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독립운동가(10) - 신복희, 신해갑, 신현구, 심광식, 심의식, 심의철, 심의태, 심혁상, 안기봉, 안사원, 안재헌
안성의 독립운동가(10) - 신복희, 신해갑, 신현구, 심광식, 심의식, 심의철, 심의태, 심혁상, 안기봉, 안사원, 안재헌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9.03.1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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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기획연재-11

편집자 주 : 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기획연재는 먼저 지난 20178월에 안성시가 출판한 안성의 독립운동가에 소개된 316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번에 10명 이상씩 나누어 소개할 계획이다.(소개순서는 책자에 있는 대로 성명 가나다순이다) 31일 이야기 했듯이 여기 소개하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안성시에서 현재 개정판을 준비중이다. 독자와 안성시민중에서도 관련 제보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쪼록 이 연재가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복희 申福姬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한운리

이 명 : 平田粉

형량 : 징역 1

생몰년도 : 1895~미상

계열 : 국내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 사람이다. 194256일 꿈 속 노인의 계시를 받았다며 진천군 진천면 성석리로 가서 오후 5시경 백곡천 제방에서 마을 사람 10여 명을 모아놓고 일본과 중국 간의 전쟁에서 일본이 패하여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또한 천안군 입장, 안성, 장호원, 여주 등을 돌아다니며 수차례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가 불온한 언동이라 하여 체포되었다.

194273일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관련자료

判決文(대전지방법원청주지청 1942. 7. 3)

 

신해갑 辛海甲

독립운동가 신해갑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신해갑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죽산리

형량

생몰년도 : 1915~미상

계열 : 국내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사람이다. 경성공립농업학교 3학년을 수학하던 중 모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퇴학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적색비사(赤色秘社)와 연락한 사건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가택수색을 당하고 체포되어 서대문경찰서로 압송되 었다. 193351일 메이데이 격문사건 및 종연방직 파업사건을 조사하던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조선공산당 재건 동맹사건이 발각되었다. 이로 동년 925일부터 9 개월에 걸쳐 관련자 40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

 

관련자료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신현구 申鉉九

 

본적/주소 : 경기도 죽산군 원삼면 송촌리

형량 : 교수 순국

생몰년도 : 1886~1909. 9

계열 : 의병

포상훈격 : 애국장(1991)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사람이다. 19082월 정주원(鄭周源)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으로 활동했다. 동년 416일 수십 명의 동료와 함께 경기도 죽산군 근삼면 백암리에 거주하는 백윤삼(白允三) 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동년 45월에 걸쳐 백윤삼과 이석진(李碩眞)에게서 각각 군자금을 모집했다. 190963일 정대준( 鄭大俊)외 수 명과 함께 죽산군 서삼면 시암장 내 여인숙 김운선(金雲先) 집에 들어가 일본인 중원방길(中原房吉) 2명을 처단하고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913일 경성공소원에서 소위 강도 및 강도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동년 929일 대심원에서 기각되어 순국했다.

정부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대심원형사부 1909. 9. 29)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101, 102

 

심광식 沈光植

독립운동가 심광식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심광식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강덕리 239 / 중국 남경, 중경

형량

생몰년도 1911. 10. 15~1960. 3. 21

계열 : 광복군

포상훈격 : 애국장(1991)

 

경기도 안성군 미양면 사람이다.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정의부(正義府) 1중대 1소대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洛陽分校)를 졸업하고 19363월 남경(南京)에 있는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에 입당하여 항일운동에 참여 했다. 19373월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서 임시정부 선전부 출판물 간행요원 으로 활동했다. 19421024일 중경(重慶)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충청도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43320일 임정국무회의 비서처 서무담당을 맡아 19443월까지 근무하였으며, 동년 6월 선전부 총무과 보직을 받고 11월까지 근무했다. 19456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처(副官處)의 서무과장으로 임명되어 광복군 참령(參領)으로 복무했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신한민보(1941. 4. 17 / 1941. 8. 17)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509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1, 385, 439

사상정세시찰보고집(2) 32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79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269, 318, 469, 608, 611, 694, 856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71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275, 477, 540, 586, 587, 588, 596, 602, 604, 605, 606, 607, 608, 633, 636, 638, 688, 691, 703, 828, 857, 858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937, 963, 968/ 6296, 309, 608

 

심의식 沈冝植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4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78~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심의철 沈冝喆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0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84~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심의태 沈冝台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5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79~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심혁상 沈赫相

독립운동가 심혁상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심혁상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릉리 313

형량 : 징역 2

생몰년도 : 1907. 2. 18~미상

계열 : 국내 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사람이다. 19324월 죽산농우학원 교원인 김봉순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공산당경기도공작회를 조직하고 공산운동을 전개하다가 발각되어 1932711일 검거되었다. 당시 죽산농우학원 강사로 공작위원회준비회의 비서부를 담당했다.

19349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

을 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5510일 출옥했다.

 

관련자료

東亞日報(1933. 8. 4 / 9. 15 / 9. 22)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안기봉 安基鳳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명목리 263

형량 : 태형 60

생몰년도 : 1895~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후 9시경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여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 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410일 안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60대에 처해졌다.

 

관련자료

犯罪人名簿(양성면)

 

안사원 安四元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낙원동

형량 : 현장 순국

생몰년도 : 1875~1919. 4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사람이다. 19193월 말부터 4월 초에 걸쳐 전개된 안성군 읍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년 311일 읍내에서 50 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328~30일에 걸쳐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31일에는 3,000명의 군중이 군청과 면사무소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고 등불 행진을 하였으며, 41일에도 500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당시 출동한 일본군의 발포로 2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때 희생된 것으로 추정 된다.

 

* 3·1운동 피살자명부에는 19185월 안성헌병파견대에 의해 총살되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19194월경 순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련자료

3·1운동 피살자명부

 

안재헌 安在憲

독립운동가 안재헌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안재헌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충북 음성군 삼성면 덕정리 522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원리

형량 : 징역 16

생몰년도 : 1900. 11. 2~1977. 6. 29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본적은 충북 음성군 출신으로 안성군 이죽면에 거주했다. 191941~2일에 걸쳐 양재옥( 梁在玉)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당시 죽산공립 보통학교 학생으로 41일 학교에서 학생 50여 명을 모아 독립만세를 외치고, 42일 전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등 만세운 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5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6월형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동년 620일 경성복심법원과 828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경성지방법원 1919. 5. 12 / 경성복심법원 1919. 6. 20 / 고등법원형사부 1919. 8. 28)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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