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편찬과정
족보 편찬과정
  • 시사안성
  • 승인 2018.06.2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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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일의 해주오씨 정무공파 이야기 – 덕뫼에서 세거 500년 – 8

족보는 같은 씨족(氏族)의 시조로부터 족보 편찬 당시 자손까지의 계보(系譜)를 기록한 책이다. 이때의 씨족이란 성() 과 본관(本貫)이 같아서 동조의식(同祖意識)을 가진 남계친족 (男系親族)을 기본으로 하되 곁들여 인척관계(姻戚關係)도 기록한다.

족보는 동족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역사이기 때문에 족보를 통하여 종적(縱的)으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까지의 세계와 관계를 알 수 있고 횡적(橫的)으로는 현재의 동족상 호간의 혈연적 친소원근(親疎遠近)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가계의 영속과 씨족의 유대를 존중하는 사회에 있어서는 족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따라서 족보는 조상을 숭배하고 가계를 계승하며 씨족이 단결하고 동족집단의 본질을 잘 나타내 준다. 이처럼 동족결합의 물적 표현이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동족조직의 성격을 표시하게 된다.

족보는 서양에서도 있었다고 하나 단순한 가계사(家系史)에 지나지 않았으며 동양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족보형태가 있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부터 일부 귀족층에 소규모 필사된 계보가 있었으나, 한 동족 또는 분파 전체를 포함하는 족보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하였다.

족보가 처음 출현한 것은 1423(세종 5)으로 문화유씨(文化 柳氏)영락보 永樂譜로 알려져 있다. 각 성씨마다 족보가 출현한 시기는 다르나 대체로 조선 중기부터 소위 양반 가문에서는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으며 가문의 신분을 나타내는 증표로 여겼다.

족보(族譜)는 세보(世譜) 또는 세지(世誌), 계보(系譜), 가보(家譜), 성보(姓譜) 등으로 불려지기도 하며 씨족 전체를 표시한 소위 종보에 해당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분파된 일단의 세계 (世系)에 대하여는 지보(支譜) 또는 파보(派譜) 라고 한다.

해주오씨는 고려 초부터 대성으로 시조인 오인유(吳仁裕) 공은 군기감감으로 공직에 진출하였고 4세 오찰(吳札)공은 금자광록대부 상서성 좌복야로 고위직에 오르는 등 고려의 문벌로 번성하였으나 그 세계(世系)가 기록으로 전해지지 못하여 선계(先系)를 명확히 밝힐 수 없어 아쉽기 이를 데 없었다.

조선 조에 들어와 뜻있는 선조께서 옛 문헌을 수집하고 정리하여현 해주오씨 족보의 기초자료가 된 족도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해주오씨 족도

1) 족도(族圖 : 140111) 작성

여말선초(麗末鮮初)7세 오광정(吳光廷) 공께서 해주오씨의 뿌리와 혈연관계를 밝힐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족도를 창안하여 작성하기 시작 하였으나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심에 차자인 8세 오선경(吳先敬) 공께서 선고의 유지를 받들어 1401(건문 3, 태종 원년)에 족도를 완성하였다.

해주오씨 족도는 특별한 체제에 구애되지 않고 대수(代數)에 따라 종으로 후손들을 도식(圖式)한 족보의 초기 형태이다. 15세기 이전에는 대부분 이런 형식으로 가계를 기록하였으며 15세기 중반경부터 보도(譜圖)를 기본으로 한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해주오씨 족도는 가로 112cm, 세로 115cm이며, 장지(壯紙)에 필사본(筆寫本)이다. 그 하단에 <전서공휘광정초창(典書公諱光廷草創), 사인공휘선경도사(舍人公諱先敬圖寫)>라고 주기가 있다. 현재 오광정 공의 19세손 오경환(吳璟煥)이 소장 하고 있다.

족도에는 해주오씨를 중심으로 직간접으로 혼인관 계에 있었던 장흥임씨(長興任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수원최씨(水原崔氏), 영흥민씨(永興閔氏), 행주기씨(幸州奇氏)의 가계도 함께 도식되어 있어서 해주오씨의 상대세계(上代世系) 는 물론 당시의 혼반(婚班)을 이해하는 데도 참고가 된다.

족도의 중심을 이루는 해주오씨는 1세 오인유 공에서 9세 까지의 계보가 수록되어 있으며 자녀는 남녀 구분 않고 출생 순에 따라 수록되어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준다.

이 족도는 원본이 전해진 가장 오래된 족도로 200여 년간 사장(死藏)되어 있다가 1600년 경에 14세 오희문(吳希文), 오윤해 (吳允諧) 부자에 의해 증보(增補)되어 해주오씨 족보의 저본 (底本)이 되었다.

