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스 그라시아스 세고비아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고비아
  • 시사안성
  • 승인 2023.06.29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기념관 지하에 있는 세고비아의 묘소
기념관 지하에 있는 세고비아의 묘소

6년 전 대학에서 명예퇴직을 하자마자, 아내와 내가 향한 곳은 스페인이었다. 예전에 나 혼자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은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은퇴 기념 여행을 겸하여 스페인에서 플라멩코 기타 연주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향했고, 그중에서도 지중해를 끼고 있는 말라가 근교 토레몰리노스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바닷가 지역을 우선적으로 물색했던 것이다. 우리가 거처로 잡은 집의 부엌 식당에서 보면,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보였다. 우리는 이때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풍광을 마음껏 만끽했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바닷가에 닿는데, 우리는 수시로 바닷가를 산책했다. 그 바닷가 해변의 이름은 “Costa del Sol(코스타 델 솔)”이었는데, 이것은 태양의 바닷가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그 해변 지역은 거의 쾌청한 날씨가 이어졌다. 우리가 머물렀던 그해 봄 70일 동안에 비가 온 날은 그저 2~3일이 채 안 될 정도였다.

또 하나 즐거운 것은 말라가 공항에서 수시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집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말라가 공항에는 510분이 멀다 할 정도로 낮이나 밤이나 많은 비행기들이 뜨고 내렸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저 멀리 바다 위 작은 점으로 시작되는데, 착륙하려고 공항으로 다가오면서 바다 표면 가까이 내려오면 그 커다란 형체를 드러낸다. 나는 매일 같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정작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영어로 기타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기타 선생에게 플라멩코를 배우고자 한 목표는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오는 플라멩코 기타 음악을 열심히 감상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세비아에서 관람한 플라멩코 공연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잊을 수 없는 것은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의 기념관을 방문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기타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기타리스트는 단연코 안드레스 세고비아이다. 안달루시아 북쪽 지방 하엔(Jaen) 근처에 있는 리나레스(Linares)라는 작은 마을이 세고비아의 고향이다. 그곳에 세고비아의 기념관이 있다.

기타리스트로서 세고비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기념관을 방문하고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고비아는 훨씬 더 위대한 기타리스트요 음악가였던 것이다.

기념관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였던 기타 3대와 많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고비아는 94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연주 활동을 했다. 기타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기타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그의 업적에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기념관 밑 지하에는 그의 무덤이 있었다. 그의 묘소는 대체로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념관 전체를 친절하게 소개하며 안내해 준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국에서 온 나에게 특별히 세고비아의 묘소 참배를 허용해 주었다.

평생동안 기타를 사랑해 온 나에게 세고비아는 너무나도 고마운 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 기타를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악기로 만들어주신 기념비적인 기타리스트가 아닌가!

세고비아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그에게 이렇게 인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고비아,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고비아! ...”(무척이나 감사해요, 세고비아! 무척이나...)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