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안성성당 성가대 사진의 의미
1922년 안성성당 성가대 사진의 의미
  • 시사안성
  • 승인 2018.05.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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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 - 6
1922년 성가대(당시 안법학교 남녀 학생들로 이루어진 안성성가대 일동), 사진 원본에 "안성성당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청년들을 규합하여 성가대로 청년활동을 전개"라는 글자가 보인다.(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1922년 성가대(당시 안법학교 남녀 학생들로 이루어진 안성성가대 일동), 사진 원본에 "안성성당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청년들을 규합하여 성가대로 청년활동을 전개"라는 글자가 보인다.(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안성천주교회는 190010월에 프랑스 외방선교회에서 파견된 초대신부 안토니오 공베르(孔安國)신부가 설립한지 올해로 118주년을 맞고 있다. 당시 안성지역은 충남 아산 공세리 본당 관할로 주변지역에 20여개의 공소가 산재해 있었던 상태에서 선교사제의 파견은 가톨릭 선교의 전환점이 되었다.

100년사 기록에서 공 신부는 교리교사 한 명과 식 복사 두 명과 함께 6년 동안 신자들과 안성읍 숭인동 담뱃대 만드는 움터를 방문하여 한국말을 배우느라 애썼던 것으로 볼 때 천주교 전례의 핵심인 미사전례는 공 신부 혼자서 라틴 말로 집전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미사 전례에서 라틴어를 사용하여왔고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렀다.

성가는 미사전례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1922년 성가대 사진의 원본에는 <안성성당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청년들을 규합하여 성가대로 청년활동을 전개 1922>라는 글자가 보인다.

공 신부는 한일합방 전의 혼란기(1906-1908)에 일본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안성주민들의 집회 결정에 대하여 자문을 해주기도 하였던 것 같다(공베르신부 일대기, 안성성당, 2013, 10쪽 참조).

또한 공 신부는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을 위하여 안법(安法)학교의 개교를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1909115일 자로 인가를 얻어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초기에 남학생 25명으로 시작하였으나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지식인들의 자녀들이 증가하여 1912년에는 여자부를 신설하고 서울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 두 분을 초빙, 안성지역의 첫 여성교육의 개척자가 된다(상기 일대기, 13쪽 참조).

당시 안법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일경 몰래 한글과 우리나라 역사, 음악 등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가대 사진에서 보이는 비록 어린 소년 소녀들이지만 그들에게 까지 여성의 지위 향상과 구국 정신을 넣어주려는 공신부의 집념과 노력은 대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안성읍내 모든 회의는 일본경찰이 입회하는 압박시대였기 때문에 밖으로는 성가대라 칭하고 안으로는 항일 청년운동을 벌여 나갔다.

회의 때는 풍금과 성가 책을 놓고 성가연습을 하였으며 연습 후에는 청년회 활동을 병행해 나갔던 것이다(안성천주교회사, 윤정중, 1980, 45쪽 참조).

필자는 안성성당에서 1948년 초등학교 1학년 때인 9살 때부터 7, 8년 동안 미사전례 때 사제 시중을 드는 복사(服事)로 참여한 바 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초대 교구장 이한택 주교(2010, 4, 26 의정부교구장 은퇴식때 참석자들에게 준 기념사진
천주교 의정부교구 초대 교구장 이한택 주교(2010, 4, 26 의정부교구장 은퇴식때 참석자들에게 준 기념사진

그때에는 라틴어 미사경문에서 복사가 할 미사통상문을 암기하지 못하면 선발되지 못했다. 당시 복사대장인 이한택(현 주교)선배의 지도로 복사단에 가입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경문이 생각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입당 하자마자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사제(임세빈 본당신부)가 라틴어로 뭐라고뭐라고 하면 뜻도 모른 채 앗 데움 귀 레티피갓 유벤뚜뎀 메암하고 외웠던 생각이 난다.

