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사라" - 내인생의 노래들
"케사라" - 내인생의 노래들
  • 시사안성
  • 승인 2021.03.3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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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24
호세 펠리치아노의 공연 모습
호세 펠리치아노의 공연 모습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수인 호세 펠리치아노이다. 그는 1971년 이탈리아의 산레모 가요제에서 <케사라> 노래를 불러 입상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에서는 호세의 노래가 1970년대 중반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대 초의 나이였던 그 시절, 나는 그의 노래를 수 백 번도 더 들으면서 그에게 푹 빠져 지냈다.

한국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통기타를 연주하는데, 호세 펠리치아노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한다. 그는 장님인데도 불구하고 기타를 너무나도 잘 친다. 그가 연주한 곡들 중에서 내가 오랫동안 가장 좋아하며 연주해 온 곡은 <말라게냐>이다. ‘말라게냐말라가 지방의 아가씨라는 뜻인데, 스페인의 전통음악인 플라멩코 기타 연주곡이다.

몇 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스페인 말라가 지역의 토레몰리노스에서 살다온 적이 있다. 스페인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플라멩코 연주회가 열렸다. 두 사람의 연주자가 기타와 카혼을 연주했는데, 중간 휴식 시간에 기타 연주자와 잠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도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그가 나에게 한 곡 연주해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나는 기타와 플라멩코의 본고장에서 기꺼이 <말라게냐>를 연주했던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 중에서 내가 젊은 시절 가장 많이 즐겨 들었던 곡은 <Rain>()이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즐겨 불러온 노래는 <케사라>이다. 그런데 외국어로 된 이 노랫말이 스페인어인지 이탈리아어인지를 몰랐다. 그러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한국에 온 이탈리아 기타리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마침 이 연주자 옆에 앉게 되었는데, 케사라 노래를 잠깐 들려주고는 노랫말이 어느 나라말이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탈리어였다. 그렇게 해서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여러 해 전 훔볼트 재단 연구교수로 독일 아욱스부르크 대학에 머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리에서 연주회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름 아닌 호세 펠리치아노의 연주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젊어서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호세 펠리치아노를 독일 아욱스부르크에서 보게 될 줄이야... 설렘과 기대감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가, 나는 연주회장에 가서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내 젊은 날의 우상인 호세 펠리치아노의 기타 연주와 노래를 꿈결처럼 지켜보았다. 감회가 깊고, 감동적인 무대였다.

지금도 생각난다. 호세 펠리치아노가 처음 무대로 나올 때, 어느 젊은 여성이 호세의 팔을 잡고 무대 중앙의 의자로 안내했다. 호세가 의자에 앉자, 어느 남자가 호세에게 기타를 가져다주었다. 호세는 기타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타를 재빨리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연주를 다 마친 후, 호세는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그런데 퇴장하면서 그는 뒤에서 함께 연주했던 밴드 연주자들의 악기를 몇 개 연주해 보였다. 우리는 그가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감동적인 연주와 더불어 신선한 시범 연주까지 보여주면서 퇴장을 한 호세 펠리치아노에게 우리는 모두 기립 박수를 치면서 호세, 호세!”를 연호하였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를 서서 연호하면서, 우리는 호세가 다시 무대에 나와 주길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무대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의 열광적인 환호와 앵콜 요청에 호세가 응하질 않아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어렸을 때, 클래식 기타의 세계적 거장인 안드레스 세고비아처럼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고비아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기에, 자기 자신은 이내 유일한 호세 펠리치아노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연유로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는지를 나는 최근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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