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의 ‘할 수 없음’을 말하다”
(기고) “청년의 ‘할 수 없음’을 말하다”
  • 시사안성
  • 승인 2020.04.09 0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 이희정 사무국장
필자 이희정 사무국장

“청년의 ‘할 수 없음’을 말하다”

 

스무 살이 되는 첫 날을 기억한다. 친구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연예대상을 보다, 흘러나오는 카운트다운에 화면 너머 사람들과 함께 숫자를 외쳤다. , 이라는 숫자가 지나자마자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이 되었고, 그 길로 나와 친구는 바로 편의점으로 가서 술을 사왔다. 19살과 20살의 차이는 그런 거였다. 할 수 없는 것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하는 단계. 청소년에게 묶여있던 모든 고삐가 풀렸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었고, 그건 으로서 다가왔다. 성인요금으로 오른 교통비, 거리적 문제로 자취할 때 필요한 보증금과 월세, 부담스러운 대학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등으로 청년들은 단번에 빚쟁이가 되고 만다. 이것이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이다. 매체에서 말하는 여행 가고, 자기계발 하고, 학점 챙기고, 도전하는 완벽한청년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늘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는 실상이다.

청소년과 청년의 차이는 보호자의 유무, 즉 누가 지켜줄 것인가이다. 청소년은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하며, 부과되는 의무가 없다. 그러나 청년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다. 나를 담보로 하고 세상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그런 우리에게 세상은 각박하다. 아는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런 물음을 받았다고 한다. “너는 별로 간절하지 않아 보여.” 사회는 청년들에게 최저시급을 빌미로 간절함과 열정을 사려한다. 심지어는 어떠한 보상도 없이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청년을 착취하는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청년의 미숙함과 간절함과 열정이 그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게 한 것이었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힘없는 청년들은 누가 도울 수 있을까?

올해 24, 청년의 권리와 책임을 위한 청년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제껏 모호했던 청년의 기준을 만 19세에서 34세까지로 지정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청년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있다. 중요한 건 국가의 실행도 있겠지만, 청년층의 정책 참여 역시 중요한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2030세대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49.45%라는 저조한 투표율에서도 보인다. 이는 사회/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 부족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청년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정작 청년들의 참여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청년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그리고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청년들뿐이다. 세상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 위주로 흘러간다. 사회는 원래 이렇다며 순응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 같이 연대를 하고 맞서 싸워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청년정책위원회가 시마다 만들어지고 있으며, 안성시는 청년들이 직접 안성청년문화네트워크를 창립준비 중에 있다. 청년의 할 수 없음할 수 있음으로 바꾸는 건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것처럼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직접 시계바늘을 움직여 ‘1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건 우리 청년들이 다함께 이겨내야 할 문제이다.

 

이희정 안성청년문화네트워크 창립준비위원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