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강바람”, 내 인생의 노래들
“산바람 강바람”, 내 인생의 노래들
  • 시사안성
  • 승인 2020.09.3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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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9
아름다운 금광호수 풍경
아름다운 금광호수 풍경

지난 여름 내가 가장 많이 연주하며 노래한 곡은 <산바람 강바람>이다. 이 노래는 내가 6살 때 옆집 친구에게 배운 첫 동요이다. 그 어린 시절 배웠던 동요가 내 노래 인생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노래를 불러왔다. 이제 동요와 노래 인생 60년을 맞이했으니,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노래들, “내 인생의 노래들을 하나씩 헤아려보고 싶다. 그 첫 번 째 노래는 바로 <산바람 강바람>이다. 이 곡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나온 동요인데, 먼저 노랫말을 감상해보자.

 

산바람 강바람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도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대요.

 

다시금 감상을 해보아도 노랫말과 곡조가 한데 어우러져 참 아름다운 노래이다. 60년 동안 나는 이 노래를 수백 번도 넘게 불렀으리라.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내가 특별히 음미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한 글자로 된 조사인데, 2절 가사에 나오는 그 바람도이다. 이 노래의 1절과 2절의 가사를 대조하면서 감상해보면,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좋은데 강가에서 부는 바람, 그 바람좋다는 것이다.

로 말미암아 산바람도 좋고 강바람도 좋으니, 바람은 모두 다 좋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느끼게 해주지 않는가. 이렇게 노랫말 한 글자가 노래 전체를 절묘하게 살려주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무엇보다도 산바람과 강바람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서늘한 산바람과 시원한 강바람을 좋아하고 즐기면서, 그 바람에 고마워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불어오는 한 줄기의 바람결에 고마워하는 마음이라니, 이런 노랫말의 화자가 과연 어린 아이일까? 대체로 사람은 나이가 들어야만 비로소 자연이 눈에 들어오고, 자연을 즐기게 되는 법이다.

"산바람 강바람"은 나에게 처음으로 자연을 좋아하고 즐기며, 자연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심어준 노래이다.

산바람은 여름에 나무꾼의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주기도 하고, 강바람은 사공이 잠이 들면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단다. 한 편의 서정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한 줄기의 바람이 우리의 삶에 베풀어주는 고마움과 행복을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다니...

어린 시절부터 불러온 이 노래가 과연 나에게는, 내 삶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 동요의 주제는 바람에 대한 찬미와 고마움이요, 넓게 보면 자연에 대한 찬미와 고마움이다. 그러면 바람 한 줄기에도 감사하는 사람, 나아가 자연에게 감사하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 자연스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토록 많은 것을 내게 준 삶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삶에 대한 감사 Gracias a la Vida"를 노래한 비올레타 파라가 생각난다. "산바람 강바람"은 내 삶에 감사의 마음을 심어준 첫 번째 노래이다.

한 편의 노래가 삶에 대한 감사를 가르쳐주고, 그와 더불어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인도해주었다면, 그 노래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 노래를 만드신 윤석중, 박태현 두 분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린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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