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한 보무를 점진” - 매일신보 1911년 5월19일 . 6월 7일 기사
“문명한 보무를 점진” - 매일신보 1911년 5월19일 . 6월 7일 기사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6.1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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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안성관련 신문읽기 – 8
1911년 5월 19일 3면 1단

191151931- 京畿管內近況,

각군 단발자 격증, 민적조사의 장려, 식수사상의 증진

모처에서 조사한바를 거한즉 경기도 각군의 일반민심의 경향이 좌와 하더라

(전략)

기타 각지의 헌병경찰관은 면리장등을 독려지도하야 민적(民籍)의 정확함을 기도하기로 사무정리에 진력한다는대 금회에 안성군 각 면장(面長) 등도 민적사무의 정확을 기도하기 하야 신히 민적부(民籍簿)를 조정하기로 진력하는이라하니 여사한 사는 면장의 당연한 직무어니와 이전 폐풍을 혁거하고 문명한 보무를 점진함은 일대 가하할 사이라 하더라.

이 기사를 통해 당시 민심 경향, 아니 일제가 바라는 민심의 방향, 일제가 장려했던 정책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기사 제목을 통해 일제가 단발을 장려했고, 민적조사를 장려했고, 나무 심기를 장려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민적조사와 관련해 안성의 사례가 기사에 등장한다. 즉 안성의 각 면 면장들이 민적사무의 정확을 기도하기 위해 민적부를 새로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축하할 일이라는 기사다.

아마 이 무렵 이전 대한제국 시절의 민적부를 폐기하고 일제에 의한 새로운 민적부가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정확한 사실이나 의미부여는 기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나, 과거 대한제국의 민적부를 폐풍이라 규정하고 새로운 민적부를 문명(文明)한 것으로 규정지으며 축하하고 있다. 역시 일제의 지배를 합리화하고 정당화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19116731- 强盜 押上

안성군 가산면(加山面) 내동(內洞) 거하는 임봉희(林鳳熙)라 칭하는 자가 흉기를 휴대하고 각처로 출몰하며 양민의 전재를 탈취한 정적이 발각되야 해지 경찰서에 피착하얏는대 해서에서 심사하고 일전에 경기지방 재판소로 압상하얏다더라.

 

여기 기사에 나오는 가산면(加山面)은 조선지지자료 등 당시 지명자료에 없는 지명이다. 기자는 조선지지자료등을 참고했으나 가산면이라는 지명을 찾지 못했다. 당시 매일신보의 오기일 가능성이 큰데, 어느 곳인지는 불확실하다. 뒤이어 나오는 내동(內洞)이라는 지명은 안말혹은 안골로 불리웠던 한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안성에는 내동(內洞)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이기 때문에 아쉽게 내동이라는 지명으로도 어느 마을인지 알기 어렵다.

기사내용으로 보아 임봉희는 강도일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보아 의병활동을 하던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사이면서 동시에 일제의 치안조직이 잘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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