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2
박종권의 사진에 담긴 이야기-2
  • 시사안성
  • 승인 2018.04.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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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전 판문점 주마 간산기 (1)
1960년 판문점을 방문해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개인소장)
1960년 고대 가톨릭 학생회의 일원으로 판문점을 방문해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촬영한 기념사진(개인소장), 필자는 맨 앞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이다

 

4. 19혁명에 의하여 자유당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민주당 정부로부터 고대 가톨릭학생회는 196010월 초에 당시 거의 불가능 했던 판문점 견학 선물(?)을 받게 되었다.

서울역 앞에 정차된 미군 버스 2대에 나누어 탄 우리 일행은 미끄러지듯 DMZ를 향하여 문산 쪽으로 달려갔다.

당시 1학년 신입생인 나는 다소 긴장이 되어 시계를 보니 오전 1040분이다.

미 공군, 해군헌병이 올라타 차내에서 신원 확인을 하고 혹시 납치당하지 않도록 이탈하지 말라는 주의사항과 함께 안내 팜플렛을 받았다.

미군 측 대기소에서 비표를 착용하고 남.북 대치의 극적인 현장 공동경비장 앞에 도착한 우리는 6.25후 처음 보는 인민군들 코앞에서 미군 MP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공동경비구역(JSA) 안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남북 대치형태로 지어져 있어서 마치 건물끼리도 대결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남측 콘서트건물이 있으면 북측 시멘트건물이 지어져 있고 목재전주가 서 있으면 콘크리트전주가 뻣뻣이 서 있다.

마치 UN측은 그 골치 아픈 현장에서 얼마 안 있다 떠날 듯이 임시 가건물로 되어있고, 북측은 영원히 사수할 속셈인지 아주 단단한 시멘트 건물로 꽉 박혀져 있다. (현재 판문점 JSA에는 모두 24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세워져 있다. 군사분계선(MDL)에 동서 방향으로 7채의 조립식 막사가 있고 그 가운데 T2 건물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이고 그 왼쪽이 T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 있다.)

1960년 판문점 UN측 초소 앞에 서있는 UN군 MP 와 미군 버스 (출처/안성맞춤박물관 기증사진)
1960년 판문점 UN측 초소 앞에 서있는 UN군 MP 와 미군 버스 (출처/안성맞춤박물관 기증사진)

 

첫 번째로 눈에 뜨이는 곳이 인민군 육각정이다. 이 건물은 당시 8개월 전에 북측 선전용으로 지은 곳인데 사실은 높은 지대에서 아래를 감시하기 위한 건물이란다.

좀 전에는 섬짓하게 보였던 인민군의 모습이 촌스런 군복 탓인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두 번째로 발을 들여 놓은 곳이 기자실인데 천정을 보니 전기 줄도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남북의 송전선도 다른 모양이다.

다음 우리들이 기웃거린 곳이 인민군 오락실인데 우리 안내원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한다. 그 때 건너편 육각정 쪽에서 인민군이 황급히 뛰어 내려오더니 들어가서 구경해도 좋다고 큰소리친다.

언뜻 보니까 당구대도 있고 잘 차려진 휴게실이었다. 몇 년 전 일인데 어떤 사람이 호기심에 들어갔는데, 납치되었는지 불과 몇 분후에 남측인사가 북측에 귀순하여 왔다고 방송하더란다.

1960년 함께 판문점을 방문한 고대 카톨릭 학생회(필자 개인소장)

 

다음 건물은 남북 공동당직실인데 이 건물 역시 반은 공산측이 반은 UN측이 사용한다. 가운데 전화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어 이 두 개의 전화기를 이용하여 서로 연락사항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중 한 대는 소위 조선 인민공화국이라고 써 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련제 전화기이다. (지금은 남쪽에 자유의 집’ ‘평화의 집, 북쪽에 판문각‘ ’통일각이 있다. 요즘 남북 고위급회담, 남북 정상회담 기사 등으로 언론에 각광을 받고 있는 자유의 집판문각에는 남북 간에 필요한 연락업무를 위해 쌍방의 적십자사가 상설 연락 사무소와 직통 전화 2회선을 설치해 놓은 상태이다.)

우리 일행은 다음 군사 정전위원회 회의실에 들어갔다. 중앙에 긴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UN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 때는 기 높이를 경쟁하다가 두 개의 깃대가 모두 천장에 닿은 적이 있단다. 지금은 약 40cm정도로 합의해서 설치해 놓았다.

마이크 장치도 두 개씩 되어 있는데 남측 마이크 줄이 조금만 경계선을 넘어가도 제대로 놓으라고 아우성을 치곤 한단다.

당시 본회의는 190차까지 진행되었는데 남측 수석대표는 콜링스 미 공군 소장이고 북측은 주창균 인민군 소장인데 이 사람은 전에 동독에서 심리학교수로 있던 자라 한다.

바로 이 장소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어거지 장소요 떼쓰는 현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북측 건물을 돌아서 중립국 감독 위원회 회의실에 도착했다. 스위스, 스웨덴 남측 대표 국가와 북측 폴란드, 체코의 국기들이 나란히 책상위에 놓여 있고 선전 포스타도 대조적으로 부착되어 있었다.

공산 측 중립국 포스타가 더 혼란스런 색상으로 인쇄되어 있어서 시선을 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휴전 상황을 감시할 목적으로 수립된 중립국 감독위원회는 현재 대한민국 측에만 스위스, 스웨덴 위원이 5명씩 공동경비구역 남측 비무장지대에 주재하여 있고, 소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측에는 어느 국가의 감독위원 한사람도 주재하지 않고 있다. 과거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주둔지는 북측 분계선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이 건물을 북측이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1961년 10월 15일 고대가톨릭학생회 (금곡 홍릉)문화탐방 (출처/안성맞춤박물관 기증사진)
1961년 10월 15일 고대가톨릭학생회 (금곡 홍릉)문화탐방 (출처/안성맞춤박물관 기증사진)

 

박종권(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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