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에 만난 헤세의 시
14살에 만난 헤세의 시
  • 시사안성
  • 승인 2019.05.2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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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 4
필자 정경량
필자 정경량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독일의 헤르만 헤세이다. 나는 스무 살 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만난 후, 평생에 걸쳐 헤세 문학 전문가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대학에서 오랜 세월 동안 헤세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오다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아련히 먼 기억 저편에서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내가 14살 때 처음 만났던 헤세의 시 <방랑길에>였다.

오랫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만난 첫 번째 헤세 작품이 <<데미안>>이라고 무심코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처음 만난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이 아니라, 그의 시 <방랑길에>였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시는 오랫동안 나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50여 년 전에 만났던 잊을 수 없는 그 시를 오늘 다시 한 번 감상해본다.

 

방랑길에

크눌프를 회상하며

                            헤르만 헤세

 

슬퍼하지 말아라, 곧 밤이 되리니,

그러면 우린 창백한 땅 위에

몰래 웃음 짓는 싸늘한 달을 바라보며,

손에 손을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곧 때가 오리니,

그러면 우린 쉬게 되리라.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둘이 밝은 길가에 나란히 서면,

비가 오고 눈이 내리며,

바람이 또한 오고 가리라.

 

이 시는 하루해가 짧아 곧 밤이 되고 우리의 인생도 어느덧 끝나 무덤에 묻혀 안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다 시인은 무덤 위에 무심히 내리는 비와 눈,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을 보여주면서, 영원한 시간에 비해 순간을 살다 가는 짧고도 허무한 우리의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이 시를 만난 지 50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 나이가 든 지금, 인생이란 짧은 것이리라는 어린 시절의 그 예감이 이제는 실감으로 바뀌었다. 인생에서 지나간 시간은 그것이 길든지 짧든지 간에 지나고 나면 모두 짧게 느껴지는 법이다. 어쩌면 그토록 짧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그만큼 더 애틋하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시 위주의 혹독한 학교생활로 인하여 나는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 후 이어진 중학교 시절 나는 깊어만 가는 청춘의 고뇌와 인생의 번민으로 인하여 더욱더 침울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를 처음으로 위로해 준 것은 뜻밖에 헤세의 시 <방랑길에>였다.

당시 내 고향의 집과 주변에는 외국 시인들의 시를 액자에 넣어 걸어두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 중에 헤세의 시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종종 그 시들을 감상하곤 했는데, 내 발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헤세의 시였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그 액자 앞에 서서 헤세의 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한다. 그때는 헤세라는 시인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내가 헤세와 더불어 평생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헤세의 시 <방랑길에>는 그렇게 해서 나를 헤세와 인연을 맺게 해 준 운명적인 시가 된 것이다.

헤세는 이 시를 통해 청소년기에 겪었던 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인생이란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너무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인생관을 심어 주었다. 이 시를 만난 지 13년 후인 27살 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좌우명을 세웠다: “Das Leben muss fröhlich sein. 인생이란 즐거워야만 한다.”

고통과 슬픔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인생이란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온 우주에서 이 신비로운 선물을 받은 우리가 이 선물을 기뻐하지 않고 행복해 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고통과 슬픔조차도 이 커다란 인생 선물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삶의 요소들일 뿐이다. 그러니 인생이 힘들고 괴롭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들 마시라. 어떻든지 간에 즐거운 삶을 향해 나아가시라. 행복을 향한 꿈과 희망이 살아있기만 하다면, 그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바라보는 삶의 북극성은 끝내 우리의 꿈과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나 새로운 꿈과 희망을 노래하자!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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