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중학교를 세우다
양성중학교를 세우다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10.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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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일의 해주오씨 정무공파 이야기 – 덕뫼에서 세거 500년 – 17
덕봉서원 정의당, 옛 양성중학교 교실 및 교무실

 

양성중학교가 덕봉서원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덕봉서원은 충신 오두인을 배향한 대표적 서원으로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훼철할 때도 존속된 47개 서원 중 하나다.

덕봉서원은 1695(숙종 21)에 창건되어 5년 후 (1700,숙종 26)에 사액서원이 되고, 1975년에 경기도 지방문화재 8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양성중학교는 처음 1946년에 양성향교에서 양성명륜공민학교로 시작하였다가 양곡 오두인(吳斗寅)의 사손(嗣孫) 오윤근(吳潤根)과 족손 오선근(吳先根)이 주선하여 1948년에 덕봉서원으로 옮기고 1952년에 정식으로 재단법인 양성중학원(이사장 오성환)인가를 받고 덕봉서원 정의당을 교실로 개조하여 그 해 111일에 사립중학교로 개편하였다.

이 때 학교 운영은 해주오씨 정무공파종중에서 담당하였고 (교장 오윤근), 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하여 1956년에 공립고등학교가 개교하기에 이르렀다(교장 허홍),

고등학교는 그 후 여건상 불가피하여 3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19612월 말 폐교되고 당시 재학생은 안성, 평택 등지의 학교로 전학 조치하였다. 해주오씨 정무공파종중은 재정형편상 학교 운영을 더이상 감당할 수 없어 1957년에 경기도에 재단을 헌납하여 중학교는 사립에서 공립으로 전환되었다. 그 후 학교 발전을 위하여 196312월에 면소재지 동항리에 교실과 부속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양성중학교가 개교하게 됨으로써 광복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 진학할 형편이 못된 이 지역(양성면, 공도면, 원곡면등) 젊은이들이 진학할 기회를 갖게 되고, 이것이 기회가 되어 후에 상급학교에도 계속 진학하여 사회 진출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이 지역 젊은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제공되었다 하겠다.

덕봉서원 입구에 있는 양성중학교터 표지석
덕봉서원 입구에 있는 양성중학교터 표지석

 

설립당시 초대 교장으로는 오윤근(吳潤根, 1894~1969)선생이 부임하였다. 오윤근 교장선생님은 아버님이 한말에 비서원경, 경기관찰사였고 할아버님은 한말 공조판서로 효정(孝靖)이란 시호를 받은 정무공파 종손이다. 해방 후 교육에 관심을 갖고 서원을 학교로 개편해 1952년부터 1956년까지 교장에 취임해 초창기 학교 기초를 정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양성중학교가 덕봉서원을 중심으로 설립된 것은 서원의 고유기능인 후생(後生) 교육목적에 입각하여 현대적 교육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에서 현대 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교육사업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였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일이다.

 

참고문헌

선비마을 안성 덕봉리2008.

안성사람 안성 이야기2005.

농재집단기 4331, 1982.

덕봉집2009.

 

오환일(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회장, 유한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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