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돌의 예술산책』 서문
『금은돌의 예술산책』 서문
  • 시사안성
  • 승인 2021.01.1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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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의 단상 그리고 시인 금은돌 - 10

 

금은돌의 예술산책

 

서문

 

금은돌이 가진 최고의 재산은 몽상이었다. 나의 시인은, 아니 나의 엄마는 장난감 병정을 쓰러뜨리듯이 문학 속에서 몽상을 펼쳤다. 그녀의 문장들은 자주 해석을 상실했고, 때론 투박했고, 그 투박함은 나에게 모종의 기쁨을 주었다. 그 기쁨은 그녀의 문학론처럼 비평과 시는 한낱 유희의 대상일 뿐이라는 자각 속에서 이뤄졌다.

이 책에 수록된 평론들 또한 전형적인 비평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비평은 어째서 딱딱한 논문 형식과 주제 의식을 갖춰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에서 비롯된 그녀의 새로운 탐구는 문학주의라는 고정된 이데올로기를 환기시킬 것이다. 쓴다는 행위는 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나와 똑같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라는 흥미로운 시인의 말처럼. 하늘나라도, 3세계도, 아들과의 산책길도 아닌, 엉뚱하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의 해방을 꿈꾸고 있을 그녀에게.

 

문장은 온다. 그녀를 아프게 했던. 세계를 지우면 문장은 오고. 타자에 대한 원망을 지우면, 문장은 온다. 며칠 전 꿈에서 만났듯이. 빨간 스웨터를 입고. 텅 빈 운동장을 지나. 나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던. 금은돌이 문장에게 도착하고 있다. 충돌없이. 의심없이. 잘 놀다 간다고, 말하고 있을.

금은돌이 오고 있다. 나에게. 하얀 국화꼿을 들고. 아니. 내가 가고 있다. 파란 파지를 입고. 안성의 어느 공설 운동장을 지나며. “엄마 설렘이 뭐야? 설렘은 왜 또 와?” “그건 죽어가는 태양이니까라고 답하던 엄마이자 시인 금은돌이. 가고 있다. 아직도 어느 세미나실에 앉아서. 이른 아침에. 나를 맞이할 것 같은데. 가고 있다. 그곳으로. 고통 없이. 죽음 없이. 고삼 저수지를 지나며. 먼저 가지마, 같이 좀 걷자. 라고 중얼거릴 것만 같은데. 가고 있다. 몽골과 터키 여행에 대해 자랑하며 촌스러운 목걸이를 꺼내 보일 것만 같은데. 가고 있다. 그녀가. 세상에 없는 문장을 향해. 가고 있다. 그녀가 가고 있다.

 

아들 조원효 시인

 

 

* 필자(조천호) : 금은돌 1970년 안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기형도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애지에 평론, 2013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평론집 한 칸의 시선』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 눕혔을까1인 잡지 mook등을 출간했다. 전시활동을 하며 화가로도 활동했다. 2020415, 한창 예술혼을 불태우던 안타까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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