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2년7월6일2면3단 - 各地의 農況
▲京畿 竹山 : 麥作 成熟이 良好하야 前年에 比하면 三割이 增收되고 稻作은 適度의 潤澤을 得하야 七割의 植付를 終了하얏고 古米殘存高는 約 千石인대 昨年에 比하면 約 五割이 減少하얏고
1912년 6월 28일 당시 안성군에 이어 7월 6일에는 당시 죽산군의 농사현황이 소개되고 있다.
기사에 의하면 보리농사는 전녀에 비해 3할이 증수되고, 벼농사는 7할이 모내기를 끝냈다. 묵은살은 약 1,000석으로 전년에 비해 5할이 감소했다.

1912년7월9일3면2단 米價乍高乍低, 백암장의 곡가 적헐
경기도 죽산군 백암장에서는 수일전에 쌀값이 돌연히 폭등되어 한섬에 20여원에 달하야 민정이 극히 오오하더니 재작일래로는 삼사원 가량이 떨어져서 점차 안정되는 모양이라고 전설이 있더라
지금은 용인시에 속해있는 백암시장에서 쌀값이 갑자기 올랐다가 떨어졌다는 기사다.
요즘 증권시세를 보는 것 같다. 일반 투자자들로서는 요동치는 주가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돈을 버는 것처럼, 당시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1912년7월14일2면3단 陽城草鞋貯金
경기도 양성군에서는 일반농가의 부업이 無하고 徒食의 風이 有한 故로 객년말이래로 읍내 8면 19동리에 초혜제조저금조합을 設고 면내에 1戶를 搆한 者를 總히 조합원으로 하야 매월 10부이상의 초혜를 제조하야 매월말 조합장의 手를 經야 此를 賣却하되 其 代金 반액은 본인에게 교부하고 잔금은 우편국에 저금하는대 동 저금은 納稅 不時의 災害 급 他處로 이전하는 경우 외에는 지불을 불허하기로 규약한지라. 목하 조합원은 254명인데 此 저금액은 69원 20전의 다액에 달하야 성적이 甚히 양호하다더라.

1912년7월17일1면1단 사설 : 草鞋貯金組合
경기도 양성군은 自來로 일반농업에 상당한 부업이 無함으로 耕種을 畢한 이외에는 遊食遊衣하는 습관이 有하더니, 객년말 이래로 읍내 8면 19동에서 조혜제조저금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원으로 하여금 매월 10부 이상의 초혜를 제조하엿다가 월말에는 조합장의 수를 경하야 차를 매각하되 기 대금 반액은 본인에게 교부하고 잔액은 우편국에 저금하는대 동 저금은 납세 又는 불시의 재해 及 타처로 이전하는 경우 외에는 지불을 불허하기로 규약을 정한지라. 현하 조합원은 254인이오, 저금액은 旣히 69원 20전에 달하야 성적이 양호하다하니 仝郡 장래의 산업발전은 可히 預想하려니와, 某郡을 勿論하고 必 此를 모범하야 각기 지방의 情形을 隨야 상당한 부업을 경영하면 5년10년내에 전부 경제계의 대영향을 作할 줄로 思 維할지로다.
內地人으로 言할지라도 30년이전에는 일반인민의 경제상태가 조선 금일과 차이가 無하더니 往往 각종의 저금조합이 설립하야 此 地에 幾 個所가 出하며 금일에 幾 個人이 加하고 明日에 幾 個人이 加하야 인민의 腦裡에 근검저축의 사상이 充溢한 결과로 現下 如何한 부강을 득하였도다.
此로 推하야 觀하면 彼 幾個人의 幾部 초혜가 족히 경제계에 대하여 輕重이 無다 할지나 然나 我 朝鮮도 內地의 狀態와 如히 此 地에 幾 個所가 出하고 彼地에 幾 個所가 出며 금일에 個人이 加하고 明日에 幾 個人이 加하야 인민의 腦裡에 근검저축의 사상이 赤 極度에 充溢하면 조선도 내지의 금일을 見할 日이 有할지라.
조선은 고래로 저금기관이 缺乏하고 又 인민이 怠惰成慣하야 농업이외에는 소위 부업이 何物인지 不知함으로 풍년에는 족히 기아를 면하다가 若 불의의 재해와 불의의 손실이 유한 시는 溝堅에 顚連야 사망을 未免하니, 人이 遠慮가 無하면 近憂가 必有하다함이, 卽히 此을 謂함이라.
此는 其時 당국에서 장려지도가 無함으로 因함이니 장려지도는 姑舍하고 貪官虐吏는 反히 非理의 誅求를 加야 或 금전이 有한자이라도 敢히 활용치 못하였으니 어찌 관청을 依賴하야 저금할 思想이 有하얏스리오.
近日은 風氣가 一變할뿐 아니라 又 當局의 장려지도가 可히 周至하다 할지며 각지의 저금기관이 완비하야 국가의 信用을 표시하니 我 民族이 금일을 당하야 必 정신을 淬勵하야 倍道前進...(이하생략)
위의 두 기사는 지난 7월 1일 소개했던 매일신보 1911년 10월에 실렸던 기사와 비슷하다.
매일신보 1911년 10월 기사에서는 죽산의 저금조합을 소개하면서 사설에서도 다룬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7월 14일 기사에 이어 7월 17일에는 사설에서 관련 사실을 다루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양성면 주민들이 짚신제조조합을 만들어서 짚신을 만들어 팔아 저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번에 말했지만 전문지식과 그에 대한 해석능력을 필요로 하는 기사다.
아무튼 이들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일제가 저금을 장려했고, 기관지격이었던 매일신보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면에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저축”에 대한 하나의 기원을 알려주는 기사로 생각되고 흥미롭고, 한편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협동조합” 붐도 떠오르게 하는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