 

2) 족도기(族圖記 : 16005)

해주오씨 14세 오희문(吳希文) 공은 어릴 때 선친께서 돌아 가시고 숙씨(叔氏)도 모두 일직 돌아가셔서 선대의 세계에 대하여 들어본 일도 없고 물어볼만한 데도 없어 한이 되어 오다가 어느 편에 족형(族兄) 오안국(吳安國) 댁에 선세의 족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알아본즉 시조 검교군기감 감(檢校軍器監 監) 의 성씨와 휘자가 기록되어 있고 아래로 각파의 내외손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비로소 선세의 내력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에 빌려서 복사하려 하였으나 오안국 공께서 쾌히 응하질 않아 일부만을 기록하고 다음 기회에 나머지를 다시 필사하려 하였으나 오안국 공이 세상을 떠나시고 겨를이 없어 미루어 오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전란으로 모든게 폐허가 되었으니 족도도 온전히 보전되지 못하였으리라 생각되어 괴로워하던 차에 족도를 땅에 묻어 온전하게 보관되어 그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둘째 아들 윤해로 하여금 그 집 수원에 가서 모두를 기록하게 하고 이하 자손들도 빠짐없이 기록케 하여 한권의 책을 만들어 놓고는 널리 퍼지지 못할까 염려가 되어 네 아들도 한권씩 보관케 하고 임란중에 친히 일기로 쓰신 쇄미록(瑣尾錄)에 부록(附錄) 하였다. 이 부록이 바로 갑술보의 저본(底本)이다.

 

3) 갑술보(甲戌譜 : 16347)

1633(인조 11) 가을에 16세 오숙(吳䎘) 공이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부임차 당시 좌의정 추탄 오윤겸(楸灘 吳允謙) 공께 인사를 드리니 해주오씨는 고려 초부터 대성 으로 으뜸가는 문벌이며 높은 벼슬을 함으로써 공적이 사기 (史記)에 오르고 한때 성()하다고 할 만하더니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오씨가 크게 드러나지를 못하고 있네, 사인공 선경 (舍人公 先敬)께서 그려 놓으신 족도를 선친 희문 공과 아우 윤해가 증보(增補)하여 문헌을 만들어 보존하여 오면서 인쇄를 계획할 즈음에 군(吳䎘)의 조부 절도공 휘 정방(節度公 諱 定邦)께서도 애를 많이 쓰셨으나 성취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내아우 윤해도 아침 이슬처럼 일찍 사라진 것이 슬픈 것이요, 이번에 군이 근무하는 지방은 우리 고향인 만큼 영광일뿐 아니라 군의 조부와 내가 일찍이 계획했던 일이 이루어질 좋은 기회라 생각되니 마음 써서 군의 봉급에서 얼마쯤 떼어 보사(譜事)를 완성하여 주시게 이리 하면 후세에 출생하는 제족들까지도 서로 친목하고 우애하는 양풍(良風)이 조성될 것이고, 나도 나의 책임을 면하게 되고 군의 조부가 유의하 시던 일도 잘 이루어지게 되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하심에 어찌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대답하고 나왔다.

오숙공이 해주에 도임(到任)한지 한 달 만에 인쇄 직공을 모집하여 보첩(譜牒)의 일을 시작하였다. 해주지역에는 오씨 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찾아와서 자기들도 족보에 수록하여 주기를 요청하여 부록으로 등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주오씨 족보 초간본인 갑술보가 1634(인조 12) 7월에 발간되었다.(수양오씨족보 12)

 

4) 무술보(戊戌譜 : 17184)

갑술보가 발간되고 많은 시간이 흘러 세대가 점점 멀어지고 자손이 번성하여 족보를 다시 꾸려야할 시기가 되었으나 차일피일 미루어 나가게만 되고 성취(成就)가 없던 차에 18세 해창위 오태주(海昌尉 吳泰周)공께서 애처롭게 여겨 아우 오진주 (吳晉周)에게 자료를 수집하여 보첨증보(補添增補)하도록 명하시어 사재로 공장(工匠)을 모집하고 인쇄를 시작 하였 으나 필역(畢役)도 되기 전에 불행하게도 해창위께서 별안간 돌아가시고 말았다.

인사(人事)의 변천이 무상함을 보고 오진주공이 보사(譜事) 를 재촉하였지만 몇 해 만에 겨우 완료하였다. 이 족보가 1718(숙종 44) 4월에 18세 오진주(吳晉周)공이 완성한 무술보(戊戌譜)이다.(4권으로 축약됨)

 

5) 신묘보(辛卯譜 : 17715)

무술보 후 53년이 흘러 통상 1세대 30년을 주기로 족보를 재편찬하는 관례에 의하면 시기적으로 늦기도 하였지만 후손이 많이 늘어나 여러 곳으로 흩어지고 갈라지다 보니 씨족 간에 원근(遠近)을 분별할 수 없을뿐더러 세계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출신도 모르는 사례가 많아지고 이에 편승하여 위첩 (僞牒)과 사본(私本)이 나타나 정당한 족보까지 혼란에 빠질 형편에 이르렀다.

