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시와 노래 4: "방랑길에" - 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1
헤세의 시와 노래 4: "방랑길에" - 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11
  • 시사안성
  • 승인 2019.12.27 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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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노래로 쓰다 개정판 표지

지금까지 한국에서 헤세의 시로 만든 노래는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을 비롯하여, 김정식의 <들판을 넘어...><흰 구름> 등 몇 곡이 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시 <방랑길에>로 만든 노래는 오랫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김정식을 만났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그동안 헤세의 시를 가지고 몇 편의 노래를 만들었으니, 만약 악상이 떠오른다면 <방랑길에> 시를 가지고 노래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떠시겠는가?”

그 후 김정식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는 나에게 악보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가 만든 <방랑길에> 노래였는데, “헤세의 시 안에서 만난 영혼의 벗 정경량님께라는 헌사가 적혀있었다. 김정식이 나에게 헌정한 노래 악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고서,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악보대로 노래를 불러보았다. 그런데 선물로 받은 이 노래의 분위기가 아쉽게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김정식은 내가 그 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게 이 시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노래라는 것은 작곡가가 느끼는 바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시를 가지고 만든 노래들이 저마다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법이다. 예술 작품에는 저마다 감상과 해석의 자유가 있으니, 여기에 바로 예술의 묘미와 가치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면 예술에는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는데, 만약 이에 대한 인식과 감식력이 부족하면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아무튼 김정식의 노래 <방랑길에>는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의 노래가 아니어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시를 차라리 내가 원하는 분위기의 노래로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작곡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시에서 느끼고 생각해온 바대로 노래를 만들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일단 그 시를 여러 번 낭송하면서 각 시구(의 낭송)에 어울릴 듯한 곡조를 한 소절씩 생각해내어 노래로 불러보면서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여러 달이 지나자 어렴풋이 노래가 형성이 되었고, 드디어 내가 만든 노래가 생겨난 것이다.

그때 마침 태학사에서 <<인문학, 노래로 쓰다>> 책의 개정판 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 노래의 악보를 이 책에 넣으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노래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 내 마음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명곡 90개 노래의 악보를 해설과 더불어 실어놓은 이 책에 감히 내가 만든 노래 악보를 실어도 될까하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90개의 명곡에 누가 될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만든 노래를 책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는 얘기를 출판사 편집부장에게 들려주었더니, 반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니, 교수님이 직접 작곡하신 곡이니까 더욱더 큰 의미가 있는데, 당연히 책에 넣으셔야지요!” 편집부장이 한 격려의 말에 고무되어, 나는 기꺼이 나의 노래를 책에 넣기로 하였다. 이런 사연으로 인하여 마침내 헤르만 헤세 작시, 정경량 작곡의 <방랑길에> 노래 악보가 <<인문학, 노래로 쓰다>> 책의 맨 끝부분에 실리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 노래를 책에 넣지 않았더라면, 나는 못내 아쉬워했을 지도 모른다.

노래를 만든 후 나는 먼저 이 노래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목원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을 대상으로 이 노래를 불러왔는데, 놀랍게도 반응들이 아주 좋았다. 안성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어떤 시인은 이 노래가 좋다고 하면서, 심지어 두서너 번에 걸쳐 앵콜을 거듭 요청하는 바람에 나를 당황스럽게(?) 한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작곡하여 만들어 본 나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 노래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독일에 있는 기타 선생이자 친구인 레자 치사즈 교수에게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었다. 노래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의 답장은 이러하였다: “인생은 어차피 고통과 슬픔이 가득 차 있는데, 왜 그렇게 노래를 슬프게 만들었나? 다음에는 좀 즐거운 노래를 만들어 보시게나.”

인생이란 짧고 허무한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내용의 이 시를 나는 애상적인 분위기의 노래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레자 친구의 권유도 있거니와, 앞으로 진정한 나의 인생 자작곡을 하나 만들고자 한다. 그 노래가 언제 탄생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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