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애환을 담은 노래 파두
포르투갈의 애환을 담은 노래 파두
  • 봉원학 기자
  • 승인 2020.07.29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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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7
나자레 해변 풍경

1990년대 중반에 독일의 훔볼트 재단 연구교수로 뮌헨에서 가까운 아욱스부르크에 몇 차례 머물던 때가 있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왕래하는 상황이었는데, 겨울에 나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상당히 긴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다. 독일을 출발하여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을 지나 포르투갈까지 동서를 가로지르는 여행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스페인은 나에게 오래 전부터 기타와 플라멩코의 나라였기에 늘 관심이 많았지만, 이웃 나라 포르투갈은 그 옛날 대항해 시대에 위력을 떨쳤던 나라, 지리적으로 유럽의 맨 서쪽 끝 대서양 바다에 접해 있는 나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스페인에 플라멩코가 있다면, 포르트갈에는 파두가 있다는 것을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지난 3년 전 은퇴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스페인 남쪽 말라가 지중해 바닷가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 단체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다시금 포르투갈을 여행하게 되었다. 높은 절벽 위에서 저 멀리 아르다운 바다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나자레를 비롯하여,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풍광과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티마라는 작은 마을의 성당 앞 야외 광장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경건하게 촛불을 들고 하느님께 드렸던 가톨릭 미사였다. 파티마는 3명의 어린 아이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신비스럽게 현현하신 후로 아주 유명한 가톨릭 성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파티마를 방문한 때가 마침 성모 마리아 현현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이어서 2주 후에 교황이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날 파티마의 밤하늘로 울려 퍼졌던 그 성스러운 찬양과 예배의 감동을 아내와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포르투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크게 두고 있었던 것은 단연코 포르투갈의 노래인 파두였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파두의 발상지인 리스본 지역을 중심으로 자유로이 둘러보면서 파두를 감상하기 위해 단체 버스여행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리스본의 숙소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호텔 직원의 소개를 받아 상당한 규모를 갖추어 운영하는 정식(?) 파두 공연장을 찾아갔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 가수가 나와서 한 시간 정도 공연을 했는데, 그 남녀 가수는 나이가 너무 젊어서 그런지(?) 파두의 깊은 슬픔과 애환을 담아내어 노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포르투갈 기타
포르투갈 기타

파두가 어떤 노래인가? 오랜 세월 바다와 더불어 살면서 포르투갈 사람들이 겪었던 슬픔과 고통의 노래, 애환의 노래가 아니던가? 이 지구상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유럽의 땅 끝에서 대서양 바다를 품고 사는 리스본 사람들은 파두라는 노래를 통해 처절한 바다의 삶을 노래한 것이다. 평생을 노래해 온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살아온 연륜과 인생에 따라 그 노래의 깊이와 감동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이 내 인생의 마지막 포르투갈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토록 기대했던 파두를 이처럼 실망스러운 기억으로 끝을 내야만 한단 말인가?

숙소로 돌아온 나는 다시 시내로 나가 선술집에서 하는 파두 공연을 한 번 더 보러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을 했지만, 아내는 고단하다고 하면서 나 혼자 갔다 오라고 했다. 늦은 밤에 리스본 시내를 혼자 다녀와야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그 밤에 기필코 진정한 파두를 만나야만 했다.

약도를 가지고 그 밤에 길을 물어 파두를 공연하는 선술집에 겨우 도착했는데, 공연이 진행 중이었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낮에 보았던 가수들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 가수가 파두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 노래에 곧바로 느낌이 왔다: , 이것이 바로 파두로구나! 애처로운 음색의 포르투갈 기타 선율과 더불어 애절하게 바닷가 삶의 애환을 노래하는 파두가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가수는 아무런 설명 없이 서너 곡의 파두를 연이어 더 불렀다. 숨죽이고 문 옆에 기대선 채 20분 정도나 되었을까, 부르는 노래마다 가슴을 저미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날 밤 리스본 시내 선술집에서 나는 결국 진정한 파두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행을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1년 동안 오디오를 통해 오직 파두 노래만을 감상하며 지냈다. 그야말로 파두에 푹 빠져 지낸 한 해였다. , 언제 또 다시 포르투갈에 가서 파두를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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