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10월1일3면1단 - 金商의 好思想, 김경제씨의 됴혼사샹
양지군 고북면 하가리(陽智郡 古北面 下佳里)사는 샹민 김경제(金敬濟)씨가, 자래로 가계는 넉넉지못하나 공익샹이라던지 기타 인민개발하는 사업에 극히 유지하야 본년 봄 양지공립보통학교교사 증축비(校舍增築費)에 대하야 금 삼십원을 긔부하고 거번 명치텬황 어대샹에 샹쟝 육십여매를 부근 빈민에게 무료로 난호아 주엇다더라
기사에 등장하는 양지군 고북면 하가리는 지금의 안성시 고삼면 가유리 하가 마을이다.
또 기사에 등장하는 김경제(金敬濟)씨는 일제강점기 첫 고삼면장을 지낸 것으로 생각된다.
기자가 2011년 고삼면 마을을 취재한 내용에 의하면 김경제 면장은 화성 출신으로 고삼 면장으로 부임하면서 하가마을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의하면 고삼면장에 부임하기 전 이미 당시 고북면(현재의 고삼면)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각종 기부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당시에 고삼면 가유리에는 1920년에 세워진 김경제면장의 기념비가 남아 있었다
1912년10월3일3면1단 - 李氏의 出天孝, 리씨의 츌텬대효
경긔도 안성군 서리면 도긔(安城郡 西里面 道基) 칠통구호에 사는 리근태(李根泰)씨의 다삿재아들 리익훈(李益薰)은 나이 지금 십사셰인대 텬셩이 지효하야 비록 노비가 만흐되 그 부친이 병이 잇셔 신음하는즁 노비를 식이지안이하고 밤마다 자긔가 몸소 우물에 가셔 물을 길어다가 노코 하늘에 긔도하고 그 부친의 병이 회츈되기를 츅원하며 삼십년만 더 살게 하야달라하고 폭우가 올지라도 하로밤도 폐치안이하야 그 효성을 하늘이 감동하심인지 넉달동안을 신음하던 병이 쾌복되얏슴으로 사람마다 그 효셩을 칭찬한다더라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에 얽힌 사실과 관련해 기자가 알고 있는 사실만 제대로 이야기하자고 해도 꽤 많은 지면이 필요로 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도 적지 않다.
또 얽힌 사건들이 조선후기에서 해방직후까지의 안성 역사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담고 있고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흥미롭기까지 하다.
기회가 되면 따로 정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단지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기사에 등장하는 이근태(李根泰)씨는 당시 안성의 대표적인 부자중 한 사람으로 40리안에 남의 땅 안밟고 다닌다고 소문날 정도였고, 학교 증축이나 유치원 설립 등에 거액을 기부할 줄 아는 자산가이기도 했다.
특히 당시 양반중의 양반, 왕족인 전주이씨로서 갓수선을 통해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후 후손들사이에서 재산쟁탈전이 일어나 안성의 큰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손자중 한명이 명동백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봉구”다.
어쨌든 기사의 내용은 그런 이근태씨가 병이 생기자 그 아들 중 한명인 이익훈씨가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효성을 칭찬한다는 내용이다.
1912년10월12일1면2단 총독부공문: 부령,
조선총독부령 제23호 가옥세법 제 1조 제 3항의 규정에 의하여 동조 제1항의 市街地를 별표와 같이 指定함
대정원년 10월 10일
▲안성군 : 동리면, 서리면 본리, 석정리, 水舂村里
당시의 가옥세법 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뭐라 할 수 있는 기사다. 기자는 아직 당시의 가옥세법을 접하지 못했다.
참고로 기사에 등장하는 수용촌리(水舂村里)는 현재의 안성1동 가현동에 속해 있는 마을로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1912년10월19일2면7단 - 聯合農産品評會
京畿道 管下 各府郡이 聯合農産物品評會를 開催야 農民의 農業改良及發展■思想을 獎勵코져다대 其 聯合區域及期間은 左와 如더라
▲.....11월11일부터 同 14일까지 安城(陽智, 陽城, 竹山), ....
이와 관련된 기사가 매일신보 1912년 7월 27일자에 게재된바 있다. 이 연합 농산물 품평회의목적은 농산물 발달 rofiddf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안성에서는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열릴 예정이라는 일종의 홍보기사다.
1912년10월23일2면5단 本道參事諮問會
경기관하 각 부군의 참사자문회를 개최한다는데 기 구역 급 일할을 거하면 좌와 여함
....▲同(來 11월) 14일에는 안성에서 안성, 양지, 양성, 죽산...인데 개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로 정하얏다더라.
일제는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 행정구역별로 자문기구로 “참사(參事)자문회”를 두었다. 당시 안성 등의 참사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아직 자료를 찾지 못했다
1912년10월23일2면6단 - 安城水陸稻狀況
安城郡守 崔台鉉氏 該郡 本年度 水陸兩稻의 狀況을 調査야 京畿道廳에 修報얏대 兩稻의 作付反別은 二十五萬九百五十反인대 螟虫被害反別은 一万六千反, 白穗採集量은 一千四百四十貫이라더라
1912년10월25일1면3단 米作收穫豫想(12)
▲ 경기도 양성군 : 본년은 揷秧시기에 降雨가 無하얏음으로 其 時期를 失하야 作抦이 전년에 비하면 일반이 양호치 못하고, 특히 浮●●의 발생은 재래종에 다대한 해를 與하야 기 수확은 전년에 비하면 평균 2할 減의 예상.
1●步 평균 4두 수확 總高는 1,200石이 소망이오,
古米 殘存은 皆無인 상황인즉 新米의 成熟을 待하기 불능한 자가 전호수의 약 4분1을 점하고 ●●를 위하야 ●하는 상태이더라.
1912년10월31일1면2단 米作收穫豫想(17) 죽산
▲ 9월말경까지는 생육이 양호하엿으나 其 後 ●熟期에 入하야 해충이 발생한 고로 수확은 예상에 반하야 평년보다 1할 減收오
稍히 富裕한 자는 금년 米價 騰貴로 皆 저장치 아니하고 此를 賣出하고 빈곤한 농민은 8,9월 초순부터 早稻의 早刈를 위하야 食用에 供하야 目下는 古米 잔존이 無함과 如하고 신미를 식용에 供하는 중이오.
위의 세 기사는 모두 당시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인 농사와 관련된 수확예상을 보도하고 있다. 특히 뒤의 두 기사는 모두 1면에 게재된 기사다
양성, 죽산 등은 평년 혹은 전년에 비하면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12년10월31일2면6단 農産品評과 長官
기보와 여히 경기도 관하 경성부, 수원, 양주, 개성, 안성, 여주, 연천, 인천 등 8개소에서 각기 부근 군읍과 연합하여 농산물 품평회를 차제 개최할 터인데 차 기회를 際하야 檜垣 도 장관은 일반행정사무 급 其他 농산업발전할 사로 훈시 급 지시가 유할터이라더라.
앞에서 말한 농산물 품평회와 관련된 기사다. 기사가 이처럼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일제가 이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