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실험실, 사실은 시민이 주인입니다
김학영 (경기지방정책연구소 소장)
며칠 전 금광면에 들렀다 중앙대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인지사거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의 행렬과 마주쳤다. 트럭 여러 대가 깃발을 세우고 현수막을 두른 비상한 모습에 먼저 길을 건너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문제에 대해 안성시청에 항의하는 ‘고삼분들’이었다.
외지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지내다가 안성에 돌아온 지 이제 6년째가 되었다. 하던 일이 중앙과 지방의 정책을 만들고 주민들의 민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 몰라도, 지난 6년 동안 가장 많이 눈에 들어왔던 안성의 모습은, 무언가에 반대하거나 하소연하는 시민들의 현수막과 ‘봉산 로터리’ 같은 장소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었다. 도청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던 때에는 도청 정문 앞에서 삭발하는 안성시민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대학 1학년 때 ‘사회학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는 ‘서양 역사에서 현수막은 대중을 선동 내지 독려할 때 쓰이는 수단으로서, 사회 변동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에 흔히 쓰이는 것’이라 설명하셨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현수막은 이제 그냥 도시의 경관과 하나가 되어서 펄럭이고 있지만 말이다.
한편 ‘시위’가 시민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상적인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시민이 공공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소통의 통로가 막혀있거나 작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양성면에 추진되고 있는 ‘축산식품복합산업단지’, 고삼면을 비롯하여 한천과 안성천 수계가 지나는 지역에 영향을 미치게 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한경대·복지대 통합’과 같은 묵직한 이슈들로부터 안성시의 동네와 골목의 사안들까지, 현수막과 시위는 안성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안성 곳곳에서 어떤 사안은 시민과 시청이, 또 어떤 사안은 시민들이 서로 나뉘어서 ‘장외’에서 대립한다. 민선시장이 이끄는 안성시의 지방자치가 이제 7기째를 이어오고 있지만, 사정이 지금 이렇다면, 민선 6기까지 안성시의 의사결정 과정은 시민과 소통하는 길이 막혀있었고, 시민들의 참여도 원활하지 못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987년에 개정된 우리 헌법은 그 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개개의 국민들이 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또는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된 사람들이 국민들을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유권자인 국민 또는 주민의 의사가 선거 과정에서 반영된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지만, 이 제도의 틀만 가지고서는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지방자치는 평소 ‘지방자치가 민주주의’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셨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무기한 단식투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자치와 분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공약이었으며, 당시 문재인 후보는 ‘자치와 분권은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며 분권과 주민참여를 약속했었다.
최근 지방자치법이 전면개정되었다. ‘주민자치회’의 근거 규정이 삭제되어서 매우 아쉽지만, 주민이 지방자치에 직접 참여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포함되면서 크게 개선되었다.
지난 민선 6기 경기도정은 여야간 연합정치(聯合政治)를 추구했다. ‘경기연정(京畿聯政)’의 민주당 쪽 실무자로 일했던 필자는 민선 6기의 ‘경기연정’에서 ‘도민참여’가 선언적인 규정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던 필자가 간사로 참여했던 민선 7기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의 ‘새로운 경기 특별위원회’는 ‘정책의 소비자’인 도민이 ‘소비하는 상품’에 해당하는 ‘도정’의 제안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기존 협치에 대한 시각에서 발전하여, 도민이 정책의 ‘공동생산자’라는 입장에서 펼치는 적극적인 민관협치를 이재명 도지사에게 제안했다.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힘든 선거를 통해 시민의 대변자가 된 단체장과 의원들은 물론, 치열한 경쟁의 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시민을 위해 복무하는 공직자들이 시정의 주인은 아니다. 사실 시정의 주인은 시민이다.
주인인 시민이 정책의 ‘공동생산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안성시의 크고 작은 의사결정에 여과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정의 정보도 더 나누고, 시민의 입장에서 참여의 문은 더 열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비로소 민선 7기 안성시정이 시작되었고, 김보라 시장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려는 시장의 주요 정책공약이 비로소 추진됐다.
필자가 ‘민선 7기 공약이행평가단’에 위원으로서 참여하고 있어서 주장의 객관성을 꼬집을지 모르겠지만, 안성시도 아직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시민참여위원회’라는 주민참여의 두 축을 갖추게 되었다.
시민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플랫폼을 만들고, 시민참여의 문도 더 열며, 주민이 숙의를 통해 결정할 자율예산도 허용하는 등 앞으로 차근차근 보완하고 강화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성도 본격적으로 참여와 협치의 틀이 갖춰지고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기회가 될 때마다 시민참여를 위한 다양한 선진사례와 제안들을 이 지면을 통해서 안성의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오늘은 우선 작은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바로 마을과 골목에서 시민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셜 리빙랩(Social Living Lab)’이다.
예를 들어서, 안성시가 ‘공모’를 통해서 시민들에게 ‘리빙 랩’의 과제를 공모하고 적절한 예산으로 그 운영을 지원하여, ‘시민’과 ‘전문가’와 ‘행정’이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귀한 경험들을 만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이면 안성의 어려운 과제, 묵은 과제는 물론 버스준공영제나 전철과 같은 안성의 미래를 결정할 사안들도 장차 시민의 참여와 합의 속에서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 : 리빙 랩(Living lab)이란? ‘생활 실험실’, 사회 혁신을 위한 한 방법으로서, 삶의 현장을 실험실로 삼아 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말한다. 삶의 현장이 실험실이니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실험의 참여자이자 설계자이고, 해법을 찾아내야 하는 주체다. (「리빙랩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민주주의에서 당연한것인데도 .....
좀더 나아지는 안성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