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친절한 일본 (1)
의외로 친절한 일본 (1)
  • 시사안성
  • 승인 2019.03.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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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 -30
일본 오사카(大阪城)에서의 필자/ 일본 安城JC를 방문할 당시 공식적인 일정을 끝내고 오사카 성을 관광했을 당시에 포즈를 취한 필자의 모습이다
일본 오사카(大阪城)에서의 필자/ 일본 安城JC를 방문할 당시 공식적인 일정을 끝내고 오사카 성을 관광했을 당시에 포즈를 취한 필자의 모습이다

197947일부터 대만을 방문하는 안성JC 대표단이 일정을 끝마치게 되면 추가로 일본을 방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비자를 신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자유롭게 외국 여행을 다닐 수 없는 한국의 실정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42일자로 외무부에서 발급받은 3개월짜리 단수여권엔 기재된 지역만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제한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일본 경유는 불가능하게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은 당시 지명이 같은 한국의 안성농협과 일본의 安城농협이 우호결연을 맺고 있던 인연으로 반드시 일본 安城JC를 가봐야 하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다.

일행은 412일 대만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관광을 마친 후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안O석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일본 安城JC 역대회장에게 연락을 취하고 무조건 日本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1. 세계 초고속 新幹線

일본 JC회원들과 단체사진/ 환영 나온 일본 安城JC 회원들과 한국 안성JC 방문단 일행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오른 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일본 JC회원들과 단체사진/ 환영 나온 일본 安城JC 회원들과 한국 안성JC 방문단 일행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오른 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

홍콩에서 국제전화로 일본 安城靑年會議所(The Anjo Junior Chamber, JC) 杉浦 保선배에게 14일 오후 320大阪(OSAKA) 공항에 도착하겠다는 연락은 취했어도 선배가 반갑게 맞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았었다.

일본 공항에서는 다소 불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입국장에서부터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한 공항직원의 태도 때문에 우리들의 기분을 확 망쳐버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는 도무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일본말만 지껄이면서 우리 일행을 한 쪽으로 몰더니 칼을 소지했느냐면서 몸수색에 거침없이 돌입하는 것이 아닌가?

칼은 일본도(日本刀)니 사시미 칼이니 하면서 저희들이 더 잘 쓰는 것을 왜 우리한테서 찾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침 필자가 1975년에 안성에 왔던 일본 杉浦 JC회장에게서 받은 명함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 분의 신분과 연락처를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입국을 할 수 있었다.

기분 나쁜 몸수색과 휴대품 검사를 마치고 입국장을 빠져 나가보니 杉浦회장과 또 한사람의 OB선배와 회원 몇 명이 나와서 아주 반갑고도 친절하게 우리를 환영해주는 것이 아닌가?

일본 안성JC 杉浦 회장과 함께/ 일본 관광 일정을 보내는 도중에 스기우라 회장과 함께 오사카 시가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일본 안성JC 杉浦 회장과 함께/ 일본 관광 일정을 보내는 도중에 스기우라 회장과 함께 오사카 시가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일행은 말로만 듣던 세계 초고속의 특급 열차 新幹線(오사카~도쿄)에 몸을 실었다. 시속 200km의 속도는 마치 비행기처럼 느껴졌다. 1등석은 차내가 호텔처럼 아늑하고 깨끗했다.

좌석에서 일행은 마중 나온 JC회원들과 떠듬거리는 일본어와 한문 글자까지 종이에 써 보이며 서로 통성명하느라 정신없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杉浦선배는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한국어 회화 책을 꺼내더니 무릎에 펴 놓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그때서야 우리의 마음은 다소 편해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어 회화 붐이 일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흐뭇해하였다.

달리는 차창으로 가끔 보이는 농촌에선 비닐 못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여자와 노인들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고 근처 청소년들은 야구만 하며 놀고 있었다. 고령화를 걷고 있는 일본의 노인문제가 걱정되는 순간이다.

