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뫼마을의 기타 부속 시설물
덕뫼마을의 기타 부속 시설물
  • 시사안성
  • 승인 2018.11.2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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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일의 해주오씨 정무공파 이야기 – 덕뫼에서 세거 500년 – 20(마지막회)
해주오씨 정무공파 재실
해주오씨 정무공파 재실

 

1) 해주오씨 정무공파 재실(齋室)

해주오씨 정무공파 재실은 2010년에 세운 종중회의 및 우천시 시제를 모시기 위한 건물이다. 재실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이 건물은 해주오씨 정무공파종중의 재실로서 후손들이 모여 선조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중중의 대소사를 함께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본래 이곳에는 덕파루(德坡樓)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낡고 협소하여 200712월 종중이 뜻을 모아 새로운 재실을 건축하기로 결의하고 3년 여의 공사 끝에 201011월 완공하였다.

건물은 크게 경모재(敬慕齋), 숭문각(崇門閣), 덕파루(德坡樓), 천덕정(天德亭) 기타 편의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경모재
경모재

경모재는 본당으로 우천시 실내에서 시제(時祭)를 받들수 있게 제단을 별도로 설치하였고, 종중회의 및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넓은 대청으로 꾸며져 있다.

숭문각은 종중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사무실과 중중의 역사 자료 등을 전시할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덕파루는 기존의 재실로 선조들께서 이름 지으신 본래의 뜻에 따라 후손들을 교학하는 장소로 그 기능을 겸하게 하였으며, 천덕정은 휴게 공간으로 마련한 정자이다.

기타 부속시설로는 경모재와 천덕정 아래로 이어진 곳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식당이 있고 재실 주차장에는 사우정(四友井)으로 이름 지어진 약수대(藥水臺)가 놓여있다. 그리고 경모재와 덕파루를 출입하는 봉선문(奉先門), 성오문(省悟門)이 설치되어 있으니 후손들은 이 문을 드나들면서 선조들의 자취와 숭고한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잘 보존하여 위로는 조상님들께 욕됨이 없고 아래로는 후손들에게 그릇된 행실이 없도록 항상 살피고 깨우치라는 의미를 담았다.

증 숙부인 풍산심씨 영모각
증 숙부인 풍산심씨 영모각

2) 영모각(永慕閣)

영모각은 증 좌승지 오경운(吳慶雲)의 배위로 증 숙부인을 증직받은 풍산심씨 할머님(? ~ 1568)의 생생한 업적을 온전히 전하고 할머님의 은공을 영모(永慕)하려고 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에서 2015년에 세운 작은 누각이다.

전면에 안내문 표지석을 세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풍산심씨는 해주오씨 정무공파 할머님으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덕뫼)에 우리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신 분이다.

1525(중종 20) 유세창의 역모 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된 시아버지 오현경(? ~ 1525)과 남편 오경운(? ~ 1525)이 심한 고문을 받고 산음과 안음(현 경남 산청과 함양군 안의)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소식을 들은 할머님은 젊은 아녀자의 몸으로 당시 10, 7세 두 아들을 데리고 머나먼 현지에 달려가 두 분의 시신을 거두어 친정 연고지인 이곳 덕뫼에 안장 하셨다.

영모각 현판
영모각 현판

할머님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두 아드님께 억울한 누명의 화를 상기 시키고 언행과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법도로써 엄하게 교육 하셨다. 그 결과 장자 수천(1516~ 1586)은 충무위부호군, 차자 수억(1519~ 1594)은 무과에 급제, 경상좌도 수군우후가 되어 가문을 일으켰고 손자 정방(1552~ 1625)은 무과에 장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이어 조선 중 후기에 자손들 중 문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어 (문과 21, 무과 114, 음사 143) 명문 사대부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오늘날까지 500여 년간 자부심을 잃지않고 이곳 덕뫼에 세거하고 있으니 이 모두는 심씨 할머님의 은공(恩功)에 기인함이다.

이에 우리 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은 종원 총의 로 영모각(永慕閣)을 세워 효부, 열녀, 자모(孝婦,烈女,慈母)로써 심씨 할머님의 행적을 영원히 기리며 후손 모두가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숭모(崇慕)하려 함이다.

세거지 표지석
세거지 표지석

3) 세거지 표지석(世居地標識石)

덕봉리는 약 500여 년간 해주오씨 정무공파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오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를 긍지로 여기며 동족의식과 일체감을 진작시키고,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려고 201511월에 마을 입구에 약 5m 높이의 오석으로 만든 표지석을 세웠다.

앞면에는 海州吳氏貞武公派世居地(해주오씨정무공파세거지)라 새겨 놓았고 뒷면에는 유래를 기록하였다. 기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마을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덕뫼)1525년경부터 해주오씨 일족이 터를 잡고 5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오고 있다. 임란 선무공신 정무공 오정방(1552~1625), 경상도 관찰사 오숙(1592~ 1634), 증 영의정 충정공 오두인(1624~1689)올 위시하여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문과급제 21, 무과급제 114, 음사 143), 조선 제18대 현종대왕 3녀 명안공주의 시댁마을이기도하다.

191931항일 만세운동 당시에는 온 마을 주민이 적극 참여하여 19458.15해방 후 16명이 독립유공자로 표창되었다.

백련정
백련정

4) 백련정(白蓮亭)

오숙(:천파)공이 1626(인조 4)에 청주목사를 사직하고 한가로이 말년을 소요하려고 백련당(白蓮塘)을 만들고 그 옆에 지은 정자이다

백련재
백련재

 

5) 백련재(白蓮齋)

덕봉리가 문화역사선비마을로 지정되고 숙박 체험을 위하여 만든 숙박시설(한옥)이다.

 

오환일(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회장, 유한대 명예교수)

 

* 편집자 주 : 지난 2018년 4월 18일 첫 회를 시작으로 연재해 온  "오환일의 해주오씨 정무공파 이야기"가 이번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무리 합니다. 첫 회에서 밝혔듯이 이 연재는 지난 2017년 해주오씨 종중에서 발간한 책의 내용을 종중과 책의 저자인 오환일 교수의 허락을 받아 연재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오환일 교수와 해주오씨 종중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더 좋은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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