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독립운동가(13) - 오태환, 오홍근, 오화근, 원지성, 유만수, 유병세, 유복만, 유영창, 유재근, 유재혁, 유진권
안성의 독립운동가(13) - 오태환, 오홍근, 오화근, 원지성, 유만수, 유병세, 유복만, 유영창, 유재근, 유재혁, 유진권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9.03.14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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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기획연재-14

편집자 주 : 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기획연재는 먼저 지난 20178월에 안성시가 출판한 안성의 독립운동가에 소개된 316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번에 10명 이상씩 나누어 소개할 계획이다.(소개순서는 책자에 있는 대로 성명 가나다순이다) 31일 이야기 했듯이 여기 소개하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안성시에서 현재 개정판을 준비중이다. 독자와 안성시민중에서도 관련 제보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쪼록 이 연재가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태환 吳泰煥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 246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5~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오홍근 吳弘根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 242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94~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오화근 吳華根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 251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4~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원지성 元智成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지문리 460

이 명 : 元性三

형량 : 징역 3

생몰년도 : 1884. 6. 16~1933. 4. 11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양성면으로 행진했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 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 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 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3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유만수 柳萬秀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개산리 201 /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616

형량 :

생몰년도 : 1923. 10. 24~1975. 4. 25

계열 : 의열투쟁

포상훈격 : 애국장(1990)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사람이다.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동년 5월 일본 가와사키(川崎)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중인 한국인 노무자들과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동회사에 강제수용 생활을 하다가 탈출하여 일본 내의 노무자 단체에서 활동하며, 일본으로 온 강제징용자들의 구출활동을 한 후 귀국했다.

19455월 강윤국(康潤國) ·조문기(趙文紀) 등과 함께 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하여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비밀리에 조직했다. 1945720일 친일의 거두인 일본 중의원 의원 박춘금(朴春琴)이 소위 대의당(大義黨)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조선인의 황민화(皇民化)를 선동하는 아시아민 족분격대회를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개최했다. 이때 동지 3인과 다이너마이트 폭탄 2개를 만들어 몰래 대회장에 들어가 연단과 복도에 장치하여 폭발시켜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부민단의거, 혹은 부민단폭파사건이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867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33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8, 200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805~810

 

유병세 柳炳世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0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2~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유복만 柳福萬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4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96~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유영창 劉永唱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당촌리 78

이 명 : 柳永昌

형량 : 태형 50

생몰년도 : 1893. 12. 1~1925. 5. 19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대통령표창(2007)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사람이다. 191942일 밤 약 200명의 군중과 함께 안성군 일죽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면사무소와 주천리주재소에 투석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7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혐의로 태형 50대에 처해졌다.

192012월에는 신형식( 申亨植) 의 주도 아래 충북 청주 일대에서 상해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경성지방법원 1919. 7. 17)

 

유재근 兪載根

독립운동가 유재근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유재근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동리 / 경기도 시흥 동 구로 9-2

이 명 : 高原秀雄

형량 : 징역 6

생몰년도 : 1913. 1. 28~미상

계열 : 국내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에서 출생했다. 194312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국가 총동원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4622일 만기 출소했다.

 

관련자료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유재혁 柳在爀

 

본적/주소 : 미상

형량 : 총살 순국

생몰년도 : 1887~1907. 11

계열 : 의병

포상훈격 : 애국장(2009)

 

출신지는 미상이다. 경기도 죽산( 竹山)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다. 190711월 경기도 죽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죽산분파소 순사에게 체포되어 압송 도중 총살 순국했다.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폭도에 관한 편책(1907. 11. 7)

 

유진권 兪鎮権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2~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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