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인들의 상업적 기질 - 전조선 3대시장 안성장 5
안성인들의 상업적 기질 - 전조선 3대시장 안성장 5
  • 시사안성
  • 승인 2020.07.0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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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의의 안성민속이야기
유기도부장사(기산풍속도)
유기도부장사(기산풍속도)

안성사람들의 특징은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 양반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장사를 하였다는 것이다. 1925년 김태영 선생이 쓴 안성기략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古來朝鮮에서는 I賤視關係發達되지 안엇스나 安城市場에서는 古來八道貨物集散되야 商業이 상당히 發達되얏고 所謂 兩班階級店鋪에서 活動하기를 不憚하얏스므로 他地方하야 懸殊하니라.

예로부터 조선에서는 상업을 천시하여 발달되지 않았으나 안성시장에서는 예부터 팔도화물이 집산되어 상업이 상당히 발달되었고 소위 양반계급에 속한 자도 점포에서 활동하기를 꺼리지 않았으므로 타지방에 비하여 아주 뛰어나다

 

1965년 김영호 교수가 쓴 논문 안성유기산업에 관한 조사 보고에 안성유기 장인들은 농업에 종사한 평민 또는 실권한 양반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양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다론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안성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유기는 안성에서 만들어서 안성장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을 다니면서 판매를 하는데 그 중에서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유기판매상과 관련하여 안성기략에는 다음과 같은 속요를 전하고 있다.

 

京畿安城 큰아기 鍮器장사로 나간다 한닙팔고 두닙팔어 파는 것이 자미라

京畿安城 아기 숟가락장사로 나간다 은동걸이 반수저에 깩기숫갈이 이라

 

이 속요에서 볼 수 있는 점은, 안성에서는 큰며느리나 딸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기장사를 한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닢, 두 닢 파는 것이 재미라고 한다. 사실 안동 같은 양반의 고장이라고 하는 지역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설령 며느리가 장사를 한다고 하여도 쉬쉬하고 숨기는 것이 일반이지 이처럼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속요를 통하여 상업을 중요시 하는 안성사람들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알 수 있다.

안성기략에 등장하는 속요

용인에 사는 정관해 선생이 1925년에 쓴 관란재일기에는 유기 파는 여자가 자신의 집에 온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안성유기상은 직접 등짐을 지고 시장뿐 만이 아니라 가정마다 방문 판매를 했던 것이다. 1928년의 잡지 별건곤에는 팔도녀자 살림살이 평판기라는 기사에서 안성유기상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안성도 경기도이니까 안성여자의 유기장사 잘하는 것도 한 가지 소개할 일이다. 안성은 고래로 유기의 명산지인 고로 속어에도 안성유귀 실굽다리는 제물에 실적 마럿느니 안성맛춤이니 하는 말까지 있다. 그곳 여자들은 대개 유긔를 남자 보부상과 같이 짊어지고 각지로 돌아다며 판다. 그 행상인 중에는 종종미인도 있어서 이 세상에 향기러운 이야기 거리를 가끔 끼치는 일도 많다.

 

이와 같이 안성의 여자 유기상들은 직접 남자 보부상과 같이 유기를 짊어지고 전국올 다니며 판매를 하였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행상인 중에 종종 미인이 있어 이상한 소문이 도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또 경기민요 건드렁타령에는 경기안성 처녀는 유기 장사로 나간다지, 주발대접 방짜대야 놋요강을 사시래요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를 보아도 안성에서는 아가씨들이 유기를 판매하러 다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산풍속도에도 유기장사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지어 판매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문헌에서 안성의 유기상을 말할 때 항상 여자 상인을 언급하였는데 안성의 다른 물품 판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이한 일이다. 안성유기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당시로서는 파젹적인 방문판매 방법과 여자들이 같이 가서 소비자인 주부들에게 직접 안성유기의 장점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926년도 안성상인의 행상지역은 이천, 용인, 진천, 장호원, 수원, 천안, 원주, 음성, 여주, 평택, 입장, 인천, 원산 등지이며, 외지 상인 중 안성으로 행상 온 사람들은 진천, 천안, 음성, 충주, 청주, 예산, 용인, 광주, 여주, 이천, 원주, 평택, 수원, 강릉, 인천, 원산 등지이다. 1926년은 이미 안성장이 상당히 위축되었을 때인데도 안성상인들이 멀리 원산까지 나가기도 하고, 강릉, 인천, 원산 등지에서 안성장에 오기도 하였다.

홍원의 안성시청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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