 

2. 하늘에서 육지로, 다시 바다로

 

방문단은 414일 일본 愛知縣 安城市에 도착하여 이름 모르는 어느 여관 다다미방에서 춥게 첫날밤을 지냈다. 일행은 15일 오전 전자 상가에서 쇼핑 일정을 마치고 오후엔 일본 동쪽 바다에 있는 해상공원 관광을 나서게 되었다.

일본JC 현역 회원들이 숙소에서 우리 일행 4명의 대형 가방을 옮기고 있었는데 언뜻 보니 그들의 얼굴 표정이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대만에서 45일간 永和 JC회원들이 마련해 준 조잡스런 선물 보따리들로부터 시작하여, 대만 홍콩에서 각자 쇼핑한 물건들이 가방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일본 동쪽 바다에 있는 삼하만(三河灣)으로 떠나고 있는 중이다. 일본 회원들이 타고 나온 자가용으로 우리 일행을 분산 시켜서 태우고 간다. 앞자리에 필자 한사람을 태우고 뒷좌석엔 일본 회원들이 나누어 탄 차에서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크게 떠들어 댄다.

선입감에 혹시 한국 사람을 깔보면서 뭐라고 지껄여대며 자기들 끼리 낄낄 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려지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대화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분명히 한국인을 흉보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여서 얼결에 소오 데스까?” 하고 한마디 뱉어 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갑자기 찬물을 끼얹진 듯 그들의 대화가 갑자기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34일간의 일정에서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필자가 뱉은 일본어를 듣자마자, 아마 한국인들 세대에서 일부 일본어를 (일제 강점기를 겪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어제는 일본 하늘을 비행기로, 신간선 초고속열차로 지상을, 오늘(15)은 일본 동해 바다를 요트로 헤쳐가고 있으니 하루만에 하늘과 땅, 땅과 바다를 누비는 것이 아닌가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일본 동해 三河灣 요트 놀이/ 일본 안성JC 회원들과 함께 일본 동쪽 바다 삼하만에서 요트 놀이를 즐기고 있는 안성JC 회원의 모습이다(앞쪽 가운데는 스기우라 회장이고 뒷줄 오른쪽은 필자이다)
일본 동해 三河灣 요트 놀이/ 일본 안성JC 회원들과 함께 일본 동쪽 바다 삼하만에서 요트 놀이를 즐기고 있는 안성JC 회원의 모습이다(앞쪽 가운데는 스기우라 회장이고 뒷줄 오른쪽은 필자이다)

일본 安城 JC회원인 加藤 소유의 아름다운 요트는 시속 7~8노트의 속도로 물결을 때리며 망망대해를 달렸다. 좁아터진 필자의 마음은 요트에 부서지는 물보라와 함께 넓은 바다로 내던져졌다.

양국의 청년들은 그 무엇인가에 서로 끌리기라도 하듯이 형제 같은 우정을 만끽하면서 일정을 소화 시켰다.

요트 아래층에는 며칠이고 먹고 지낼 수 있는 음식, 과일과 간식들이 냉장고에 고루 갖추어져 있었고 음향시설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구명조끼 등 수중 안전 장비는 물론 겉옷이 비에 젖지 않도록 두툼한 점퍼와 비옷을 비상장비로 모두 갖추고 달렸다.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 이들과 섞여서 웃고 떠드는 사이, 이웃나라 일본 청년들의 삶의 수준과 이상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4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환경 덕분인지, 소신껏 풍족하게 즐기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굳이 고기를 잡으러 멀리까지 어렵게 배를 띄우지 않는 듯 했다. 가두리 해안 양식어업을 대량으로 장려하여 바다 가까이 보관되어 있는 활장고(活藏庫)처럼 그냥 쉽게 꺼내어 먹으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3. ‘더치 페이’(Dutch pay) 형식의 환영 만찬회

약간 추운 바다에서 나온 방문단 일행은 일본 岡崎시에 있는 온천장이며 화이트 하우스로 되어 있는 名鐵호텔 등을 전전하며 숨 가쁜 일정을 전개하게 되었다.

