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덕봉리 해주오씨
3․1운동과 덕봉리 해주오씨
  • 시사안성
  • 승인 2018.09.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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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일의 해주오씨 정무공파 이야기 – 덕뫼에서 세거 500년 – 15
3.1운동 표지석
3.1운동 항쟁지 표지석(양성면 동항리)

기미년(1919) 31독립운동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려고 봉기한 민족의 항쟁이다. 그 중에서도 양성과 원곡의 항쟁은 일제가 민족 대표 33인을 재판할 때 원용한 전국 3대 항쟁지로 손꼽혔다.

양성의 31운동은 311일 오전 11시 양성공립보통학교 전교생이 갑자기 교정에서 부른 독립 만세가 기폭제가 되어 41일 밤 양성과 원곡면민 약 2천명의 군중이 동항리에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선열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찰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를 파괴방화하고 일본인을 축출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31독립항쟁을 펼쳤다.

양성지역 31운동에는 덕봉리 주민들이 크게 활동했다.

41일 항쟁에 앞서 양성공립보통학교 학생 전체가 311일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앞에서 주도한 사람이 덕봉리 남진우(당시 보성전문 학생)이었고, 양성지역 31운동 만세시위 주요 참여자로 구속된 사람은 총 22명인데 그 중 덕봉리 주민이 8(6명이 종인)이나 되었다. 또한 태장을 맞고 풀려난 인원 총 41명 중 덕봉리 주민이 15(10명이 종인)이나 되었다.

덕봉리 주민들은 41일 밤 동네 산 위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여기에서 오세경, 오세학 등이 주도하여 양성으로 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가 만세를 부르고, 보통학교로 가 만세를 부르고 돌아오려는데 원곡면 주민들이 몰려와 그들과 합류해 약 2천명의 군중이 주재소를 불태우고, 우편소로 몰려가 전화선을 끊고, 전신주를 불태우고, 면사무소로 몰려가 서류를 꺼내 불태웠다.

이 시위 군중은 계속하여 일본인 상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습격하여 가옥을 파괴하고 가구류 기물들을 꺼내 집 밖에서 불태웠다.

양성 31운동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사람, 구속 기소된 사람과 그들의 형량 및 광복 후 국가에서 서훈 받은 사람은 다음 표와 같다.

 

<> 양성과 원곡 지역 구속, 순국, 태형자 현황

 

양성면

원곡면

비고

구속자

22

138

종인 6

순국자

1

23

현장.경찰서.형무소 순국

태형자

41

0

해주오씨 종인 10

 

양성 원곡 지역에 43일 일본군 병력 25명이 투입되어 경찰과 합동으로 시위 참여자 검거에 나섰다. 그 결과는 위의 표와 같다.

여기에서 양성과 원곡 지역은 구속자에서 그 숫자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이는 양성에서는 비교적 주모자가 아닌 가담자는 태형으로 처리했으나 원곡에서는 주모자와 가담자를 분리하지 않고 전원 구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검거과정에서도 원곡면에서는 주모자를 검거하지 못할 경우 그들의 가옥을 방화한다고 위협했고, 실제로 가옥 여러 채가 불타기도 했다. 이와 같이 두 지역의 검거 과정에서 그 처리 방법과 처리 내용이 원곡면 지역은 양성면 지역에 비해 더 가혹했다.

이 까닭은 무엇일까? 덕봉리에 거주하는 몇 명의 노인이 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며칠 후 순사들은 마을에 들이닥쳐 시위 참가자 및 그 주모자 검거에 혈안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낌새를 눈치 채고 잠시 집을 떠나 숨은 상태였다. 순사들은 집을 수색하며 끝내 나오지 않으면 이 마을에 휘발유를 뿌리고 집을 모두 불사르겠다고 협박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겁에 질려 걱정하고 있었다.

이때 퇴전당 오득영의 부인 우봉이씨(1854~ 1925)는 서울로 올라가 이완용(1858~ 1926)을 만나 동네 사정을 이야기 했다. 이완용은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다가 그 이튿날 이씨부인을 모시고 안성 경찰서에 내려왔다 갔다고 한다.

해주오씨세보p. 20을 보면 이씨부인은 우봉이씨 이호석의 딸이고 이완용의 친가 누님으로 한일합방전 이미 결혼하였다.

