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안성기적의도서관만들기운동에서 2022년 양성작은도서관까지
2003년 안성기적의도서관만들기운동에서 2022년 양성작은도서관까지
  • 시사안성
  • 승인 2022.08.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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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의 단상 그리고 시인 금은돌

이제 내년이면 어언 20년 전이다. 20년전 안성기적의도서관만들기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도서관이 인간 사회의 심장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릴 때 꿈이 철강왕 카네기처럼 도서관을 만드는 사회사업가이길 꿈꾸었다. 아마 도서관을 만드는 사회사업가에 대한 꿈의 첫 시발점은 대학원총학생회장 시절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 총학생회장 시절 오로지 도서관만 집중하여 일을 하는 도서관부장을 신설하였다. 학생회 집행부원들이 처음엔 웃었다. 웃거나 말거나 그 후배였던 도서관부장은 학생회 오지 않아도 좋으니 도서관에서 공부해라 단 도서관 관련된 의제만 집중적으로 발굴해서 가져오기만 해라 요구했다. 대학원신문사 1면을 장식하는 것은 늘 대학도서관이었고 내가 직접 기고문을 썼다. 장서수, 사서수, 타대학과의 비교, 친절도 등등 1년 열두달 도서관이 학내 최대 이슈였다. 그때 대학원신문사 편집국장이었던 김은석은 그런 일을 함께 하면서 서로 연애를 하게 되었고 훗날 결혼을 하였다. 하여튼 그런 도서관운동으로 대학 도서관이 변했고 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인 모교수는 대학원 총학생회장인 나를 만날 때마다 고마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슈화가 되면 집단의 힘이 한 개인의 힘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안성에서 살다보니 제일 답답한게 안성 유일한 보개도서관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내려서 걸어가야 했고 도시 외곽에 있다보니 여간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이고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었다. 인재양성은 도서관!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안성의 후진적이고 뒤쳐진 의식에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비록 나는 책을 못볼지언정 내 자식과 후세대들에겐 책을 볼 수 있는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닌가 싶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마침 2003'MBC 느낌표 책책책을 읽읍시다'가 최고의 인기프로여서 전국민들을 TV에 몰두시키던 그 시절, 안성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과 동시에 안성기적의도서관만들기운동본부 사무국장을 겸임하더 시절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안성시민들의 요구였고 아젠다였다. 나만의 생각이 아닌 모든 시민들의 공통 생각이었던 것이다.

산하에 어린이청소년운동본부를 만들고 각 학교 초중고 회장들을 초대하였다. 안성시청 4층 대회의실에 모인 회장들, 말똥말똥하니 내 눈을 쳐다보던 어린이청소년 회장들에게 말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어린이청소년아빠엄마 서명받는 일이다. 수만명 서명을 받으면 안성에도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진다. 그 서명운동을 아저씨가 할까? 여러분들이 할까?" "저희들이 할게요!" 여기저기서 함박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하여 수만명의 서명이 단시간내에 폭발적으로 완료되었고 시민회관에서 어린이청소년들의 책 기증과 저금통 기증식이 진행되었다. 당시 주은청설아파트 부녀회를 중심으로 서명운동도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도서관 세워지면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다고 웃으면서 이 좋은 걸 왜 안합니까 하는 부녀회 주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웃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린이청소년아빠엄마는 팔 걷어부치고 매일 재미있게 서명운동한 것이다. 나도 1톤 트럭에다가 스피커를 설치하고 동네방네 돌아다녔고 내혜홀 초등학교에서는 직접 방송실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춤을 추며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저금통을!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자! 꿈은 이루어진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린이들마냥 참 순수했고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웃음이 슬며시 떠오른다. 어린이들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다. 내 결혼과 원효 아들 그리고나면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세번째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안성중앙도서관건립운동의 역사는 안성의 미래 주인공이었던 어린이청소년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해결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시 애드벌룬을 안성시청에 띄워올린 안성시 공무원들과 교육청 공무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든든하게 작용하였지만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안성의 어린이청소년들이었다. 2003년 그해 초중고를 다녔던 안성의 주인공들이 안성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안성중앙도서관이 만들어지자 공도는? 진사리는? 죽산은? 일죽은?...아양도서관은? 그리고 양성은?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제 보편성을 띄게 된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더 많은 도서관들이 단순히 책 읽는 곳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이 되어 안성 곳곳에 세워져야하고 소외됨없이 안성시민들 모두가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성이 발휘되고 자신들의 말랑말랑한 꿈을 꾸게 된다. 한 청소년(노인)이 불행하면 바로 나라가 불행하다는 생각, 옆집 청소년(노인)이 행복하면 우리집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함께 서로 협동하여 더 많은 복합문화공간 도서관을 만들자!

어린이청소년시민들의 서명용지 복사본과 당시 원효 엄마였던 금은돌(김은석)이 노무현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언론에 기사화된 내용과 활동 내용들을 책 2권으로 기록하여 중앙도서관에 남겨두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빌게이츠가 "나는 시골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자랐고 꿈을 꾸었다"는 말을...!

도시는 도서관과 철도만 가지고 부족하다. 더 창의적이고 더 다양한 분야에서 안성 시민들 스스로 무슨 무슨 운동을 해야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내 자식을 위해서~ 그런게 진짜 어른노릇이다! 역사는 스스로 만들어내야 자신의 역사가 된다. 2003년 안성 어린이청소년아빠엄마들은 안성 도서관 역사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안성의 위대한 시민들에게 박수를!

 

조천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성시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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