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문학과 음악
헤세의 문학과 음악
  • 시사안성
  • 승인 2019.07.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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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6
헤세

올해는 헤르만 헤세의 명작 <<데미안>>이 출간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72일 헤세의 생일에 <<데미안>>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헤르만 헤세의 음악세계> 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필자가 곡의 해설을 맡아 진행하였다. 마지막 해설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어느 방송사의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필자에게 던진 질문은, “헤세가 문학 작가인데 어떻게 헤세의 음악세계라는 연주회를 열게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헤세 문학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는 헤세와 음악이 상당히 낯선 주제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헤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찬송가를 비롯한 기독교 교회 음악과 함께 자라났다. 10살 때 부모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선물로 받아 청소년 시절에 바이올린 연주를 하였으며, 온갖 동요를 다 부를 정도로 노래 부르는 생활을 즐겨하였다.

프라임필
프라임필

 

음악에 대한 헤세의 사랑은 그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헤세가 사망하기 전까지 읽고 있었던 책 중의 하나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시학>>이었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헤세의 관심과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 음악이 없는 삶을 과연 생각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헤세는 평생 동안 음악을 너무도 사랑했다.

1913년경의 편지에서 헤세는 음악이야말로 내가 무조건으로 감탄하고 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예술입니다. 다른 예술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헤세가 문학 작가이면서도 이토록 음악을 최고의 예술로 생각했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데미안>> 10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는 헤세가 젊은 시절에 사랑한 쇼팽으로부터 시작하여, 슈만, 북스테후데, 바흐와 헨델,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헤세가 사랑한 음악가들의 작품들로 레파토리가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이 음악가들의 아름답고 숭고한 음악세계가 헤세의 문학과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리라.

헤세는 특히 오르간 연주를 아주 좋아하였는데, 스무 살 때쯤 집필하여 1901년에 출간된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 <<헤르만 라우셔>>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내가 음악에 눈뜨고 멜로디를 들으면 여러 종류의 공상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은 여덟 살쯤이었을까. 학교가 끝나면 나는 거리의 대사원으로 가서 살짝 문틈으로 들어가 오르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오르간 연주자가 몇 시간씩이나 정신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도, 집 뜰에서도, 침대 속에서조차 나는 끊임없이 허밍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많은 성가와 가곡을 일찍부터 배우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헤세가 청소년 시절부터 오르간 연주에 커다란 감동을 받아, 많은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헤세가 가장 사랑한 음악가는 누구보다도 바흐와 모차르트이다. 1961년 헤세가 사망하기 1년 전, 그는 어느 엽서에서, “모차르트의 저 청랑성, 천진무구함은 결코 어린이의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 깊은 속까지 다 알게 된 사람의 청랑함이며 천진무구함이라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확신입니다.”라고 말한다.

청랑(Heiterkeit)’이란 푸른 하늘처럼 해맑은 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헤세가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어느 이탈리아 기자가 헤세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때 보았던 노년의 헤세는 흡사 어린 아이처럼 해맑고 지혜로운 현자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지만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여 평생 동안 청랑한 영성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한 성 프란치스코. 헤세는 젊은 시절부터 그러한 성 프란치스코를 아주 사랑하고 존경하였는데, 헤세 또한 마침내 그 청랑함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음악은 예술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예술이다, 헤세는 무엇보다도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을 통하여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 인생의 본질을 깨달았다. 아름답고 훌륭한 헤세의 시와 소설이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학과 음악의 감동 없이 어찌 소중한 하루의 인생을 살겠는가.

헤세는 평생에 걸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 반전·평화주의자이다. 헤세의 숭고한 인문정신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 널리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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