라는 시에서 조병화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지금 선인장 만발한 / 모나코 구름다리 / 층계에 앉아 / 하루를 머물다 가는 / 조각 구름 / 어딜 가나 나그네다.” 고 하면서 정처없이 외롭게 떠도는 방랑의 인생을 토로한다.

한편 조병화는 1963년에 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시에서 의미심장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낸다.

 

이 세상, 문물, 만사가

헛되고 헛된 것이라 하지만

생은 다만 자릴 바꿀 뿐

강물처럼 그저 한자리

있는것이다

 

변화하고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이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지속되는 영속적인 삶이 이어진다는 초월적 시간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병화는 고독과 방랑을 노래하는 헤세의 서정적, 낭만주의적 시문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조병화는 낭만주의적 동경과 함께 영원하고 절대적인 초월적 세계를 강하게 추구한 헤세의 신비주의적 문학과 영성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시인이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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