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안성의 지방선거 6- 제1회 동시지방시장선거
(연속기고) 안성의 지방선거 6- 제1회 동시지방시장선거
  • 시사안성
  • 승인 2021.02.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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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 지방선거 6- 1회 동시지방시장선거

홍석완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필자 홍석완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필자 홍석완 한국외국어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필자주 : 안성의 지방선거를 다루면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선거도 중요한 선거이나, 본 고에서는 단체장인 안성시장(군수)선거를 중심으로 서술하기로 한다)

 

1) 안성시장선거

1991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주요 후보들은 완전한 지방자치제의 실시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 정부에서는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피할 수 없어 1995년 지방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기로 하여 1995627일에 제1회 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하여 지금의 7회에 이르고 있다.

안성은 1938년에 읍으로 승격한 후에 60년이 지난 1998년에 시로 승격하였는데 당시 수원과 개성이 같은 해에 승격하였으므로 과거 안성이 타 지역에 비해 매우 성장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1995627일의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안성군수선거였고, 국회의원선거와 2년의 간격을 두기로 하여 임기는 3년으로 하는 선거였다. 후에 상세하게 기술하겠지만 우리 헌정사에서 최초의 동시선거여서 단체장과 함께 도의원과 시의원후보를 같이 선출하는 선거였고 지방의원 희망자도 같이 공천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다.

당시에 중요하게 제기된 문제는 정당공천의 문제였는데 집권당은 단체장은 물론 의원도 무공천을 주장하였고, 민주당 등의 야당은 단체장과 의원까지 공천을 주장하여 최종적으로의 합의는 단체장과 광역의원은 공천을 허용하고 기초의원은 공천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의 파행적인 합의로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집권세력은 무소속의 당선자들을 막강한 중앙권력으로 관리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무공천을 주장한 것이기도 했다. 이후 실제 선거에서는 내천의 형식으로 기초의원까지도 정당이 관여하여 기초의원후보자가 어느 정당의 후보인지 유권자들은 쉽게 분간할 수 있었다.

1회 동시선거와 관련한 안성의 후보상황은 당시 집권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성향이 매우 강하여 여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강하여 단체장은 물론 광역의원 기초의원까지 후보자가간의 경쟁이 치열했으나, 야당의 민주당은 후보자로 나서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광역의원의 경우 당시 세곳의 선거구에서 2곳만 민주당으로 후보등록을 하였고, 기초의원의 경우 안성읍 3명 각 면에서 1명씩을 선출하게 되어 15명의 정원인데, 민주당으로 출마하려는 사람이 없어 단4명만 민주당의 내천으로 선거에 임하였고 단 한곳도 이기지 못하였다.

필자는 민주당의 지구당위원장으로 후보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선거에 나오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설득도 해 보았으나 무소속으로는 출마해도 민주당으로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제1회 동시선거 군수선거 출마자들 포스터
제1회 동시선거 군수선거 출마자들 포스터

1회 동시선거에서 단체장인 안성군수선거에는 신한국당 안성지구당 사무국장을 오래 지내고 각종 선거에서 중요 역할을 한 이동희와 전두환정권에서 사회정화위원장을 지내고 이해구국회의원의 측근인 이종건, 군의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한영식, 그리고 당시 문화원장으로 재직하던 최병찬이 신한국당의 공천을 희망하였으나 국회의원인 이해구는 공천후유증과 부담을 고려하여 당내 경선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750여명의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경선에 돌입하자 당내 기반이 취약했던 한영식과 최병찬은 반발하여 경선에 불참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경선의 과정은 치열하여 불과 30여표의 차이로 이종건이 신승하여 신한국당의 후보가 되었다.

한편 제1야당이던 민주당은 대통령후보와 총재를 지낸 김대중은 1991년 대통령선거 패배후 정계은퇴를 하고 이기택이 당대표를 하고 있었으며, 안성군지구당은 필자가 새롭게 지구당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였다.

