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시와 노래 3 "흰 구름"...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10
헤세의 시와 노래 3 "흰 구름"...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10
  • 시사안성
  • 승인 2019.11.2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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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6월 목원대학교에서 열린 헤세문학 콘서트 

헤르만 헤세가 23살에 쓴 산문 중에 <작은 기쁨들>이라는 글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껴야할 일상의 즐거움에 대해 쓴 것이다. 우리가 요즈음 말하곤 하는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비슷한 것이라고나 할까. 오래 전에 읽은 이 글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대목은 매일 아침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을 갖자는 것이다.

젊은 날에 읽은 이 글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틈만 나면 늘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파란 하늘과 더불어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에는 더욱더 자주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아름답게 떠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더없이 청랑해지는 듯하다.

헤세는 자연물 중에서 특히 구름을 아주 좋아했다. 헤세의 초기 성공작 <<페터 카멘친트>>에서 헤세는 이 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보여다오! 아니면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나에게 보여다오!”라고 썼다. 그가 얼마나 구름을 사랑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젊은 시절 헤세의 문학에 심취해있었던 나는 특히 이 대목을 수백 번도 더 넘게 독일어로 암송하며 지냈다.

구름을 노래한 헤세의 시로는 <흰 구름>이라는 시가 단연코 가장 대표적인 시일 것이다. 이 시는 <들판을 넘어...>와 같은 해인 1902년경에 쓴 헤세의 초기 시이다.

 

흰 구름

 

오 보아라, 구름이 다시금 흘러간다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의

조용한 멜로디처럼

파아란 하늘 저멀리!

 

그 누구도 구름을 알 수 없다,

오랜 여행길에서

모든 방랑의 고통과

기쁨을 알지 못한 사람은.

 

태양과 바다와 바람처럼,

나는 하얗고 정처 없는 것을 사랑한다,

그들은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매요 천사들이기 때문에.

 

구름을 통하여 방랑과 향수를 표출한 이 시는 헤세가 젊은 시절 내내 지니고 있었던 심경을 잘 보여준다.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개인적 사연과 어두운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방황하면서, 늘 진정한 마음의 고향, 정신적인 고향을 추구했던 헤세가 아니었던가.

<흰 구름> 시에 영향을 받아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분들이 있다. 한 분은 이 시를 노래로 만든 김정식이고, 또 한 분은 시인 이해인 수녀이다. 김정식은 14살 때 만난 이 시로 인하여 자작곡 가수로 살게 되었다고 하고, 이해인 수녀는 15살 때 만난 이 시로부터 영향을 받아 시를 쓰는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어린 시절에 만난 한편의 시나 노래가 어떤 사람에게는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되기도 한다.

김정식과 정경량이 처음 만난 날 2008년 11월
김정식과 정경량이 처음 만난 날 2008년 11월

 

김정식은 14살 때 헤세의 <흰 구름> 시로부터 커다란 감동을 받은 후 38년 동안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2005년에 노르웨이의 옛 수도 베르겐을 여행하던 중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는 것을 보고 <흰 구름>이라는 헤세의 시가 떠올라 노래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식은 200972일 목원대학교에서 열렸던 한국헤세학회의 심포지움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경험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의 삶과 정서에 오랫동안 치유의 기능을 했던 것은 가톨릭 기독교 신앙이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보다 더 결정적인 치유의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헤세의 시였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후 김정식은 헤세의 시와 자신의 노래가 주는 치유의 경험과 영향력을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100년 전 <<데미안>>이 출간된 해인 1919년에, 헤세는 43세의 나이로 아름다운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스위스의 몽타뇰라에 정착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나머지 반평생 43년을 산 후, 86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젊은 시절 하늘과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갈망했던 마음의 고향을 헤세는 마침내 찾은 것일까...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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