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기다림"-내인생의 노래들
김정호의 "기다림"-내인생의 노래들
  • 시사안성
  • 승인 2021.01.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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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23
필자의 대학시절 야유회에서 노래하는 모습
필자가 대학시절 야유회에서 노래하는 모습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 등의 노래를 부른 가수 김정호. 1960~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분들은 아마도 이 가수를 기억할 것이다. 부르는 노래들이 대부분 슬프고 애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안타깝게도 34살의 이른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정호의 노래 중에 나에게는 특별한 노래가 있다. <기다림>(1975, 김정호 작사 작곡)이라는 노래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신입생의 날 Freshmen Day”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신입생들의 장기자랑 무대였다. 나는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듀엣으로 이 대회에 나갔다. 이 무대에서 우리가 기타를 치며 불렀던 노래가 바로 <기다림>이다.

이 대회의 노래 부문에서 우리가 1등을 차지했기에, 특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양희은 씨는 나의 대학 선배인데, 양희은 씨도 이 신입생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1등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이 노래의 노랫말을 감상해보자.

 

기다림

 

눈앞에 떠오는(1)/보이는(2) 조그만 초가집엔

할아범 오늘밤도 불 밝혀 놓으셨네

무슨 사연 있을까 기나긴 밤을

그 누구 기다림에 잠 못 이루나

저 멀리 들리는 송아지 우는 소리

행여나 아들인가 살며시 문을 연다

 

한편의 그림처럼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는 노랫말이다. 시골 초가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 밤이 되면 늘 불을 밝혀 놓은 채, 잠을 못 이룬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바로 아들이다. 그 밤 먼 곳에서 엄마를 찾는 송아지 우는 소리라도 들리면, 할아버지는 아들이 더욱 생각나기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게 된다.

이러한 노랫말에 기대어 나는 젊었을 때 이 노래를 막연히 애상적인 느낌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한참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을 때 이 노래를 부르다가, 그동안 불러왔던 이 노래가 전혀 다른 깊이로 내 가슴속을 파고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홀로 살면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아마도 아들과 연락도 닿지 않고, 아들의 소식조차 모르고 있다. 할아버지는 늘 밤늦도록 불을 밝혀 놓고 아들을 마냥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이도 젊었던 김정호는 어떻게 해서 이런 애처로운 사연의 노래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의 노래 <인생>처럼, 김정호는 젊은 나이에 이미 우리네 인생의 모든 슬픔을 다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부모 자식을 비롯하여, 가족이란 무릇 이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런데 어떤 사연으로 인해 가족의 행방을 모르거나, 만날 수 없거나, 가족과 생사를 달리하는 상황이라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1983년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남북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가 접했던 눈물겨웠던 그 숱한 이별의 사연들...

어떤 분들은 전쟁 전에 헤어졌던 가족이 행여나 옛집으로 찾아올까 싶어, 이사를 가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예전에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기다림> 노래속의 할아버지도 혹 그런 애타는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오랫동안 이 노래를 불러왔지만, 정작 김정호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기회에 유튜브를 통해 처음으로 김정호가 부르는 <기다림> 노래를 들어보았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부른지 45년만이다. 감회가 깊었다.

그 옛날 대학에서 이 노래를 듀엣으로 함께 불렀던 친구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젊었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나와 친구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동안, <기다림> 노래는 우리의 추억 속에 살아 있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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