필자는 지구당을 새롭게 정비하고 안성군에서 9년간 부군수를 지낸 김정식을 공천하기로 하던 중에, 이기택당대표의 비서실장이 안성에 좋은 단체장후보가 찾아왔는데 군수후보를 어떻게 하고 있나를 물어 온 기억이 있다. 안성에서 부군수를 오래 지낸 사람으로 하는게 좋겠다는 답을 했던 기억이 새로운데 중앙당으로 찾아간 사람은 신한국당의 경선에서 밀린 사람이거나 그의 측근으로 이해하고 있다.

선거는 상당히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지방선거의 특성상 당시 몇 안되는 지역신문의 횡포와 부당한 선거개입도 매우 심하였다.

결과에서 보듯이 신한국당의 이종건이 당선되었고, 무소속의 한영식은 이종건의 경선 상대자인 이동희 조직 등을 흡수하여 300여표의 근소한 차이로 2위를 하였고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이규민이 선거캠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역의 언론이 조합장선거 등에 관여하기도 하였고, 지방선거에는 특정 후보자와 결탁해서 선거에 개입하는 등의 횡포가 극심하여 이규민은 올바른 지역언론의 역할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지역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몇 명의 동료들과 자치안성신문을 창간하였다.

필자도 자치안성신문의 취지에 공감하여 적지 않게 투자했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하기도 하였다. 당시에 일부에서는 자치안성신문도 특정 정치인의 신문이라는 의혹이 있기도 하였다.

선거 직후에 필자가 지역신문의 횡포와 불법을 묵과할 수 없어 관련자료를 첨부해서 검찰에 고발하였는데 조사하는 과정인 검찰대질심문에서 연로한 상대방에게 심하게 대했다. 이후에 해당 지역신문의 대표는 사법처리되어 법정구속을 당하였다.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덕면의 어느 마을회관 준공식에서 이해구의원과 마주쳤는데 대뜸 하는 말이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고발을 잘해, 버릇이 없구만이라고 쏘아 붙여서 대꾸로 자연인 홍석완은 안 그러는데 안성에서 정치하다보니 그렇게 됩니다라고 되받았다. 필자는 지역신문의 불법행위를 고발한이래 주로 안성시장과 국회의원의 불법행위들을 여러 차례 고발해서 고발잘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의 김정식후보도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표를 흡수하여 나름대로 선전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1)에서 보여준다.

(1) 1회 안성군수선거

 

신한국당

민주당

무소속

무소속

후보자

이종건

김정식

최병찬

한영식

득표수

19,704

15,783

6,677

19,413

총유효표

62,273

 

2) 도의원 선거

제1회 동시선거 도의원 출마자 포스터
제1회 동시선거 도의원 출마자 포스터

도의원선거는 91년과 같이 3인을 선출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경쟁이 치열하여 당내 경선을 실시하여 장현수는 현역인 권종철을 이겼고, 허장회는 시의원으로 선회하여 김정기가, 서부권은 현역인 한창섭이 사법처리되어 출마하지 못하고 이해구의 비서출신인 김학용이 최종화를 이겨 후보가 되었고 본선에서 모두 당선되었다.

반면 민주당은 후보를 구하기 어려워 3곳중 2곳에서만 후보를 등록하였다.

 

3) ()의원선거

제1회 동시선거 군(시)의원 선거 출마자 포스터
제1회 동시선거 군(시)의원 선거 출마자 포스터

1995년에는 안성군이었으나 1998년에 시로 승격되어 군의원 15명을 선출하였다. 당선자 15명 모두 친여성향의 인사들이었다.

선거구

당선자

안성읍

이기석

허장회

김기선

보개면

박광식

금광면

임우근

서운면

박노원

미양면

황성기

대덕면

홍승조

양성면

이규달

공도면

최종성

원곡면

이순찬

일죽면

이종천

이죽면

이윤수

삼죽면

장용수

고삼면

한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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