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유지들 경성을 관광하다 – 매일신보 1913년 2월~4월 기사
죽산유지들 경성을 관광하다 – 매일신보 1913년 2월~4월 기사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9.03.17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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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안성관련 신문읽기 – 28
매일신보 1913년 2월 28일 3면3단

191322833- ○○不太平, 택일까지하고 퇴혼, 방태평의 락심쳔만

경긔도 쥭산군 부일면 교동 일통 구호 방○○(竹山郡府一面校洞 方○○)은 동리 일통 사호 리○○(○○)을 피고로 삼아 결혼쳥구소송(結婚請求訴訟)을 경셩디방법원 사부에 뎨긔하얏는대 그 원인 사실을 드른즉, 원고 방○○의 넷재아들 방○○(○○)이라는 젊은사람이 잇는대 년긔가 졈졈 쟝셩함으 그 부모가 어진 배필을 엇어 쥬고져 신부를 구하는즁에 피고 리○○의 누의 십칠셰된 신부가 잇는바 한 동리에셔 내용도 알고 또한 신부의 위인도 가합함으로 곳 결혼을 쳥구하얏더니 그 집에셔도 승낙이 되야 작년 구월에 혼약이 완뎡되야 원고가 피고 리○○에게 납채까지하고 본년 이월이십사일에 결혼식을 거행하기로 택일까지됨애 신랑되는 방○○은 일각삼츄로 혼일이 도달하기를 쥬야고대하며 내심에 깃븜을 진뎡치 못하더니, 그동안 피고는 무삼 생각이 낫덧지 별안간 신부를 다른집에다 슘기고 파혼을 하겟다하니 일자도라오기를 더듸게 녁이고 깃거워하던 방○○의 락심하는 모양은 도뎌히 부모된 쟈의 참아 보기가 어려운 고로 특별히 재판관의 위력으로 결혼을 리행하도록 재판하야 쥬기를 바란다 함인대, 삼원자리 인지를 붓쳣을뿐 안이라 샹당한 보슈를 내이고 변호사까지 의뢰하얏다하니 이때까지 리혼사건의 소숑은 루차잇셧스나 결혼쳥구의 쇼숑은 심히 귀한 사건이라더라

 

죽산에서 있었던 결혼청구 소송을 다룬 기사다 .

결혼을 안하겠다는데 결혼을 하겠다고 소송을 걸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인데 당시의 결혼 풍속의 일면과 변화를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기사다.

당시 매일신보 지면을 보면 이 무렵부터 변호사 개업광고가 등장하기도 한다.

기사에 등장하는 부일면 교동은 현재의 죽산면 죽산리 지역이다.

매일신보 1913년4월13일3면2단
매일신보 1913년4월13일3면2단

 

191341332- 竹山郡觀光團

京畿道 竹山郡內 有志者 40명은 京城觀光하기 위하야 22日 郡守 李潤永氏引率하고 할터인대 總警府 及 各官衙 及 銀行 學校 等하고 5日間 滯在豫定이라더라

매일신보 1913년4월17일2면5단
매일신보 1913년4월17일2면5단

 

191341725- 竹山觀光團 來期

京畿道 竹山郡 觀光團 40餘名23日 入京하야 6日 當地觀察하리라더라

매일신보 1913년4월18일2면4단
매일신보 1913년4월18일2면4단

 

191341824- 竹山觀光團 觀光日割

竹山郡 觀光團 約4022上京한다함은 昨己報道어니와 京畿道廳에셔는 警務總督府照會하야 該 團員相當 保護하야 便宜하라 하얏는대 其 觀光場所 及 日割한즉 如左하더라. 23일은 京畿道廳 總督府, 警務摠監館, 商品陳列所, 24일은 日出小學校, 朝鮮銀行, 美術品製作場, 總督中學校, 官立高等學校 25일은 京畿高等女學校, 京城府 部事務所, 官立女子...(*이하 2줄 판독 불가)...物園, 總督府醫院, 東亞煙草株式會社 工業傳習所27일은 勸業模範場 支場, 東拓出張所 28일은 朱安製鹽場 等視察터이라더라.

매일신보 1913년4월24일2면5단
매일신보 1913년4월24일2면5단

 

191342425- 竹山郡 觀光團

25日 午後 2時 竹山郡觀光團 若干名入京하야 東拓農場 其他視察하리라더라

매일신보 1913년4월26일3면4단
매일신보 1913년4월26일3면4단

 

191342634- 쥭산관광단의 동졍

입경즁인 쥭산관광단(竹山 觀光團) 일행 이십여명은 재작일 오후 이시경에 남부역소에 젼왕하야 사무집행하는 샹황과 문부졍리한 사항을 일일이 시찰하얏다더라

 

19111027일 당시 권력 2인자인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양성 관광단을 만났다는 기사를 소개한 적 있다.

이번에는 죽산관광단이 경성(서울)을 관광한다는 기사다.

당시 양성 관광단이 정무총감을 만난 것이 이례적이라면, 이번에는 무려 5차례에 걸쳐 관련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이례적이라고 할만하다.

죽산관광단의 면면이 궁금해지는데 기사를 통해서는 당시 군수가 인솔했다고 하니, 죽산지역의 유지였으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들의 일정을 보면 오늘날 보면 견학이라고 할만한 일정인데, 어찌보면 당시로서는 여행과는 다른 정말 관광”(빛을 본다는 의미, 새롭고 배울만한 것을 본다는 의미)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 뒤에는 일제의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고, 조선민중을 세뇌하고 굴복시키기위한 의도가 숨어있었음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들을 인솔한 이윤영 군수는 친일인명사전(2009)에 의하면 1874년 용인 출생으로 1907년 보성전문학교 경제과를 졸업한 요즘말로 엘리트다.

  1. 년 죽산군수가 된 후 합병후에도 유임되었으며 19128월에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고, 경성관광을 한 후 19137월 고등관7등으로 승급되었다. 이후 관직을 퇴직하고 도평의회의원, 용인금융조합 조합장, 용인연초경작조합 조합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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