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의 저금조합 - 매일신보 1911년 10월5일, 6일, 7일 기사
죽산의 저금조합 - 매일신보 1911년 10월5일, 6일, 7일 기사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7.0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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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안성관련 신문읽기 – 10

191110531- 竹山貯金組合

죽산군청에셔는 경내 일반인민의 저축사상을 고발하기 하야 저금조합을 설립하고 사무소는 군청 급 면역소로 지정하얏다는대 기 방법은 군민일동으로 하야곰 조합원을 삼고 매삭 매원이 초혜 일부식을 방매한 대금으로 저축케 하야 거 구월부터 실시하는중인대 목하 조합원은 1244명인대 저금은 3325전에 달한지라 장래를 추상하면 조합원이 5천명이상에 달함은 무려하겠다더라.

매일신보 1911년 10월5일 3면1단
매일신보 1911년 10월5일 3면1단

191110627- 顯微鏡, 竹山

죽산 신설 저금소하니 111초혜가 대금이 부족다로되 잉고발저축사상

매일신보 1911년 10월6일 2면7단
매일신보 1911년 10월6일 2면7단

191110711- 論說, 竹山貯金組合

근일 죽산군청에셔 일반인민의 저축사상을 고발하기 위하야 저금조합을 설립하고 사무소는 군청급면역소로 지정하얏다는대 기 방법은 군민일동이 조합원이 되고 매삭매원이 초혜일부의 대금을 저축케하야 거 구월부터 실시하야 기히 조합원이 1244명이오 저금이 3325전에 달하다하니 이금소견으로 추하면 장래의 전군인인이 병히 조합원되기는 무려할지라

1인의 1월간 1초혜가 기가가 기전에 불과하되 차를 저지하고 저지취하야 하해를 성함과 토양이 취하야 태산을 함을 득할지라

문명열방은 저금사상이 발달하야 귀천남부를 물론하고 매일매월에 자기일용내에셔 기분식 저축하야 혹 불시의 화환을 보충하며 혹 장래의 거자를 적성하야 전국내의 저금총액을 인구에 비교하면 흥왕한 국은 평균매인에 기십원가량이오, 영성한 국이라도 매인기원에 不下하니 차가 즉 피의 웅부천하하는 본원이라 위할지라

자래로 조선은 저금기관이 무할뿐 안이라 설혹 유치한 제도를 설립할지라도 정부의 신용이 추락하야 언필칭 가에 한 자도 아물이라 위키 난하거던 황 공립한 기관에 저한 자야 엇지 허망한 사가 안이리오 하야 수 일분전이라도 자기 낭중외에는 갱히 가저할 처가 하다 하얏스니 자연 남용횡실의 폐가 불무할지라. 연하나 고공토만(古共土墁)의 제도를 고찰하건대 저금의 사상은 전무타 위함이 불가하도다 개 토만은 무우도기에 일개 협혈을 천하야 금전이 차에 납한 에는 갱히 출치 못함으로써 수 여하한 긴용이 유할지라도 능히 취득지 못하다가 금전이 충만한 연후에는 차 토만을 타파하나니 기 구차함을 족히 언할 바이 무나, 연하나 일일 일분이분식 충납하야 완성한 기전기량을 득함은 즉 금일의 저금규모와 무이하도다.

오호-라 왕일에는 저금기관이 하니 저축사상이 유하야도 불능의 난이 유하려니와 금에는 우편급은행이 완립하야 신용이 금석과 하야 일루의 의아가 하니 행아전국동포는 개개히 죽산군을 모방하야 저금조합소를 설립하고 구시 토만의 규모를 이하야 수 기전기십전이라도 근검필저하야 하해태산의 공을 성하면 개개히 자기생활에만 유족할뿐 안이라 전국 경제계에도 필대영향이 유할지니 사할지어다 동포제군이여

매일신보 1911년 10월7일1면1단
매일신보 1911년 10월7일1면1단

 

1911105일과 67일 등 3일 연속 매일신보에 게재된 즉신 저금조합과 관련된 기사다

기사의 형태도 사실전달기사, 현미경, 논설로 다양하다.

그만큼 당시 매일신보나 일제가 관심을 가진 기사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5일 기사의 요지는 죽산군이 저축사상을 고양시키기 위해 저금조합을 만들고, 당시 죽산군민을 가입하게 하고 짚신 판 돈의 일부를 저금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7일자 1면에 실린 논설은 지금은 쓰지 않는 어려운 한자투의 문장이라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 요지는 문명한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저축을 잘했으나 조선에서는 저축기관도 없었고 저축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죽산에서 저금조합을 만들어 저축을 장려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 기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읽을 수 있고, 전문 지식과 당시 역사에 대한 이해, 전후 맥락을 고려한 읽기가 되어야 그 사실관계가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조선말의 경제상황과 화폐제도, 이른바 근대 금융제도의 도입과 전개과정, 그 의미 등 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관계가 파악된 후에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많은 기사다.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른바 식민지 수탈론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한 해석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기자로서는 이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그러한 지점에 대해 판단할 만한 학문적 근거를 제시할 능력이 부족하다.

다만 기사를 통해 어떠한 행위나 사건이라도 그 전후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이 기사를 통해 고공토만(古共土墁)”이라는 전통적 저축방법을 알게 된 것도 기자로서는 소득 중의 하나다.

저금이라는 말은 빨간 돼지 저금통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빨간 돼지 저금통이 저금과 저축의 상징이라면 그것은 어려운 환경과 조건속에서 자신들의 행복보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일생을 성실하게 산 이 땅의 대다수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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