이완용은 10살 때 판중추부사 이호준에게 양자로 들어가 명문 노론계인 도암 이 재 가문의 일원으로 한일합방 당시 총리대신으로 합방을 주도하여 일본의 신임을 얻고 많은 상금과

후작의 작호를 받은 친일매국노로 비난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런 까닭에 덕봉리에 대한 주동자 색출과 검거는 비교적 온건했고 웬만하면 태형으로 가볍게 처리하여 구속자가 의외로 적었던 것 같다.

한편, 양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일이었다. 이것은 안성지역의 만세운동 특히 양성원곡지역 만세운동의 전주곡이 되었고, 이 지역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산면과 함께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서 민족정기를 드높인 애국 항일운동의 대표지로 거족적 칭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선열들이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뤘다.

덕봉리는 비교적 많은 수의 인원이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나 그 피해는 다른 지역에 비할 때 적은 편이다. 이는 우봉이씨 할머니가 마을을 구하려는 헌신적 노력의 결과로 마을에서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친일매국노 이완용이 일제시대 양성원곡지역, 31운동의 주도적 활동을 한 덕봉리(덕뫼)를 위해 호의적 협조를한 것은 아이러니컬(Ironical:역설적)하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시 덕봉리 오씨들의 활동상을 표를 정리하였다.

 

<> 3.1운동 수훈자 중 오씨 종인 명단

(이름)

복역기간

서훈

비고

오세경

5

건국포장 애국장

숙헌공 11세손(오동천댁)

오세학

7

건국포장 애국장

숙헌공 11세손(오동천댁)

오정근

26

대통령표창 애족장

숙헌공 9세손(조가지댁)

오복영

3

대통령표창 애족장

숙헌공 8세손(도꼴댁)

오창선

3

대통령표창 애족장

백봉공 7세손(큰강거리댁)

오윤선

2

대통령표창 애족장

백봉공 7세손(노롤댁)

 

<>3.1운동 당시 태형자 중 오씨 종인 명단

(이름)

주소

당시 연령

형량

오영근

덕봉리

18

60

오용근

덕봉리

23

60

오정환

덕봉리

36

60

오창문

덕봉리

40

60

오철영

덕봉리

36

60

오충근

덕봉리

25

60

오태환

덕봉리

35

60

오탁영

덕봉리

44

60

오홍근

덕봉리

26

60

오화근

덕봉리

36

60

양성면 전체 태형자 41, 그 중 덕봉리 주민 15, 종인(宗人)10

 

양성보통학교 학생 3.11만세운동 기념표지석

 

덕봉리(덕뫼)는 항일의식이 특별히 강하였다. 여기에는 몇가지 연유가 있었다. 해주오씨는 명성황후(고종황제비)의 전 어머니 해령부부인 오씨의 친가이며, 명성황후의 오라버니 민승호(閔升鎬, 1830년 순조 30 ~ 1874년 고종 11)의 처가이기도 하다.

노주 오희상(吳熙常, 1763년 영조 39 ~ 1833년 순조 33)의 딸이 명성황후의 아버지 여성부원군 민치록(驪城府院君閔致祿)과 결혼하여 자녀없이 일찍 사망하였으나 해령부부인으로 추증(追贈)된다.

민치록의 재취부인 한창부부인 이씨의 무남독녀가 고종황제와 결혼하였기 때문에 추증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해령부부인 오씨는 명성황후의 전 어머니이고 오희상은 황후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또한 민치록은 민씨 세도의 거물 민승호(閔升鎬, 1830년 순조 30 ~ 1874년 고종11)를 양자로 들인다. 이로써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오라버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오치극(吳致克: 숙헌공6대손)의 딸과 결혼했다.

이로서 해주오씨 정무공파는 명성황후와 민승호의 외가인 동시에 민승호의 처가가 되었다.

또한 한말 을사늑약 후 오정근, 오형근, 오명근 등은 일제에 항거하며 무언으로 항일의식을 표출하며 관직에서 물러났고, 항일투사 김좌진 장군도 덕뫼오씨가 처가이다.

이같은 인연으로 오씨가문은 일본의 국권(國權)침탈에 특별히 항일의식이 강하였고 31운동 때도 오씨 집성촌 덕봉리 주민들이 양성원곡지역의 주도적 인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선비마을 안성 덕봉리2008.

안성군지1990.

안성사람 안성이야기2006.

농재집단기 4331, 1982.

해주오씨세보2013.

덕봉집2009.

 

오환일(해주오씨 정무공파 종중회장, 유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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