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에 안성의 면(面) 이름은 어떻게 바뀌었나?
1914년에 안성의 면(面) 이름은 어떻게 바뀌었나?
  • 봉원학 기자
  • 승인 2020.01.24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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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시사안성에서 지난 21일 게재한 “경기도, 일본이 만들어 바꾼 지명 바로잡는다... 안성의 사라진 지명 되찾을 수 있을까?” 기사와 관련해 안성의 읍면동 이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의 문의가 있었다. 또 설 명절을 맞이하여 가족이 모여 안성의 옛 이야기 소재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1914년 안성의 면(面) 이름은 어떻게 바뀌었나?”를 게재한다.
일제 강점기 안성 지도
일제 강점기 안성 지도

현재 안성시 행정구역의 원형은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이다.

당시 41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한제국시절 안성군과 죽산군(5개면 제외), 그리고 양성군의 대부분 지역이 합해져 안성군이 되었다.

이러한 행정구역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다가 196311일부로 당시 용인군에 속해 있던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되었고, 20년후인 1983년 당시 안성군 원곡면과 공도면의 일부지역이 평택군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소소한 지역내 경계변경이 있었고, 199841일 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성의 옛 면()이름을 통해 지역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게재 순서는 안성기략(安城記略, 1925)의 게재순서를 따랐다.

 

안성1·2·3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당시 안성군 북리면(北里面), 서리면(西里面), 동리면(東里面)이 합해져서 읍내면(邑內面)이 되었던 곳이다.

읍내면은 1931년 안성면(安城面)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3771일자로 안성읍(安城邑)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98년 안성군이 안성시가 되면서 1, 2, 3동으로 분리되었다.

 

보개면(寶蓋面)1914년까지는 당시 안성군에 속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좌면(北佐面), 가사면(加士面), 거곡면(居谷面), 기좌면(其佐面), 율동면(栗洞面)을 합해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198711일 행정구역 개편때 삼죽면의 남풍리, 동평리, 가현리가 보개면에 편입되었다, 이 때 편입된 가현리는 북가현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양복리의 복거, 신기 동신곡 마을이 금광면에 편입되었고, 19976월 가사리와 가현리 일부가 안성읍에 편입되었다.

보개면이라는 명칭은 현재 보개면에 있는 보개산(寶蓋山)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광면(金光面)1914년까지는 안성군에 속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조령면(鳥嶺面), 대문면(大門面), 가동면(加洞面), 월동면(月洞面)을 합해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1987년 보개면 양복리의 복거, 신기 동신곡 마을이 금광면에 편입되었고, 1998년 농촌리, 현수리가 안성1동으로, 19998월에는 내우리 일원이 현수동에 편입되었다.

2003년에는 내우리, 개산리 일부가 보개면과 발화동으로 편입되었다.

금광면이라는 명칭은 현재 금광리에 위치해 있고 오랫동안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리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전후해 금광산(金光山)으로 불린 산이름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운면(瑞雲面)1914년까지는 당시 안성군에 속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촌면(奇村面), 송죽면(松竹面), 덕곡면(德谷面), 입장면(立長面)을 합해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서운면이라는 명칭은 지금도 안성을 대표하는 명산 중 하나인 서운산(瑞雲山)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양면(薇陽面)1914년까지는 당시 안성군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목촌면(木村面), 진두면(辰頭面), 만곡면(晩谷面), 우곡면(于谷面)의 일부가 합해서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1998년 서운면 중리 마을이 안성2동으로 편입되었다.

미양면이라는 명칭은 미양면 법전리에 있는 미양산(薇陽山)이라는 산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대덕면(大德面)1914년까지는 당시 대부분이 안성군에 속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죽촌면(竹村面), 소촌면(所村面), 금곡면(金谷面), 견내면(見乃面). 양성군 송오리면(松梧里面) 일부, 양지군 고서면(古西面) 일부를 합해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1977년 건지리, 소현리, 모산리 일부가 안성읍에 편입되었고, 1993년 건지리와 소현리 일부가 안성읍에 편입되었다.

대덕면이라는 지명은 대덕면 신령리에 위치한 대덕산(大德山)이라는 산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양성면(陽城面)1014년까지는 양성군에 속해 있었고 양성군의 군청이 있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성군의 읍내면(邑內面), 지동면(紙洞面), 송오리면(松梧里面), 금곡면(金谷面), 덕산면(德山面), 양지군(陽智郡)의 고북면(古北面)일부를 합해 만들어진 지명이다. 양성면이라는 지명은 양성군의 명칭을 이은 것으로 해석된다.

 

공도읍(孔道邑)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성군의 공제면(孔梯面), 도일면(道一面)일부, 구천리면(九千里面), 영통면(令通面), 구룡동면(九龍洞面)일부 등을 합해 공도면(孔道面)이 만들어졌다. ‘공도라는 명칭은 공제면의 공()과 도일면의 도()가 합해져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83년 소사리가 평택으로 편입되는 아픔을 겪었고, 이후 20016월에 읍으로 승격해 공도읍이 되었다.

 

원곡면(元谷面)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양성군의 원당면(元堂面), 반곡면(盤谷面), 도일면(道一面) 일부, 구룡동면(九龍洞面)일부 등 네 개면을 합해 만들어진 행정구역명칭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원당면의 원()과 반곡면의 곡()을 합해 만들어진 지명이기도 하다.

이후 1983년에 용이리, 죽백리, 청룡리, 월곡리 등 4개 리()가 평택군에 편입되는 아픔을 겪었다.

 

일죽면(一竹面)1914년 이전 당시 죽산군에 속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개편때 죽산군의 제촌면(躋村面), 북일면(北一面)일부, 북이면(北二面), 남일면(南一面), 남이면(南二面) 5개면을 합해 죽일면(竹一面)이하고 했다가 이후 191561일부터 죽일면을 일죽면으로 고쳐 비로소 안성군 일죽면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이 생긴 것이다. 1915년 명칭 변경이 죽일면, 죽일면장이 주는 좋지 않은 인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죽산면(竹山面)은 옛 죽산군의 중심지역을 포괄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때 죽산군의 부일면(府一面), 부이면(府二面), 북일면(北一面)일부, 남면(南面) 4개 면을 합해 죽이면(竹二面)이라고 했는데 이후 191561일부터 이죽면(二竹面)이 되었다. 이후 비교적 최근인 1992년 이죽면을 죽산군의 전통을 살려 죽산면으로 개칭했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부일면, 부이면이라는 지명에서 죽산부(竹山府)라는 옛 시절에 대한 죽산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삼죽면(三竹面)은 옛 죽산군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죽산군의 서일면(西一面), 서이면(西二面), 서삼면(西三面) 3개면을 합해 때 죽삼면(竹三面)이라고 했다가, 191561일부터 삼죽면(三竹面)이 되었다.

참고로 삼죽면에 속해 있던 남풍리와 동평리, 가현리가 19871월부터 보개면으로 편입되었다.

 

고삼면(古三面)은 양지군(陽智郡)에 속해 있던 곳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동면(古東面), 고서면(古西面), 고북면(古北面)을 합해 당시 용인군 고삼면이 되었다.

196311일부로 안성군으로 편입되어 안성군 고삼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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