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독립운동가(15) - 윤종건, 이강명, 이강칠, 이경수, 이교정, 이국상, 이규동, 이규완, 이규창, 이규철, 이근수
안성의 독립운동가(15) - 윤종건, 이강명, 이강칠, 이경수, 이교정, 이국상, 이규동, 이규완, 이규창, 이규철, 이근수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9.03.16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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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기획연재-16

편집자 주 : 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기획연재는 먼저 지난 20178월에 안성시가 출판한 안성의 독립운동가에 소개된 316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번에 10명 이상씩 나누어 소개할 계획이다.(소개순서는 책자에 있는 대로 성명 가나다순이다) 31일 이야기 했듯이 여기 소개하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안성시에서 현재 개정판을 준비중이다. 독자와 안성시민중에서도 관련 제보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쪼록 이 연재가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종건 尹鍾健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추곡리 79

이 명 : 尹鐘根

형량 : 징역 2

생몰년도 : 1903. 3. 7~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저녁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서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양성우편소에 투석하는 등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每日申報(1919. 8. 10 / 1921. 1. 23)

東亞日報(1920. 7. 23)

 

이강명 李康明

독립운동가 이강명의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이강명의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계리 464 / 고양군 숭인면 용두리 242

이 명 : 李素連, 李素進, 李明

형량 : 징역 2

생몰년도 : 1911. 7. 27~미상

계열 : 국내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사람이다. 193351일 메이데이 격문사건 및 종연방직 파업사건을 조사하던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조선공산당 재건 동맹사건이 발각되었 다. 이로 동년 925일부터 9개월에 걸쳐 관련자 400여 명이 검거될 때 함께 체포 되었다.

193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미결구류일수 150일 통산)

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7227일 출옥했다.

이후 다시 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했다.

 

관련자료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이강칠 李康七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원리 448

형량 : 징역 10

생몰년도 : 1890. 8. 9~1956. 12. 20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사람이다. 유춘삼( 柳春三) ·박광순( 朴光順) 등 동지 7명과 함께 거사계획을 세우고 동리 주민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고했다. 이들은 191942일 죽산 장날에 1천여 명의 군중이 운집한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경찰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거쳐 보통학교까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6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동년 6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경성지방법원 1919. 6. 6 / 경성복심법원 1919. 6.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3~175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17

 

이경수 李敬洙

독립운동가 이경수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이경수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서리 322

형량 : 징역 16

생몰년도 : 1892~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사람이다. 1919330일 밤 안성군 읍내면 동리, 서리, 장기리 각 마을에서 모인 500~6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41일 밤 장기리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였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5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6월형을 받아 공소 하였으나 동년 619일 경성복심법원과 73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관련자료

判決文(경성지방법원 1919. 5. 2 / 경성복심법원 1919. 6. 19 / 고등법원형사부 1919. 7. 31)

 

이교정 李敎政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4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3~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이국상 李國相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530

형량 : 징역 26

생몰년도 : 1886. 5. 18~1937. 10. 30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 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6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이규동 李圭東

 

이규동
이규동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632

이 명 : 李伯三

형량 : 징역 26

생몰년도 : 1894. 3. 15~1984. 5. 31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 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6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이규완 李圭完

 

이규완
이규완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637

형량 : 징역 7

생몰년도 : 1901. 6. 15~1961. 5. 7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국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41일 오후 8시경 홍창섭으로부터 독립만세계획을 전해 듣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 고, 면장을 앞세우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 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 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선두에 서서 주재소에 투석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조경수(趙慶洙) · 정문명(鄭文明) 등과 함께 쌓아 둔 솔잎에 방화했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동료들과 함께 우편소 주변의 전봇대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려 통신을 두절시키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7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이규창 李奎昌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죽백리 51

형량 : 징역 13

생몰년도 : 1900. 3. 17~1970. 6. 20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 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13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이규철 李圭哲

 

이규철
이규철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103

형량 : 징역 26

생몰년도 : 1900. 2. 4~1959. 7. 4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 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6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이근수 李根洙

 

이근수
이근수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118

형량 생몰년도 : 1879. 4. 25~1953. 5. 14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東亞日報(1920. 3. 23)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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