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2년 6월1일 3면3단 - 導民向明의 面長, 리면장의 아름다온 일
안셩군 거곡면장 ○○○(安城郡 居谷面長 ○○○)씨는 그 면내 인민의 지식이 유치함을 개탄하고 각 동쟝을 열심 권유결과로 본샤신보(本社申報)를 구람케한후 신문대금을 자긔가 일톄담당하야 위션 삼개월 션금을 보내고, 신문을 청구하얏슨즉 리면쟝은 가히 면쟝의 책임을 극진히 한다고 하겟도다
지난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곡면장 ○○○씨가 각 마을 동장에게 매일신보를 구독하게 하고 신문대금도 부담한다는 기사다. 이에 대해 매일신보는 “면쟝의 책임을 극진히 한다”고 평가했다.
거곡면은 지금의 보개면 동신리, 양복리, 상삼리 일대를 말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른 면들과 함께 보개면으로 편입되었다.

1912년 6월5일 2면3단 - 本道麥作豫想
경기도청에셔 관하 각부군의 본년맥작상황을 조사하야 총독부로 보고함에 의한즉 작년에 比하면 보통증수함애 지하리라는대 차를 군별하면 左와 如하더라
府郡名 收穫豫想高 比昨年表
경성부 849石 1割5分增
광주군 1,7358,208合 2할8분
개성군 4800 4할9步
양평군 1反步7斗2升 2할
장단군 1,690 3할이상
남양군 1,200 1할
용인군 4,800 5할1步
파주군 2,772 1할
이천군 1,751 4할3보8厘
풍덕군 2551 1033厘
포천군 3,455 790
삭녕군 3,213 2할5분
안성군 1,933 2할
가평군 1,462 6할
통진군 4,500 大差別無
영평군 3,500 1할
마전군 3,125 3할
교하군 900 1할2보
음죽군 798 1할
진위군 1,126 2할
시흥군 6,680 2할
양지군 290 2할이상
양성군 1,694 185
이상외 모군에는 보고가 아직 도착치 안이하얏다더라
지금의 서울인 경성을 비롯한 경기도 23개 부군의 보리농사 상황이다. 당시 안성군은 1933석으로 전년에 비해 2할정도 늘어났고, 양성군은 1,694석으로 185석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당시 죽산군의 조사내용이 빠져 있다. 군수의 게으름이었는지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1912년6월5일2면6단 인사소식 柳참여관과 有賀부장
경기도참여관 유혁노(柳赫魯)씨는 부평, 강화 양군의 恩賜授産場 상황을 시찰차로 작일 해지방으로 출장하얏고, 내무부장 有賀光豊씨는 용인, 양지, 안성, 양성, 진위, 수원 등 군의 군치상황을 시찰차로 明6일해지방으로 출장하얏다가 來 10일 양성공립보통학교 개교식에 참여할 예정
경기도 참여관 유혁노에 대해서는 1911년 9월 24일자 기사에서 소개한바 있다. 다시 간단히 소개하자면 명성황후 시해사건때 일본군을 이끌고 왕궁에 침범하는 등 친일행각을 벌인자이다.
또 이 기사에 의하면 양성공립보통학교(현재의 양성초등학교)가 6월 10일 개교식을 가질 예정이다.
양성공립보통학교는 “양성백년사”에 의하면 1910년 “사립 적성학교”로 설립된 후 1911년 양성사립보통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가 1912년 2월 24일 양성공립보통학교 설치인가를 받는다.
이 기사에 의해 양성공립보통학교로 개교식을 한 날짜기 6월 10일임을 알 수 있다.
후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양성공립보통학교가 1919년 안성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벌인 곳이다.

1912년6월8일2면5단 인사소식
본도 有賀내부부장은 재작 6일 朝에 출발하야 8일간의 예정으로써 용인, 양지, 안성, 양성, 진위, 수원 각군에 亙하야 지방행정사무순시에 向하였는데 13일경에 귀임할터
유하(有賀)내부부장의 동정기사다. 6월 5일에 이어 6월 8일 기사까지 경기도 내무부장의 동정이 신문기사를 통해 자세히 알려지고 있다.
일제의 통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선전하기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