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 안성관련 신문 읽기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 안성관련 신문 읽기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4.20 21: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매일신보 1910년 9월3일자 신문 1면이다. 이 날 2면에는 일제강점기 신문에서는 최초로 안성과 관련된 기사가 등장한다
매일신보 1910년 9월3일자 신문 1면이다. 이 날 2면에는 일제강점기 신문에서는 최초로 안성과 관련된 기사가 등장한다

 

기자는 안성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 무렵부터 틈틈이 황성신문을 비롯해 동아일보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신문에 게재된 안성관련 기사를 수집해 왔다.

그 계기는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했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중인 아무개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2005년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아무개 교수는 기자가 안성문화원 사무국장이기에 안성의 근현대와 관련된 사실과 사람들에 대해 질문했지만 부끄럽게 당시 기자는 그 대부분의 물음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개 교수는 당시 이미 동아일보에 게재된 안성관련 신문기사를 모두 읽고 자료화 했다고 말했다. 그 자료를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래도 염치가 남아서 그 말을 하지는 못하고 직접 자료를 수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의 신문기사는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당대의 고민을 알 수 있어 그 자체로 귀중한 1차 사료일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안성을 이해하고 안성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데 있어 소중한 자료임은 두 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 무렵 막 많은 신문자료 원문이 각 연구기관의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기 시작한 시점이라 일일이 국회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검색하던 아무개 교수를 비롯한 선행 연구자들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색 목록에서 찾아지지 않는 기사들도 적지 않아 때로는 일일이 신문지면을 살펴봐야 했고, 모니터를 보며 일일이 한글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당시에는 듀얼 모니터를 쓸 생각도 못했다)

한자 표현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그 한자도 지금은 쓰지 않는 한자도 많았고, 식별되지 않는 글자도 많았다. 기사에 나온 한자는 전후 문맥을 보고 짐작할때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면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인명의 경우 처음에는 빈칸으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기사에 나오는 식별 가능한 한자를 보고 유추해내기도 했다.

이렇듯 주먹구구식으로 시작한 작업이 처음에 동아일보로 시작해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동아일보 발행시기와 겹치는 시기는 일부기사만 검색) 등에 게재된 안성관련 기사 수천 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한글 자료화했고 그 양이 원고지 수 만매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작업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이로 인해 안성에 대해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었고, 또 기자가 자치안성신문에서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을 연재할 수 있었던 배경중의 하나였다.

최근에는 포털 사이트에서도 일제강점기 안성관련 신문기사를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고, 또 황성신문 등도 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를 통해서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로서는 그런 기사들을 일부러 찾아 검색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거니와, 수천 건에 이르는 기사들을 다 찾아보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러한 신문기사들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전후 맥락, 당시의 언어나 풍습, 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된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기자 역시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많이 부족하다. 더욱이 자료화 한 후 시간이 제법 흘러 그나마 이해했던 부분도 기억에서 사라진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자료를 접하고 안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이 자료가 좀 더 다양하게 해석되고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어 그동안의 견문을 바탕으로 시사안성에서 일제강점기 안성관련 신문 읽기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에 연재하는 기사는 시간적으로 보면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이고 매체로 보자면 주로 매일신보와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안성과 관련된 신문기사다.

이시기에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 중앙일보 등이 발행되었지만 기자의 부족함으로 매일신보와 동아일보가 주된 대상이었고(조선일보의 당시 기사는 아직 공유되지 않고 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매일신보의 경우 동아일보가 발행되지 않던 시기인 1910년에서부터  1920년 3월까지의 기사와 194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사를 중심으로 했다.

모쪼록 이번 연재가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는 바람이다.

독자와 안성시민, 그리고 각계 전문가의 많은 참여와 지도편달을 간절히 소망한다.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된다. 사진은 동아일보 1920년 4월 25일자 1면이다.이 날  동아일보에 최초로 안성과 관련된 기사가 등장한다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된다. 사진은 동아일보 1920년 4월 25일자 1면이다.이 날 동아일보에 최초로 안성과 관련된 기사가 4면에 등장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8-04-21 01:44:32
좋은 자료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