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와 노래 - 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2
아름다운 시와 노래 - 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2
  • 시사안성
  • 승인 2020.01.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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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은퇴로 명예퇴직을 한 지 이제 3년이 지났다. 명예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노래하는 인문학강연과 공연을 활발하게 하다 보니, 은퇴 이후 오히려 더 바쁘게 지낸 듯하다. 이런 모습을 본 큰 딸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일하기 싫어서 은퇴한 건데, 이렇게 바쁘면 괜히 은퇴한 거 아니야?” 나는 대답했다: “얘야, 아빠는 일하기 싫어서 은퇴한 게 아니라, 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은퇴한 거란다.”

젊은 대학생들과 평생을 함께해 온 교수 시절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과 더불어 아름다운 시와 노래의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일은 더욱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니 역시 일찍 은퇴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해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이 출간된 지 100주년이 된 해였기에, “노래하는 인문학으로 아름다운 시와 노래의 감동과 인문정신을 함께 나누면서, 헤세 전문가로서 헤세 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펼쳐낼 수 있었기에 특별히 행복한 한 해였다.

아름다운 시와 노래, 문학과 음악이 함께하는 인문학 공부가 어찌 대학생들만의 것이겠는가? 이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예술이요 인생 공부가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름다운 시와 음악> 대학 수업과 더불어 노래하는 인문학사회운동을 펼쳐온 것이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36년간의 목원대학교 강의활동을 완전히 마무리하게 되었다. 만약 내 인생 최고의 수업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름다운 시와 음악>이라고 말하겠다. 16년 동안 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대학생들과 함께 아름다운 시와 노래의 감동과 인문정신을 나눈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이 수업의 교재로 사용한 나의 책 <<인문학, 노래로 쓰다>>에는 내가 예전 학창시절에 배웠던 노래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아름답고 훌륭한 명곡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수강생들 중에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모르는 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게 아닌가. 음악 교과서에 실린 노래들이 그동안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대학 입시 위주 교육 때문에 음악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 점에서 나는 매번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좋은 시와 노래, 훌륭한 문학과 음악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의미와 가치가 변하지 않을 터인데, 오늘의 우리 젊은 대학생들은 그 아름다운 노래들을 거의 모르고 있다.

목원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시와 음악 콘서트
목원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시와 음악 콘서트

 

이제 나는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었으니, 시와 노래, 문학과 음악의 인문학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갈 작정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노래하는 인문학자의 사명을 제대로 펼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초청 강연과 공연이 있을 때, 나는 여행하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닌다. 반갑게 청중을 만나지만, 대부분의 청중을 다시 만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면, 마음 한 구석에는 아쉽고 애틋한 마음이 남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해 말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36년 세월을 함께해 온 동료 여자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열정적으로 사셨지요!” 또 제자를 졸업 후 24년 만에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 제자도 나를 절제된 열정의 교수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료 교수와 제자가 나에게서 무엇보다도 열정을 보았던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내 아내는 나에게 종종 농담 반 진담으로 제발 열심히 좀 하지 마라고 타이르곤 한다. 이제 은퇴도 하고 나이도 들었는데 여전히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며 열정적으로 생활을 하니,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마음인 게다. 이제는 그저 열정도 내려놓고 마음도 비워야 할 때가 온 것일까?

그래도 내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꿈과 희망이 있다. <아름다운 시와 노래> 평생학습 강좌를 개설하여, 단 한 번 만나는 강연이나 공연에서만이 아니라, 매주 즐겁게 만나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즐기면서 공부하고 싶은 것이다.

다가오는 새 봄을 내가 유달리 기다리는 이유이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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