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어라!
춤추어라!
  • 시사안성
  • 승인 2022.06.30 1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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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량 교수의 노래하는 인문학
금강산에서 춤을 추는 필자와 동료 교수들
금강산에서 춤을 추는 필자와 동료 교수들

오랜 세월 동안 대학 안팎에서 3가지 예술 활동을 권장해왔다. “연주하라, 낭송하라, 노래하라!”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주며, 행복을 함께 나누는 예술 활동이 아닌가? 그동안 오래 별러왔던 항목 하나를 마침내 추가한다. “춤추어라!”

춤 얘기를 꺼내고 보니, 그 옛날 춤에 얽힌 사연이 떠오른다.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마지막 학기였다. 전공이 각기 다른 교수님들께 나의 진로를 놓고 진지하게 상담을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종교사회학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담당교수이신 오 신부님께 여쭈어 보았다. “제가 대학원에 가서 사회학을 전공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신부님은 대답하셨다. “사회학이야 전공 공부로는 너무나 좋지. 어떨 때는 너무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하니까.” 하지만 신부님은 장래 나의 여건을 고려하시면서, 독일문학을 계속 전공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셨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은사이신 이유영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즐겁고 멋진 일이야. 무궁무진한 정신세계를 탐험할 수 있거든!” 그때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몇 년 동안 지긋지긋했던 입시 공부를 끝내고 겨우 대학에 들어왔는데,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문은 그토록 즐겁고 멋진 일이란 말인가?

존경하는 은사님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그분이 행복감과 환희에 넘쳐 말씀하셨던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25살 때 평생 공부하는 학자가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는데, 내 결단의 불씨를 맨 처음 지피신 분은 단연코 이유영 은사님이시리라.

졸업한 후 곧바로 독일 유학을 가려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한 후, 나중에 독일 유학을 가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따랐다. 그래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후, 나는 마침내 독일로 향했다.

단기간으로 예상했던 공부가 뜻밖에 3년으로 길어졌고, 박사학위 논문 집필에 몰두하는 마지막 학기였다. 그런데 논문의 마지막 결정적인 대목에서 딱 막혀 도대체 풀리질 않았다. 한 달 가까이 하루에도 수 십 번 씩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듯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불현 듯 뇌리를 번쩍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예감했다. 아니 확신했다. 이제 드디어 박사학위를 끝내게 되는구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안을 빙빙 돌면서 환희의 춤을 추었다. 감격에 겨워 저절로 우러나온 춤이었다. 그것도 무려 15분간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마침 아내는 집에 없었고, 다섯 살 된 큰 딸 아이만 있었다. 아빠가 마냥 좋아하며 정신없이 춤을 추니까, 딸도 덩달아 춤을 추며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춤을 추다가 나는 몇 차례나 뒤돌아 딸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혜리야, 이제 아빠 박사학위 끝났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간다!”

금강산 춤의 여흥을 즐기는 필자와 홍순길 교수
금강산 춤의 여흥을 즐기는 필자와 홍순길 교수

내 인생에 그때처럼 감격과 환희에 넘쳐 춤을 추었던 적이 또 있을까.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노래하다가 행복감이 넘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옛날 대학에서 오 신부님이 말씀하셨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공부가 아무리 좋기로서니 아무려면 춤까지야 출까? 그러나 훗날 독일에서 나는 그분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아하, 그렇지, 그런 순간에는 도저히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지...

오래 전에 탱고와 살사 춤을 배워본 적이 있다. 춤을 제대로 배우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춤이 얼마나 매력적인 예술인지는 알 수 있었다. 흥이 나면 더러 춤사위를 펼친 적이 있었지만, 이제부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욱 기꺼이 춤을 추련다. 예술적 감동과 더불어 삶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나누는 자리라면, 내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으랴?

춤추어라!

춤추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정경량(노래하는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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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S KIM 2022-07-04 09:58:30
멋진 춤으로, 드디어 완성되는 인문학의 절정 경지,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할가 ᆢ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