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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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안성
  • 승인 2020.05.2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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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의 안성살이 15

10년 전 채식주의에 대한 강의를 주최하면서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대오각성 없이 고기 맛을 잊지 못한 채 시작한 채식 위주의 식단은 안사람의 냉소를 머금은 고기반찬에 12일 체험으로 끝이 났다.

식성 바꾼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 이후에도 육식을 자제해보려고 했지만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없으면 찾아 먹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개인이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의 최고봉은 자발적 가난과 채식이다. 영성까지 건드려 훈련받지 않으면 엄두가 나질 않는 일이다. 환경교육을 하면 항상 축산업과 부딪쳐 육류 위주의 식단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러지 못하면서 말이다.

축산활동의 지구환경 오염 및 파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0. 고기 먹는 사람 1명이 소비하는 땅은 20명의 채식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크기이다.

0. 모든 미국인이 채식인이 된다면 6억 명(인도 총인구)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

0. 지나친 방목으로 85천만 인구의 거주지가 사막화되었다.

0. 만약 모든 사람이 채식하면 축산용지 90%를 숲으로 되돌려 여가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0. 1960년부터 미국 중부의 숲 25%가 축산업으로 파괴되었다.

0. 1966년에서 1983년까지 아마존 열대 우림 38%가 축산업으로 인해 파괴되었다.

0. 450g의 밀 생산에는 95L의 물이 필요하지만 450g의 고기 생산에는 9,500L의 물이 필요하다.

0. 영국에서는 육류와 유제품 생산을 위해 가축 한 마리당 매일 70L의 물이 소비된다.

0. 인간 문명에서 발생하는 총 메탄가스의 20%가 농축업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보다 훨씬 많은 사례가 있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잘 먹고 있다. 요즘은 콩으로 만든 고기 질이 좋아져 육식의 식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 아직은 유통 초기인지 찾아보기 어렵다.

전 세계 소의 종류는 100여 종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소의 종류는 단 두 종류다. 고기 소인 한우와 유제품을 생산하는 얼룩소 홀스타인종이다. 아주 우수한 다른 품종의 소가 있더라도 죽어서 고기로는 들어와도 살아서는 못 들어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심하다고 한다.

고기용으로만 기르는 한우와 유제품용으로 기르는 홀스타인종 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산 고기용 소가 있다. 그것은 육우이다. 안성은 많은 육우 축산농가들이 있어 나름 유명하다.

육우의 일생은 알고 나면 기구하다. 유제품을 생산하려 기르는 젖소가 우유를 만들려면 새끼를 낳아야 한다. 포유류 동물의 특성이다.

새끼는 자연의 섭리로 대략 50:50의 비율로 암수가 정해진다. 암컷은 잘 키워서 우유를 생산하지만 수컷은 별 볼일 없다. 거세를 하여 육우로 키워지면 다행인데 육우고기 값이 떨어져 대접을 못받으면 사료 값이 아까워 축산농가에서 죽여서 묻거나 갖다 버린다.

올해 젖소는 대략 40만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가령 젖소 한 마리가 한 해 한 번 새끼를 낳는다고 가정하면 수소는 20만 마리가 생기는 것이다(육우 가축두수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모든 공식적인 통계는 한육우라는 명칭으로 한우와 함께 계산되어 정확한 데이터는 찾기 힘들다.) 한 해 육우 도축두수는 6~7만두 정도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도 태어나 죽임을 당하는 홀스타인 수소가 많아 보인다.

육우 소값은 한우가격의 60%정도가 이상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통시장의 검은 손에 의해 한우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매스컴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축산 이력제 사용으로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육우 소값이 오르면 소비자가 외면해 한우를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육우 소값이 내리면 송아지는 버려진다.

국민소득이 오르면서 소고기 먹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 자주 먹게 되고 많이 먹게 된다.

기왕이면 육우를 먹으면 좋겠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죽으나 2년도 못 살고 죽으나 마찬가지지만 어차피 우유 생산으로 태어나야 할 운명이라면 (거세로 인해 사는 재미가 좀 줄긴 하겠지만) 2년간은 이생에서 살게 해주는 게 낫지 않나... 너무 낭만적으로 접근했나...ㅋㅋ (참고로... 이게 아니어도 육우고기의 장점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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