이에 경향종족(京鄕宗族)이 협의하여 족보를 새로 꾸미기로 하였다. 구본보다 더 넓히고 빠진 것을 새로 기입하고 내외손 (內外孫)의 분별을 달리하고 본 지손의 위아래 항렬이 각각인 것을 통일하여 친척끼리 더 친목하여 효하고 우애하는 미풍(美 風)이 발로되기를 기대하며 1771(영조 47) 5월에 출판된 족보가 신묘보(辛卯譜)이다.(이때부터 해주오씨족보로 6권이 됨)

해주오씨 족보
해주오씨 족보

6) 선기축보(先己丑譜 : 18296)

신묘보 발간후 58년이 지나 생몰(生沒)후손이 많이 늘어나 널리 자료를 수집하였으나 버리고 취함이 정밀하지 못하여 종인들이 의논하여 재편(再編)하기로 하고 잘못을 바로잡고 빠진 것을 보충하여 원근간에 많은 후손들을 모두 취하여 실었다.

또한 의례(儀禮)와 절목(節目)은 갑술보와 무술보의 성규 (成規)를 따르나 신묘보에서 타파로 추견(追見)되는 것은 생략 하였다. 이는 믿을만한 것은 전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빠뜨리는 도를 실천하고자 함이다. 이 족보가 1829(고종 26) 6월에 간행된 선기축보(先己丑譜)이다. 모두 7권으로 되어 있다.

 

7) 후기축보(後己丑譜 : 188912)

선기축보가 편찬 된지 1주갑(一周甲: 60)이 되어 후손이 늘었으나 족보에 오르지 못한 종인이 많아 이를 해소하고 여러 지파 후손들이 널리 흩어져 살뿐더러 인원이 많아져서한 곳에 수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군사공파(知郡事公派) 만 모아서 갑, , 병 세편으로 만들었다 이족보가 188912월에 간행된 후기축보(後己丑譜)이다.(3권으로 편성)

 

8) 정유보(丁酉譜 : 19573)

후기축보가 간행된지 68년이 지났으며 6.25 전란으로 나라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고 수단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근엄 하고 치밀해야 할 족보가 자칫 혼란스러워질까 염려하여 종의에 의해 범위를 좁혀 직장공 파보를 만들게 되었다. 이 족보가 19573월에 간행된 정유보(丁酉譜)이다.(2권으로 편성)

 

9) 병오보(丙午譜 : 19663)

족보는 통상 1세대 30년을 주기로 발간함이 상례(常例)이나 정유보 후 불과 9년 만에 병오보를 만들게 된 것은 동종 (同宗)안에 족보를 어지럽힌 변고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위작 (僞作) 족보가 나돌고 대동보가 우리 정무공파에 근거없이 왜곡(歪曲)시킨 부분이 많았고 위손(僞孫)이 수천인 들어있고 도리어 원손(原孫)은 많이 빠져 있어서 종의(宗議)가 크게 발론(發論)되어 재발간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 족보가 19663월에 발간된 병오보(丙午譜)이다.(2권으로 편성)

 

10) 갑자보(甲子譜 : 19842)

병오보 후 18년만에 또 족보를 만들게 된 것은 사람들의 기강이 흐트러져 다시 맑아질 기약은 알 수 없고 사람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으니 족보에 관한 전후사정을 아는 노성(老成)한 사람들이 아니면 장차 보사(譜事)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종중의 의론(議論)이 있어서 서둘러 다시 족보를 발행하게 되었다. 이 족보가 19842월에 만든 갑자보(甲子譜)이다.(2)

 

11) 계사보(癸巳譜 : 20135)

갑자보 발간 후 29년이 흐르는 동안 인륜지도(人倫之道)가 급속히 변화하여감에 따라 친족(親族)의 천륜(天倫)과 도 ()를 바르게 세워 혈통(血統)을 지키고 선조의 역사적 가치를 담아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책무를 느껴 종의(宗議)로 뜻을 모아 족보를 편찬하게 되었다.

계사보의 특징으로는 종전 종보(縱譜)를 횡보(橫譜)로 바꾸 었고, 아들 중심에서 딸도 동등하게 등재하였고, 시대흐름에 따라 국한문 병기형식을 취했으며, 시디(CD)도 제작하였다.

하지만 많은 종인들이 수단(收單)에 불참하고 무관심하여 족보에 등재(登載)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족보가 20135월에 간행된 계사보 (癸巳譜)이다.(2)

 

참고문헌

해주오씨 세보(계사보), 2013

참판공(휘 익주) 가첩2008

 

오환일(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회장, 유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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