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법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법이다.
  • 시사안성
  • 승인 2020.05.0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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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의 안성살이 14

안성농아인협회 세워지기 전 수화를 배우려면 구포동 성당(현재 안성성당) 근처 숭인동 장애인협회를 가야 했다. 그 부근에는 안성에서 명문으로 알아주는 한 고등학교가 있었고 장애인협회 앞길은 그들의 통학로였다.

그 학교에서는 학기 내내 밤 11시 넘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내려왔고 방학에도 34일정도 휴가(?)만 인정될 뿐 통학을 계속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야말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저 내가 컸을 때보다 지금의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다행히 경기도는 진보교육감의 연이은 당선으로 전보다 유연하고 여유로운 학교생활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이런 교육환경을 싫어하는 어른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숨이 탁탁 막히는 학교생활의 추억 탓인지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

안성시는 근래 경기도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되어 학생과 교육현장이 주도하는 혁신교육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학교 내에서는 학생을 존중하며 창의적인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교사에게도 자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등 예전과 사뭇 다른 학교로 변모하고 있다.

이렇듯 안성의 학교는 특색있는 교육프로그램과 예산지원으로 점차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혁신교육지구라는 지구 전체의 안성시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자녀를 두고 있는 안성 학부모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안성시는 수도권 지역에서도 몇 안 되는 고교 비평준화지역이다. 중학교 성적이 암암리에 서열화 된 관내 고등학교 입학을 결정한다. 말 그대로 교육지구의 혁신이 필요할 때이다.

80년대에 평준화된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내게 아직도 비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는 안성을 보면 답답하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지만 공부가 노잼인 친구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 아니다.

범생이 친구들은 집이 일죽에 있든 원곡에 있든 부모가 차량으로 등하교를 해주거나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공도에서 성적이 안 좋은 친구들은 죽산, 일죽까지 가야한다. 가뜩이나 학교에 정이 없는데 등하교가 힘들면 학업을 포기하기 쉽다.

안성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SNS로 고교평준화에 대한 구글 설문지를 돌려보았다. 100명이 넘는 분들이 대답을 해주었다.

70%이상이 고교평준화가 되기를 바랐고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면학분위기를 꼽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등하교문제로 고교평준화를 대다수 원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서열화 된 학교의 지역폐단을 없애기 위해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분들이 꽤 있다. 이 설문지로 안성시민들의 생각을 대변할 수 없지만 교육제도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교육의 관점도 변해야 한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안성에서 살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출향하여 서울 또는 수도권 대도시 소재의 명문학교를 다닌다. 가문엔 영광이겠지만 안성 지역 입장에서는 별로다. 그들은 그 곳에서 자라고 배우며 생활하다가 직장을 잡고 결혼한다. 가끔 고향인 안성에 내려와 안성에는 발전이 없다고 빈정거리듯 고향친구들에게 내뱉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들이 귀향하는 시기는 노년이 되어서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분들은 예외다. 안성에 도움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들에게 지역의 희망을 걸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안성에서 자라 인생의 황금기를 안성에서 보내는 친구들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지역사회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들에게 올바른 경제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더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성에서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여러 방도로 도와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안성에서 살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학교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경험을 쌓아 진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학교로 만들어 이들이 열심히 다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고교평준화는 필수조건이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논의를 점차 확대하여 우리지역의 교육문제도 알게 되고 그들의 어려움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고교평준화가 관점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굽은 나무에게 더 좋은 비료를 줘야 선산을 더 잘 지키는 법이다.

정인교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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