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다지기 선소리와 바우덕이 Ⅱ
지경다지기 선소리와 바우덕이 Ⅱ
  • 시사안성
  • 승인 2018.11.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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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남사당과 조선명창 바우덕이-16
사당패(독일인 헤르만산더 촬영, 1906-1907)
사당패(독일인 헤르만산더 촬영, 1906-1907)

노역자들을 위로해야 하는 이유는 경복궁 중건 사업이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대원군에게는 정치적으로도 어려웠지만 노역자들에게도 중노동이었다. 지경다지기를 하다가 발등이 깨지기도 하고, 짐을 지다가 허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일을 잘못한다고 도감(都監)에게 볼기를 맞기도 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 몇 번의 화재가 발생한 일이 있는데, 당시 이것이 실화(失火)인지 공사를 원치 않는 자들의 방화인지 의문을 가졌을 만큼 힘든 작업이었던 것이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런 힘든 작업에서 노역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공연을 자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전문 공연집단 뿐만 아니라 지역의 뛰어난 두레패들도 참가 하였다. 안성의 향토사가인 김태영의 안성기략(安城記略)에 따르면 안성에서도 마을 두레패인 석정동 두레패가 경복궁에 출전하였으며 1925년까지만 해도 농기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안성의 두레패들마저 경복궁에 출전을 하였으므로, 전문 예인집단이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당패인 안성 사당패들이 경복궁에 불려갔었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송석하 촬영 외줄타기(1938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송석하 촬영 외줄타기(1938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당시 공연패들이 지경소리를 했다는 것은 승정원일기경복궁영건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에 불려온 공연패들은 화랭이패, 무당패, 광대패, 무동패, 거사패, 거사·사당패 등 다양하게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평소 선소리를 공연의 중심으로 하는 사당패들이야말로 지경소리를 부르기에 가장 적합한 놀이패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놀이패의 공연은 관람과 노동을 같이 병행할 수가 없어 노역을 중지하고 공연 관람을 하여야 하므로 공사의 진척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경소리는 일을 함과 동시에 지경꾼들이 동참하여 선소리와 받는 소리를 하기 때문에 공연관람을 위한 시간을 특별히 뺏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공사기간에 특별히 공연시간을 따로 할애하지 않고도 경복궁 중건의 당위성을 퍼트리고, 노역자들의 피로도 위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경소리인 것이다.

건물 터를 다지는 공정에서 지경소리는 필수로 불려 졌으므로 전문예인집단 중에서도 당시 가장 유명한 청룡리 사당패는 반드시 경복궁 공연에 참석했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바우덕이패가 지경소리를 잘했다고 하는 주민들의 구전은 당시의 시대상황 및 사당패들이 선소리를 중심으로 한다는 사실과 상당히 맞아 떨어지는 신뢰성 높은 증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복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남사당패의 놀이종목인 꼭두각시놀음 대사에도 나온다.

 

마을사람 : “팔도 강산 유람을 하였으면 어디 어디 다녔나? 경치를 좀 일러보게.”

박첨지 : “어디 어디 경치를 일르라고? 들어 보게.”

() “팔도 강산 구경 간다. 팔도 강산을 유람 간다. 경상도 태백산, 상주 낙동강 구경하고, 전라도 지리산은 섬진강을 구경하고, 충청도 계룡산은 공주 금강을 구경하고, 황해도라 구월산은 황해수를 구경하고, 함경도라 백두산, 두만강 구경하고, 강원도 금강산은 일만 이천봉 구경하고, 경기도로 올라와 임진강 구경하고, 삼각산 나린 줄기 봉황이 주춤 생겼고나, 봉황 앞에는 대궐 짓고, 대궐 앞에는 육조로다. 왕십리 청룡되고, 동구재 만리가 백호로다. 서출동류(西出東流)하였으니 장안만호(長安萬戶)가 여기로다. 이런 구경 다하자면 며칠이 갈줄을 모르겠네. 한없이 놀고 가자.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위 최상수 채록본 꼭두각시놀음 대사에 나오는 삼각산 내린 줄기 봉황이 주춤 생겼구나, 봉황 앞에는 대궐을 짓고~ 왕십리 청룡되고, 동구재 만리가 백호로다라는 대목은 별건곤 기사에 나오는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이 넌즛 않았구나. 봉의 등에 터를 닦고 학의 나래에 집을 지으니. 둥구재, 만리재는 청룡이요. 왕십리, 낙산은 백호로다라고 하는 대목과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또한 남사당이나 걸립패들의 비나리에도 이와 비슷한 사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꼭두각시놀음 사설의 대궐 짓는 대목에서 사당패들과 경복궁 중건과의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유랑예인들의 대사에서 대궐을 짓는 대목은 그들과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꼭두각시놀음 사설에 나온다. 이러한 점이 바로 사당패들이 경복궁 중건에 참여를 하여 지경다지기 선소리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 후예들인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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