도미누스 보비스꿈“(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엣꿈 스피리투 뚜오"(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는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빠뗄 노스떼르”(주님의 기도)는 라틴어 기도문이 길어서 외우는데 눈물을 쏘옥 뺐었다.

원래는 신자들이 다함께 응답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복사가 대신해야하는 처지였다.

여기에다 성수축복성체강복예절까지 하게 되면 거의 신학생 수준으로 기도문을 응답해야만 했다.

필자는 당시 사제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었으나 3대 독자는 입학을 제한하는 신학교 관례에 따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한 것이 큰 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가정도 성소(聖召)이기 때문이다.

천주교회의 미사전례문은 1962년부터 로마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Ecumenical Council 公議會)를 계기로 라틴어를 폐지하고 오늘날의 각 나라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렀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어서 성가 연습하는 교실에 침투(?)했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여러 번 쫓겨났던 기억이 난다.

안성가톨릭합창단 일동(1954, 10, 26 당시 서울교구 노기남 주교의 사목방문차 안성성당에 오셨을때 기념사진) 이한택 의정부교구 주교 안법고 3학년때(뒤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박고빈 서울교구 신부안법고3학년때(뒤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얼굴), 작곡가 신귀복, 당시 안법고2(앞에서 셋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필자 박종권 당시 안법중1(앞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안성가톨릭합창단 일동(1954, 10, 26 당시 서울교구 노기남 주교의 사목방문차 안성성당에 오셨을때 기념사진) 이한택 의정부교구 주교 안법고 3학년때(뒤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박고빈 서울교구 신부안법고3학년때(뒤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얼굴), 작곡가 신귀복, 당시 안법고2(앞에서 셋째줄 왼쪽에서 첫 번째), 필자 박종권 당시 안법중1(앞에서 둘째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죽어라하고 공부해서 1954년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안성 가톨릭 합창단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한국어 성가는 덕원수도원이 1938년에 간행한 성가집을 보강하여 교회음악의 대가인 이문근(1917~1980)신부의 노력으로 성가의 토착화를 이루게 되었다.

1948년에 이 신부 자작곡 5곡을 4부 합창으로 개편하여 가톨릭 성가집을 편집 출판하였다.

그 후 1951년 판 대구 대교구 성가집의 성가들과 라틴어 성가집들을 보강하여 1957년에 한글 성가 124곡과 라틴어 성가 58곡을 수록한 정선 가톨릭 성가집을 발행하여 전례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미사에서 성체성가 Veni Jesu Amor Mi(사랑의 주여 오소서), Panis Angelicus(천사의 양식) 등은 자주 불리어지고 있다.

안성성당 성가대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 단원 중에서 그 후 성직자인 의정부 교구 이한택 주교, 서울 대교구 고 박고빈 신부(두 분 안법고 3), 수도자(수사, 수녀), 얼굴 작곡가(신귀복 안법 4)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제1회 안성성당 아가페 어머니합창단 성가의 밤 책자 1982, 5, 26(수) 저녁 7시30분 장소/안성 신생극장
제1회 안성성당 아가페 어머니합창단 성가의 밤 책자 1982, 5, 26(수) 저녁 7시30분 장소/안성 신생극장

유명한 교회 음악가인 안성성당 출신 박고영(토마스 1919-2014) 신부는 공안국 신부와도 상통하였고 서강대 대학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아퀴나스 교회음악연구소를 설립한 분이다.(1968년 아퀴나스 합창단 창립, 1991년 아퀴나스 실내악단을 창립한 음악의 대가이다)

현재 안성성당 아가페합창단은 수원교구 교회음악 지도신부인 박요셉 주임신부의 영향으로 매년 합창 발표회를 갖고 교구 유명 합창단을 초빙하여 합동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음악은 잘 알지도 못하는 필자이지만 성가를 통한 심오한 전례가 이루어지고 성가대를 통한 구국 항일 운동으로 까지 연결되는 1922년의 안성성당 성가대 사진 한 장은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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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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