교대로 동원되는 회원들의 승용차 속에서도 무언가 청년의 이상을 찾아보려는 듯 자기네 나라 연호(昭和)에 관한 비판도 털어 놓고, 또 이웃나라에 관심이 많은 지 한국정치에 관한 질문을 꽤 많이 쏟아냈다.

필자는 그들에게 비록 일본어 초급이긴 하지만, 일본어 회화 책을 들고 그들에게 한국의 입장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고, 일본 언론이 한국을 보는 관점부터 뜯어 고치라고도 하였다.

평소에 교직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많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하여 비판적이던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건설 업적은 놀라운 것이라며 크게 관심을 표현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웃나라 한국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대 일본 홍보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한국 정부의 일본에 대한 홍보 활동이 북한보다 미미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내에서는 우리 측 민단(民團) 조직 보다는 북측 조총련(朝總聯) 조직이 더 강해 보였다. 많은 홍보 책자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무료로 돌리면서 공산주의 정치체제 홍보에 혈안이 되고 있었다.

자동차 내 라디오의 다이얼도 북한 방송은 크게 나오나 한국 방송은 출력이 약한지 잘 잡히지가 않는 것을 보고 매우 가슴 아파했다.

온천 숙소 오카자키(名鐵岡崎) 호텔/ 방문단이 주로 묵었던 숙소 일본 오카자키 호텔에서 제공한 홍보 엽서 사진이다. 우리 일행이 타고 도착한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 사진이 호텔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온천 숙소 오카자키(名鐵岡崎) 호텔/ 방문단이 주로 묵었던 숙소 일본 오카자키 호텔에서 제공한 홍보 엽서 사진이다. 우리 일행이 타고 도착한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 사진이 호텔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첫날 우리 일행이 거쳐 온 오사카 공항에선 치마저고리 입은 어떤 부인을 만나 반가워서 다가가 한국 사람이시죠?”하고 물었으나 조선 사람이야요!”라는 퉁명스런 대답에 민족 분단의 슬픔을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사실 우리 일행이 일본 방문 계획을 한국에서 세울 때, ‘安城이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인연 때문에 양국의 청년회의소(JC)가 자매결연을 체결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가지고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 도착한 414일 첫날 저녁에 일본 安城JC 회원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열리는 공식 환영만찬이 있었다.

환영회 석상엔 일본 安城JC 특우(特友, OB) 회원들과 정회원(YB)들이 많이 나와 주었다. 두 차례(1975, 1977)에 걸쳐서 한국의 안성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 스기우라(杉浦) 선배의 영향으로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였던 것이다.

한국 안성JC 환영식장/ 일본 안성JC 회원들이 베푸는 환영회장 입구에서 찍은 일행 모습이다. 환영한다는 영어 문구가 건물 입구에 부착되어 있다(사진 오른쪽에 서있는 모습이 필자)
한국 안성JC 환영식장/ 일본 안성JC 회원들이 베푸는 환영회장 입구에서 찍은 일행 모습이다. 환영한다는 영어 문구가 건물 입구에 부착되어 있다(사진 오른쪽에 서있는 모습이 필자)

어느 나라에서든지 국제청년회의소(JCI) 회원들이 즐겨 쓰는 말인 ‘JC 우정'을 일본에서도 느끼는 현장이었다.

조촐한 연회장 건물 입구에 “Well Come To Anjo JC"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Anjo'安城의 일본식 발음이다. 우리를 환영한다는 문구이다. 들어서자마자 회원들이 박수로 맞아주었다.

환영식장 입구에 있는 계산대 앞에서는 참석하는 일본 회원들에게 회비를 받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회식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게 식대를 각자 부담하는 더치 페이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듯 했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끼는 모습이었다.

환영식장에 놓인 식탁은 목재로 두툼하고 넓적하게 만든 도마로 되어 있었는데,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꽃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입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눈으로 먹는컨셉인 듯 했다. 푸짐한 생선회와 김밥이 잔뜩 차려 있었다.

