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만 50세 되던 해 겨울, 그동안 써 온 글을 모아서,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집을 하나 출판하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지어준 ‘진솔하고 뜨거운 고백’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수필집이다.
1990년 12월 1일 안성 군민회관(시 승격 이전) 2층 회의실을 빌려 안성청년회의소(JCI-ANSOUNG) 주최로 ‘박종권 수필집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었다.
작품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좀 쑥스럽긴 하지만 기쁘기 그지없다. 출판되어 나온 책을 다시 읽어보니 나 자신을 책하는 소리로 되돌아온다.
살아오면서 내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 하나를 반추(反芻)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상당히 심각한 질문이다. 원심력으로 맴도는 사유(思惟)를 구심점에 모으는 일을 확인하고 밖으로 공표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25세 청년시절에 그 질문을 내게 물은 기억이 나는데 또다시 묻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얻은 대답이 시원치 않아서 그러는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파서 그러는가?
“출판기념회는 무슨 출판기념회? 유명인사도 아닌데”, 필자에게는 좀 거창한 행사지만 삶의 중간평가라도 한번 시도해 보자는 뜻으로 이날 발표회를 가진 것이다.
“내 자신이 어떤 답답한 마음을 터트리고 싶어서 물리적인 그 어떤 것 보다는 정신적인 웅비를 쟁취하고 싶어 책을 내게 되었다”고 인사말에서 밝혔듯이 정신적인 번민의 탈출구를 찾으려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필자는 초임으로 그동안 25년이나 근무하던 학교를 옮겨야 할 시점에 놓여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 공,사립 교원의 인사교류 대상자로 선발되어 천주교 수원교구 재단 이사장의 추천을 받아 놓고 있던 차였다.
공립학교로의 전출이 개인적 발전의 기회도 되겠지만 낯선 직장이며 더구나 정든 모교를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많은 번민이 있었던 것으로 회고된다.
당시 나의 영혼과 육신이 아주 흡족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였다면 ‘내가 누구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은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보잘 것 없는 작품집을 소개하자면, 머리말에 이어 전체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부록으로 기행문 2편 등 총 65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장 <나는 누구인가>편에서는 ‘꼬마 복사(服事)의 꿈’ ‘어머니와 외아들’ 등 13편으로, 주로 어렸을 때의 꿈과 개인 신상에서의 느꼈던 점이 수록 되었다.
제2장 <크레이지 JC>편에는 ‘청년이여 그대 이름은’ ‘인간은 도약하는 갈대’ ‘수 만 가지 지류가 모여’ 등 16편으로 주로 심혈을 기울여 창립에 앞장섰던 청년회의소(JC) 회원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을 다루었다.
제3장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편에서는 ‘인륜관계의 가르침’ ‘도금성인(鍍金聖人)’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등 15편으로 가톨릭 신자로서의 종교관과 신앙생활에서의 명상에 관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제4장 <무언의 대화>편에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 ‘배우자에 대한 나의 개방’ ‘사랑한다는 관심’ ‘사랑스러운 초대’ 등 19편의 글로 주로 부부 주말강습(M.E)에서 부부가 서로 대화체로 주고받은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부록으로는 <판문점 주마 간산기>와 <이국(異國)에서의 자아 발견>이라는 기행문 두 편을 실었다.
출판사에서는 무명인사의 글을 자사 추천도서로 정했던 것이 부담이 갔는지, 신간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저자의 출판비 부담이 미약한 입장에서 출판사의 사정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친구인 출판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유명 언론사 문화부장 앞으로 수필집 몇 부씩 보내어 선도 보여야 하고 우선 대형 서점에도 몇 부씩 비치했다는 말도 들었다.
노력한 결과인지 당시 중앙 일간지 H일보 문화 산책 란에 간단히 소개된 적도 있고 지방 언론에는 ‘25년 동안에 약 6천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박종권 교사의 진솔하고 뜨거운 삶의 고백을 다룬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라는 수필집을 출판하였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등단 작가도 아니고 일개 무명 인사의 보잘 것 없는 책자인데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30년 전의 이야기를 쓰려니 더욱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19년 금년 나이 8순에 들어서서, 당시 수필집에서 내게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한 번 되묻게 되는 순간이다.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누구에게서 들으려고 하는지 무모한 일이기도 하다.
철인(哲人)들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졸부(拙夫)인가 오히려 더 깊은 인생관에 빠지게 됨은 어찌된 일인가? 아직 이성적 정신적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심각한 철학적 과제를 올려놓고 스스로 헤매고 있는 것일까?
산파술의 거장 소크라테스(Socrates)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적이 있다. ‘반성된 삶’이란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며 슬기롭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
물론 나 자신을 완전히 알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물으며 반성된 삶을 묵상(黙想)해 가면서 맘 편안하게 살아갈 뿐이다.
인간의 목적은 작가인 그 분만이 알 수 있다. 다만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은 특히 영성(靈性)의 발전을 통하여 인격자로서 완성될 수 있다고 스스로 규정해 본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지혜 4.9)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1~13)
박종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