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누에치기와 짚신 만들기- 매일신보 1912년 5월 기사(1)
슬픈 누에치기와 짚신 만들기- 매일신보 1912년 5월 기사(1)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8.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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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안성관련 신문읽기 – 16
매일신보 1912년 5월2일 1면 4단 -1
매일신보 1912년 5월2일 1면 4단 -1

 

매일신보 1912년 5월2일1면4단 -2

19125214단에는 조선총독부고시 제195호로 안성우편국을 안성우편소로 명칭을 변경하여 취급업무를 승계한다는 기사와, 196호로 안성우편소의 위치가 안성군 동리면 동리로 소개되고 있는데 아쉽게 번지수가 빠져있다.

5234단에는 전에 소개했던 가좌리 살인사건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복심법원에서 두 남녀에게 모두 사형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 이미지와 내용은 생략한다

매일신보 1912년 5월8일 2면4단
매일신보 1912년 5월8일 2면4단

19125824本道蠶種配付數

경기도청에서 관하 각군에 대하여 공동사육용으로 치잠종배부수(稚蠶種配付數)를 거한 즉 양주 70, 수원 20, 광주 40, 개성20, 양평 150, 강화50, 여주 15, 남양 20, 용인 20, 파주 15, 이천20, 풍덕 15, 포천 60, 죽산 40, 안산 15, 삭녕 48, 안성 20, 고양20, 가평 68, 통진 15, 김포 45, 영평 58, 마전 15, 교하 15, 시흥 42, 적석 15, 과천 30, 연천 15, 양지 80매이오, 일반 당업자의 용으로 배부수는 112, 송부수는 각군을 통하여 75건인데 일반인민등은 감독지도하에 재하야 열심사육하야 장래 호결과를 득함에 지하리라고 당국자는 예상한다더라.

 

잠업은 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에를 쳐서 고치를 생산하는 과정인데 양잠업이라고도 한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치잠(稚蠶)어린 누에를 말하는 것으로 경기도에서 적극 나서 각 군으로 나누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부된 수는 현재의 안성과 관련된 당시의 행정구역 중 양성군이 빠져 있고, 죽산 40, 안성 20, 양지 80매 등이다.

이 잠업과 관련해서는 3.1운동과 관련해 조선 민중이 직접 고통을 당하는 요인 중 하나로 뽕나무 밭의 강제 식부가 거론된다.

이에 대해 학계(“민중과 유토피아역사비평사, 2009)에서는 일본 국내의 방적업과 제사업 원료로 알맞은 면화와 고치를 생산하기 위해 재래종을 대신해 외래의 육지면과 일본종 뽕을 강제로 재배하게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결과 주요식물의 경작 면적이 감소하고 식량자급의 길도 곤란해졌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3.1운동 당시 민중은 뽕나무 묘목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잠업의 육성도 위에서 분석하고 있는 일본 국내의 방적업과 제사업 원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이 잠업과 관련된 기사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배경을 알고 읽으면 평범하게 넘길 수 없게 된다. 뽕나무 재배 하나에도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식민지 민중의 희생이 강요되는 것이다.

매일신보 1912년 5월16일 2면 3단
매일신보 1912년 5월16일 2면 3단

191251623단 학생의 草履 貯蓄

죽산공립보통학교에서는 해교 일반생도로 하야금 실업사상을 고발케 할 목적으로 상학 여가에 각기 초리를 제작케 하였는데 생도 등도 차에 주의 실시하는지라. 성적이 양호하야 점차 발전한 상태에 하는 고로 차를 포양키 위하야 제 3학년생 정완기, 동 심준섭, 급 제2학년생 이해청 등 소작품이 우량함으로 경기도청에 제납하얏고 해교에서는 일반생도의 소작품을 매각하여 기 대금으로 저축의 기본을 한다더라.

매일신보 1912년 5월 17일 1면 2단
매일신보 1912년 5월 17일 1면 2단

191251712社說, 學生草履 貯蓄

죽산공립보통학교에서는 일반생도의 실업사상을 고발키 위하야 상학여가에 各其 초리를 제작하야 기 대금을 저축하는데 히 기 성적이 양호함으로 차를 포양키 위하야 경기도청에 제납하얏다 니 이약 청년소아로도 상학여가에 한만유희를 불하고 기분 실업을 율습니 과연 국민계에 호개미범이라 위할지라.

해교의 발전은 예히 가상하려니와, 일반 유의유식하는 자류는 억역무괴부아

 

위에 등장하는 초리(草履)는 짚신이다. 죽산공립 보통학교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여가시간에 짚신을 만들어 팔아 저축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516일에는 기사로, 517일에는 매일신보에서 1면 사설로 게재하면서 칭찬하고 장려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실업을 장려하고 저축을 장려한다는 명분아래에 초등학생들의 휴식시간을 빼앗아 강제노동을 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다. 1면 사설을 통해 칭찬하고 장려하기는커녕 사설로 비판 받을 일이다.

당시 조선민중의 시각으로 봐도 곱게 여겨지지는 않을 일이다. 더욱이 그렇게 해서 저축한 돈이 결국은 일본 제국주의 본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신문기사를 읽는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일상을 통한 제국주의 침략을 좀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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