환영식 후 2차 장소 유흥장 모습/ 공식적인 환영식이 끝난 후 2차 자리 일본 유흥장에서 한국 안성JC 회원들과 일본 안성JC 회원들이 함께 어울려서 여흥을 즐기고 있다
환영식 후 2차 장소 유흥장 모습/ 공식적인 환영식이 끝난 후 2차 자리 일본 유흥장에서 한국 안성JC 회원들과 일본 안성JC 회원들이 함께 어울려서 여흥을 즐기고 있다

실용주의를 현실에서 느끼듯 김의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싸 먹는 김의 4분의 1쯤 되는 크기이다. 두부의 크기도 마찬가지다. 전자 상가에서도 소형기기로 전환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축소지향주의문화를 추구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별실 유흥장에는 각종 악기와 젊은 여성을 동반한 노래와 춤이 연결되어 있었다. 양주인 듯 10병을 마시면 라벨을 하나 붙여서 프러스 1병이 추가로 나오기 때문에 실컷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일본 친구가 노래 한 곡조 뽑을 때 필자는 무릎에 끼우는 봉고를 두드려 가며 박자도 맞춰보았다.

34일간 체류한 일본에서의 짧은 일정을 보낸 우리 일행들은 우리의 JC운영과는 약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용주의라는 말이 나왔지만 일본청년회의소는 그 운영에 있어서도 형식주의, 친교위주가 아니었다.

 

4. 일본청년회의소(JC) 운영 방식

 

일본 안성JC회원들이 소지하고 있는 수첩을 입수하여 들여다보니 국제청년회의소(JCI) 운영 규정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수첩에 기재되어 있는 일본 JC회원들의 직업란을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이 청년 상공인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운영체제에서도 기업인들로 고문과 상담역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고문엔 일본 안성市長, 안성商工회의소 會頭와 자매결연 체제가 갖추어져 있고, 相談役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일본 안성상공회의소 副會頭, 운영위원장, 전무이사 등 경제인과 함께 JC운영 면에서 밀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만 역시 JC명칭을 靑年商工會議所(靑商)라고 하여 청년 상공인들을 주축으로 회원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70년 필자가 초대 사무국장으로서 안성JC를 창립할 때 회원 영입에서는 교사, 공무원, 의사, 조합원 등 주로 사무원 위주였었고 상공업에 종사하는 회원은 극소수였던 것이 떠오른다.

부수적인 이야기 이지만, 일본 안성청년회의소 운영 세칙을 뜯어보니 회원 및 가족 간의 경조사 지급규정이 너무나 자세히 적혀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회원 간, 회원 가족 간의 친목이 철저하게 운영된다고 보여 진다.

일본 安城靑年會議所 회원 수첩/ 일본 청년을 이해하기 위해 입수한 수첩 내부에는 회원 사진과 명단, JC宣言, 綱領, JC三原則, JC定款, 運營細則 등이 실려 있다
일본 安城靑年會議所 회원 수첩/ 일본 청년을 이해하기 위해 입수한 수첩 내부에는 회원 사진과 명단, JC宣言, 綱領, JC三原則, JC定款, 運營細則 등이 실려 있다

 

1979년 당시 일본 JC회원 수첩에 적혀있는 상조규정에는, 회원 결혼 시 5000, 병문안 3000, 회원 사망 20,000, 자녀출산 2000엔을 지급하여 주는 것으로 되어 있어 흥미롭기 때문에 거론해 보는 것이다.

월례회에 결석하는 회원에게 적용하는 벌금제도가 너무나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을 보고는 다소 놀라웠다.

월례회 1회 결석 시에는 500엔의 벌금을 내야하고 더구나 무단결석(아무런 통지 없이 결석)시에는 1000엔의 벌금을 매기도록 되어있는 것은 다소 이색적이었다.

벌금 금액이 많고 적고 하는 문제보다는 회의 참석을 중시하는 JC인의 성실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여 져서 그 진정성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다음 날 416일에는 일본 安城(Anjo)시청과 전국의 시범 安城농협을 방문하는 날이다(다음에 계속)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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