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독립운동가(2) - 권중옥, 김관기, 김기성, 김기은, 김대만, 김동식, 김만복, 김배관, 김백춘, 김병렬, 김보희
안성의 독립운동가(2) - 권중옥, 김관기, 김기성, 김기은, 김대만, 김동식, 김만복, 김배관, 김백춘, 김병렬, 김보희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9.03.0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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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기획연재-3

편집자 주 : 예고한 안성 3.1운동 100주년 특집,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기획연재는 먼저 지난 20178월에 안성시가 출판한 안성의 독립운동가에 소개된 316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번에 10명 이상씩 나누어 소개할 계획이다.(소개순서는 책자에 있는 대로 성명 가나다순이다) 31일 이야기 했듯이 여기 소개하는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안성시에서 현재 개정판을 준비중이다. 독자와 안성시민중에서도 관련 제보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제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쪼록 이 연재가 안성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중옥 權重玉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도곡리 193

이 명 : 權中七

형량 : 징역 13

생몰년도 : 1888. 8. 7~1960. 1. 15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저녁에 마을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뒤 이희봉(李熙鳳) ·손정봉(孫正奉) 등과 양성면으로 행진하여 오후 9시경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주재소에 도착했다.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 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 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는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13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김관기 金寬基

 

김관기
김관기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

생몰년도 : 1898. 7. 3~1957. 8. 10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건국포장(2001)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 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 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 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정부는 2001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376, 154, 248, 479

 

김기성 金基聲

 

김기성
김기성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207

이 명 : 金先敬, 金琪聲, 金啓成

형량 : 징역 5

생몰년도 : 1900. 2. 5~1946. 2. 2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국장(1991)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 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 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 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5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김기은 金起銀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매산리

형량 : 징역 10

생몰년도 : 1883~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건국포장(2012)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사람이다. 191942일 이죽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 했다. 이날 밤 그는 군중과 함께 죽산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보통학교 등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6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197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경성지방법원 1919. 6. 9 / 경성복심법원 1919. 7. 31)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173~174

 

김대만 金大萬

독립운동가 김대만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독립운동가 김대만의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장계리 /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운교리

형량 : 징역 4

생몰년도 : 1907. 4. 8~미상

계열 : 국내항일 포상훈격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장계리에서 출생했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받고 1930124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관련자료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김동식 金東植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석정리

형량 : 자결순국

생몰년도 : 1854. 1. 14~1909. 12. 27

계열 : 의병

포상훈격 : 독립장(1962)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사람이다. 경주김씨 상춘공파 18대손으로 호는 석정이다.

1907년 정미 7조약 체결 소식을 접한 후 가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의병을 일으켜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19198월 말 죽산군의 정주원(鄭周源)을 비롯해 양성군, 평택군, 용인군, 이천군, 진위군 등의 의병장들과 민군회의(民軍會議)를 개최한 후 장기적인 항일전쟁을 모색했다. 이후 화양동계곡을 거쳐 무주 덕유산, 장수, 남원을 지나 지리산에 요새를 구축하고 의진을 형성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고광순(高光洵) 의진 등과 합진하여 의병전쟁을 전개했다.

동년 910일 순창(淳昌)에서 순창우체국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고, 915일에는 다시 동복(同福) 으로 돌아와 동복순사주재소를 습격한 후 19일에 구례(求禮)와 영광(靈光) 의 일본 헌병분견소를 기습 공격하여 무기 등을 확보했다.

김동식·고광순 의병부대는 3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경상남도로 이동하여 거창, 산청, 안의 부근에서 전투를 이어갔다. 지리산 칠불사(七佛寺) ·연곡사(鷰谷寺) · 문수동(文殊洞) 등지에 근거를 마련한 뒤 동년 104일 하동경무서를 습격함으로써 영호남지역에 산재해 살던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그러나 이때 고광순 의진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어 이석용(李錫庸) 의병장과 의진을 재정비했다. 동년 1022일 이석용 의진과 함께 1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심원암(深院庵)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일본군 수비대 10여 개소를 습격하고 일본군 다수를 사살했 다. 또한 일진회원 및 친일파들을 숙청하는 등 항일전에 주력했다.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전쟁을 전개하던 중 일제의 전방위적 탄압과 의병학살이 이어지면서 19101227일 자결순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500, 711, 714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666~740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128, 129, 149, 155, 156, 181

고종시대사 6

 

김만복 金萬福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덕산리

형량 : 현장 순국

생몰년도 : 1853~1919. 4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미포상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사람이다. 191941~2일 이죽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년 41일 죽산공립보통학교 학생 50여 명이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나온 후 두현리 주민 수백 명과 함께 죽산주재소와 면사무소에 가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이기훈, 이용식, 최창달 등은 두현리에서 도로를 보수하고 있던 인부들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라고 권유하고, 윤상구, 조원경과 함께 마을 사람 수백 명과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42일 밤 죽산시장에서 2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죽산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보통학교 등지를 돌며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일제 경찰과 일본군의 발포로 시위자 중 3명이 사망하고, 8명의 부상 자가 속출하였는데 이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 3·1운동 피살자명부에는 이죽면 죽산국민학교에서 191935일 총살되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191941~2일 만세운동 때 순국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련자료

3·1운동 피살자명부

 

김배관 金培寬

 

김배관
김배관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칠곡리 515

이 명 : 金寬伯

형량 : 징역 3

생몰년도 : 1885. 1. 10~1977. 2. 3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1990)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했 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성은고개에 이르러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 아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 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동항리에 있는 양성주재소 앞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양성면민 1천여 명과 합류하면서 시위 군중이 2 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다. 또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의 건물을 파괴·방화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3년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 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175~177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422~482

 

김백춘 金伯春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덕봉리 244

이 명 : 金白春

형량 : 징역 26

생몰년도 : 1880. 3. 3~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애족장(2008)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사람이다. 191941일 양성면·원곡면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날 저녁 9시경 동항리(東恒里) 에 있는 양성주재소에서 1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여 돌아가던 중 횃불을 들고 성은고개를 넘어온 원곡면민 1천여 명과 합세했다. 오후 10시경 양성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양성우편소에 투석 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1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건조물 소훼·소요 혐의로 징역 26월형(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 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고등법원 1920. 3. 22 / 경성지방법원 1920. 8. 10 / 경성복심법원 1921. 1. 22)

東亞日報(1920. 7. 23)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5440, 442, 479~480

 

김병렬 金秉烈

 

본적/주소 :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산평리

형량 : 징역 6

생몰년도 : 1885~미상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대통령표창(2012)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 사람이다. 1919320일 천안군 입장면의 독립만세시 위에 참여했다. 이날 오전 10시경 양대리시장에서 사립 광명학교(光明學校) 의 교사와 민옥석(閔玉錫) 등 학생 수십 명이 직산금광회사(稷山金鑛會社) 광부 등 주민 약 70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이 약 3떨어진 하장리(下場里) 의 입장시장(笠場市場) 방면으로 행진하면서 약 600~700여 명으로 시위대가 늘어났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격렬하게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때 입장시장에 이르자 출동한 천안헌병대와 충돌하면서 남자 40, 여자 10명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4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文(공주지방법원 1919. 4. 28)

刑事事件簿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3117~118

 

김보희 金甫熙

 

본적/주소 :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두창리 549 /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만정리

형량 : 태형 90

생몰년도 : 1881. 3. 7~1954. 4. 29

계열 : 3·1운동

포상훈격 : 대통령표창(2015)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에 거주했다. 191942일 안성군 읍내면 장기리시장의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19196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관련자료

判決書(경성복심법원 1919.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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