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은 왜 빗길 속에서 광란의 질주를 했을까.
기고) 아이들은 왜 빗길 속에서 광란의 질주를 했을까.
  • 시사안성
  • 승인 2018.07.0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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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차량사고, 지역 어른으로서 책임감 느껴.
필자 송상호 목사
필자 송상호 목사

이 글을 쓰기에 앞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먼저 간 아이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그 유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한다.

 

지난 26일 오전 613,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38국도변에서 차량사고가 나서, 중학생 2명과 고등학생 2(모두 4)이 사망하고, 한 명은 중태에 빠졌다. 운전한 사람은 A(18)이었다고 경찰이 밝혔다.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은 하나같이 미성년자, 무면허, 렌트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성년자가 어떻게 운전을 했을까. 면허도 없이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렌트카는 어떻게 빌릴 수 있었을까.

 

이런 기사를 대하는 여론(SNS)도 그 3가지에 휩쓸리고 있는 듯하다. 미성년자를 운전 못하게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둥, 무면허 운전자 처벌을 강화해야 된다는 둥, 미성년자에게 렌트해준 업체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법을 강화해야 된다는 둥.

 

심지어는 불법운전을 했으니 잘 죽었다는 식의 댓글들도 있다. 유족들도 이 글을 볼 수 있기에, 더 충격적인 표현들은 삼가고자 한다. “자신의 가족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원색적인 비판을 떠나 정말 씁쓸하다.

 

한편으론 이런 여론이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2014416일 세월호 참사 때는 이보다 더 심한 반응이 많았으니까.

 

안전교육을 하지 않아서 걔들이 죽었다. 가난한데, 왜 수학여행을 비싼 배를 타고 갔느냐. 배가 기울어질 때 알아서 나오지, 왜 기다리다가 그랬느냐.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데 왜 유난을 떠느냐.......”

 

우리는 이젠 모두 다 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어른들이 걔들을 죽였다는 것을. 탐욕에 눈이 멀어 세월호에 무리한 화물탑재를 함으로써 불러온 참사라는 것을. 사고 이후 골든타임을 놓친 정부의 과오라는 것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투성이의 여러 가지 원인들이 청춘들을 수장시켰다는 것을.

 

사실은 이번 이 사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왜 그들은 광란의 질주를 했을까. 아니 그 빗길을 목숨을 걸고 광란의 질주를 해야만 했을까. 도대체 그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들었을까. 그 답은 세월호에서 찾은 답과 다르지 않다.

 

이 땅에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짐인지 청소년들은 다 안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모두 어른들의 통제에 묶여 산다.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조금만 참으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미래타령 아래 그들은 숨통이 조이고 있다.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부분들을 희생을 강요당하며 산다. 자율보다 통제가 생활화 되어있다.

 

미성년자란 딱지는 그들을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철모르는 아이들이라 취급한다. ‘미성년자란 딱지가 붙으면, 자신의 통장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만들고, 영화도 아무거나 볼 수 없고, 게임도 밤늦게까지 못하고, 교복치마 길이도 어른들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어서 투표조차 못하고, 운전면허는 꿈조차 못 꾼다(사실, 외국의 경우 운전면허 연령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오늘 사고가 난 아이들은 물론 개별적으로야 그날 광란의 질주를 했던 속사정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우리사회의 아들딸이다.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고 갑갑했으면, 그 밤에 광란의 질주를 했을까. 자신들을 문제아라 치부하고, 기회는 전혀 주지 않은 채, “나쁜 짓 하지마라, 담배피고 술 먹지 마라.”등의 수많은 억압이, 그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분출하게 했으리라. 현재를 억압당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이 약할 테고, 성실하게 살기보다 순간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리라.

 

그 밤의 광란의 질주는, 이 시대 어른들을 향해 들소처럼 질주하는, 화난 청소년들의 질주가 아니었을까. 우리도 미성년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번 사고의 핵심은 안성에 사는 사람들이 운전하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무면허 운전, 미성년자, 렌트카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들을 가십거리에 올려놓고 두 번 죽이는 것이고, 유족들과 그들의 친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그들을 보내드려야 할 때이다. 이후 우리가 이 사회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를 고민해야겠다.

 

더아모의집 목사 송상호

 

# 필자 주 : 이글은 사고 다음 날 작성했지만, 유족들에게 혹시 누가 될까봐 이제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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