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음악: 라리아네 축제
내 인생의 음악: 라리아네 축제
  • 시사안성
  • 승인 2021.04.2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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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25
이종민 교수의 책 표지
이종민 교수의 책 표지

작년에 이종민 교수로부터 내 인생의 음악이라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전북대학교 영문과에 재직하고 있었던 이 교수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인데, 자신의 정년퇴임 기념으로 글을 모아 책을 엮어 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종민의 음악편지: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를 비롯하여 몇 권의 음악 관련 책을 출간할 정도로 음악에 아주 조예가 깊다. 나는 그의 제안으로 필진에 참여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내 인생의 음악편지>>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116명의 필자들이 함께한 이 책을 나는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종민 교수의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비롯하여, 귀한 필자들의 인생곡사연에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오랜 세월 동안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소중한 인생곡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6살 때 옆집 친구한테 배운 최초의 동요 <산바람 강바람>을 비롯하여, 15살 때 나를 클래식 기타의 세계로 이끌어준 슈베르트의 <자장가>, 그리고 모든 노래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나뭇잎 배> 등 여러 곡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모든 노래와 연주곡들 중에서 내 인생 최고의 곡을 단 하나만 말하라면, 나는 단연코 <Feste Lariane 라리아네 축제>를 들 수밖에 없다. 이 곡은 이탈리아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겸 악기제작가인 루이지 모짜니 Luigi Mozzani(1869~1943)가 작곡한 클래식 기타 연주곡이다. 나는 22살 때 어느 연주회에서 이 곡을 처음 접하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 후 45년의 세월 동안 나는 이 곡을 수천 번도 넘게 연주해오고 있다.

여러 해 전 로렌초 미켈리라는 이탈리아 기타리스트가 한국에 와서 연주회를 열었다. 연주회 뒤풀이 자리에서 나는 마침 그의 옆에 앉게 되었기에, 오랫동안 이 곡의 제목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라리아네 Lariane’라리오 Lario’2격이며, ‘라리오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북쪽으로 60km 떨어져 있는 코모 호수의 라틴어 이름이라는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나는 이 곡을 연주해왔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이 곡 제목이 라리오의 축제”, “코모 호수의 축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 곡의 제목이 대부분 라리아네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라리아네라리오의라는 2격의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2격 조사 를 덧붙일 필요 없이 라리오네 축제라고 하면 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곡의 제목은 축제인데 곡의 분위기는 왜 그렇게 슬프냐고. 그랬더니 그는 비록 축제일지라도, 그 축제와 관련된 어떤 슬픈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 옛날 이 곡을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그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한다. 곡의 주선율이 어쩌면 그리도 애잔하면서 아름다운지... 이 곡은 처음에 주제선율이 화음으로 진행되다가, 1변주에서는 분산화음으로 반주음형이 변형된다. 그리고는 트레몰로 주법으로 제2변주가 연주되면서 마무리가 된다. 당시 나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던 이 곡이 아름다운 트레몰로로 나의 영혼까지 울리게 되자, 나는 그 순간에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클래식 기타를 내 인생에서 결코 놓지 않아야겠다.”

코모 호숫가의 풍경
코모 호숫가의 풍경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인터넷 사진과 영상을 통해 아름다운 코모 호수의 풍광을 감상했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젊은 시절에 나는 헤르만 헤세가 인생 후반기 40여 년 간을 살았던 스위스 몽타뇰라 헤세의 집에 가 본적이 있다. 헤세의 집 앞에는 저 아래쪽에 루가노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나의 인생곡이 코모 호수의 축제를 의미하는 지도 몰랐고, 코모 호수가 그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 기타리스트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내 인생의 음악 <라리아네 축제>, 그 코모 호수를 바로 옆에 두고도 가보질 못했다니... , 내 남은 삶에 과연 코모 호수를 찾아가 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아무튼 나는 오늘도 집 앞의 금광 호수를 바라보며 <라리아네 축제>를 연주하였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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