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와 기타의 나라 스페인
플라멩코와 기타의 나라 스페인
  • 시사안성
  • 승인 2020.06.24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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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6
필자가 살았던 토레몰리노스 지역 풍경
필자가 살았던 토레몰리노스 지역 풍경

3년 전 대학에서 명예퇴직을 했을 때, 아내와 함께 달려간 곳은 기타와 플라멩코의 나라 에스파니아, 즉 스페인이었다.

오랜 세월의 교수직을 마무리 했기에, 자유로운 해방감을 누리고자 우리는 스페인으로 향했던 것이다.

오래 전 나는 스페인을 혼자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가보지 못했던 터라 아내와 함께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서 머물며 생활하고 싶었다. 특히 스페인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플라멩코는 기타와 노래와 춤이 한데 어우러진 스페인의 민속예술인데, 스페인에서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이 플라멩코의 본 고장이다. 오랜 세월 흘러온 플라멩코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겪어온 삶의 애환과 정열이 깊이 스며있다.

산에서 내려다 본 말라가와 지중해
산에서 내려다 본 말라가와 지중해

처절할 정도의 애처로운 가락과 노래로 삶의 고통과 슬픔을 토해내다가, 어느 순간 손뼉으로 박자를 쳐가면서 빠르고 격렬한 춤과 노래로 삶에 대한 열정을 표출해내는 플라멩코. 플라멩코처럼 예술적으로 표출하는 감성과 정서의 진폭이 큰 예술은 아마 드물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를지라도,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고 겪는 인생은 모두 다 같은 게 아닐까?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예술에도 공감하며 감동을 하는 것이리라.

바다를 아주 좋아하는 나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도 지중해 바닷가 말라가 토레몰리노스를 택하여 그곳에서 70일간을 살았다.

매일 같이 아름답고 푸른 지중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신비스러운 바다를 무념무상으로 그저 감탄하며 바라보는 일, 나에게는 그보다 더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곳 코스타 델 솔”, 태양의 바닷가는 이름처럼 우리가 머물렀던 기간 동안 비가 온 날이 거의 없었다. 아내와 나는 그 멋진 날씨와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필자 부부가 수시로 산책한 토레몰리노스 지중해 해변
필자 부부가 수시로 산책한 토레몰리노스 지중해 해변

그리고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광경을 보았다. 어려서부터 비행기의 이착륙 장면 보는 걸 유난히 좋아했는데, 스페인에 와서 그토록 많은 비행기들이 수시로 지중해 바다 위를 오르내리는 걸 가까이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지중해 바닷가 생활은 만끽했지만,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려 했던 내 계획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어로 기타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했기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기타 공부를 스페인어로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플라멩코 기타 음악을 감상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는 플라멩코 노래 악보라도 구입하고자 몇몇 서점을 찾아갔는데, 뜻밖에도 전혀 악보를 구할 수 없었다.

플라멩코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악보로 구비되어 있지는 않고, 서점 주인의 말로는 한 10년 쯤 지나야 악보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스페인을 혼자 여행했을 때, 플라멩코 공연을 처음으로 본 적이 있다.

그때 백발의 노인 사회자가 무대에 선 4명의 여자 댄서들을 소개하는데, 이런 말이 내 귀에 들렸다: “에느파뇰라 시뇨레타”, 아마도 (멋진) “스페인 아가씨들이라고 소개를 했던 것 같다.

2017년 세비야 플라멩코 공연장면
2017년 세비야 플라멩코 공연장면

그런데 공연 중에 한 댄서는 얼마나 격렬하게 머리동작을 했던지, 머리에 묶여 있었던 댕기가 무대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을 다 마쳤는데, 얼마나 격정적인 춤 동작이었는지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관람했던 플라멩코 공연 중에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도 플라멩코의 본 고장인 세비야에서의 공연이 가장 멋지고 훌륭했다. 젊은 시절 체코의 프라하를 여행한 후, 내가 본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오랫동안 프라하였다.

그러나 세비야를 본 이후로 내 생각은 달라졌다. 그만큼 세비야는 아름다운 도시였던 것이다. 세비야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에서는 특히 춤을 추었던 남자 댄서가 기억에 남는다.

그 생김새와 날렵한 모습이 어찌나 섹시(?)하고 느끼(?)했던지... 아내와 나는 서로 공감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 댄서는 어찌나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던지 그 짧은 시간에도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격렬한 춤 동작에서 급기야는 맨 앞좌석에서 관람하고 있었던 내 이마에 그 남자의 땀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차갑게 느껴졌던 그 땀방울의 촉감과 더불어 그 멋진 플라멩코 공연은 내 마음 속에 아름다운 감동과 추억으로 남아있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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