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시와 노래 2 "들판을 넘어"...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7
헤세의 시와 노래 2 "들판을 넘어"...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7
  • 시사안성
  • 승인 2019.10.3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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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시를 가지고 만든 노래에 김정식의 <들판을 넘어...>라는 곡이 있다. <들판을 넘어...>는 헤세 초기 ()문학의 결정적 모티프가 되는 방랑과 향수를 노래한 시이다.

헤세의 문학에는 자서전적인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저녁에 다리 위에서>라는 헤세 초기 시는 젊은 시절 헤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러 해 동안 나는 길을 나섰네

끊임없이 동경 어린 갈망으로

강과 구름과 바람과 함께 방랑하며

고향과 안식을 얻으려고(1)

 

이 시에서 여러 해 동안 길을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헤세가 오랫동안 방랑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그 방랑길을 나서게 된 시인의 심경은 끊임없이 동경 어린 갈망이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 헤세 초기 문학의 결정적인 낭만주의적 특성이 나타난다.

헤세가 청년 시절 창작을 시작했던 시기의 문예사조는 신낭만주의였다. 그것은 당시로부터 약 100년 전에 일어났던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정신을 되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세의 젊은 시절 초기 문학에는 무엇보다도 낭만주의적인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결정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우리가 무한하고 영원한 것을 그리워하고 추구한다면, 그것은 곧 종교철학적, 영성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 낭만주의의 영향과 더불어 시작한 헤세의 종교철학적, 영성적 삶과 문학세계는 그 후 평생토록 지속되고 심화된다.

앞에서 본 시의 끝 두 행에서 헤세는 방랑의 특징과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강과 구름과 바람과 함께한 방랑이었고, 방랑의 의도와 목표는 고향과 안식을 얻으려고했던 것이다. 헤세의 초기 시와 소설에는 이처럼 고향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것은 헤세 자신의 고향인 독일의 소도시 칼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헤세가 정신적으로, 종교철학적으로 추구했던 마음의 고향, 영성적 고향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식과 정경량
김정식과 정경량

김정식이 헤세의 초기 시로 작곡한 <들판을 넘어...>는 이러한 헤세 초기 문학의 결정적 특징인 방랑과 향수를 아주 잘 나타내준다. 헤세가 1902년 봄, 헤세가 26세 때 쓴 시 전문을 감상해보자.

 

들판을 넘어...

 

하늘을 넘어 구름이 흘러간다

들판을 넘어 바람이 간다,

들판을 넘어 헤매는 이는

내 어머니의 잃어버린 아이.

 

거리 위로 나뭇잎 흩날린다,

나무 위에 새들이 우짖는다 -

저 산 너머 어디엔가

머나먼 내 고향 있으리라.

 

시인은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며 구름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들판을 바라보며 스쳐가는 바람을 느낀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다가 시인은 이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들판을 헤매며 방랑하고 있는 내 어머니의 잃어버린 아이”. 당시 배타적이고 편협했던 기독교의 분위기로 인하여 부모님에게조차 심하게 반항했던 헤세. 그런 연유로 방랑하면서 평안하지 못했던 그의 안타까운 마음과 괴로운 심경이 이렇게 표출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방랑하는 시인이 그러나 그리워하고 추구하는 것은 바로 저 산 너머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내 고향인 것이다.

헤세문학콘서트 2011
헤세문학콘서트 2011

김정식은 이 헤세의 시 들판을 넘어...로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들판을 넘어>1985년의 어느 여름날 만들었습니다. 제가 살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 105-416 번지에 있던 일명 까치산 집은 까치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거리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헤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 그 해는 제 어머니가 52세로 아직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해입니다. 슬픔과 그리움 기다림과 안타까움 등이 가슴에 매일 아롱졌어요. 그런 마음이 헤세의 시로 인하여 위로받았고 그 감성이 노래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김정식은 이 시를 마음에 되새기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자신의 고독한 심경을 노래로 만들어 표출한 것이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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