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선후배가 있어 농사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친구와 선후배가 있어 농사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 봉원학 기자
  • 승인 2018.08.17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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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농민 이야기 (1) ...개산리 농민 이병진 씨

편집자 주 : 농업은 생명산업으로 농업을 시작함으로서 인간은 인간다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안성은 도농복합도시로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도시에 비해서 큰 도시다. 그렇지만 농민은 고령화되고 농촌은 빈집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묵묵히 농촌에서 자신의 삶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시사안성에서는 안성시민과 함께라는 창간정신으로 안성 농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제보, 지도편달을 기대한다.

금광면 개산리 농사꾼 이병진씨
금광면 개산리 농사꾼 이병진씨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스스로도 차분한 성격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병진(44, 1975년생)씨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지는 4년밖에 안되었지만, 평생 농사를 지은 농사꾼의 아들이자 친구 그리고 선후배와 함께 농사에서 희망을 일구는 농사꾼이다.

토박이’ ‘토박이소리 많이 하는 동네가 안성이지만 이병진씨 앞에서는 왠만해서는 토박이 소리 하기 힘들다.

안성을 본관으로 하는 몇 안되는 성씨인 안성 이씨(安城李氏)로 수백년간 조상들이 터잡고 살아온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 내개산 마을이 고향이다.

평생 농사를 지었고 지금도 농사를 짓는 아버지 이윤근(82)와 어머니 남정내(78)씨 사이에서 4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라고 귀여움 받고 자랐다고 하는데, 동네에서 개산초등학교를 다니고 안성중학교를 다닌 후 기술을 배우고 싶어 평택에 있는 관련 학교로 진학했다.

개산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이때의 친구들 중 지금도 금광면에 남아 이병진씨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개산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이때의 친구들 중 지금도 금광면에 남아 이병진씨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금광면 개산리에서 평택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을 했다고 한다. 이후에 오산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나 자영업을 할 때도 4-5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개산리 집에서 통근했다고 한다.

학교 다닐때는 버스를 갈아타고 다니면서 통학을 했다는 것인데, 그만큼 동네와 고향이 편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니 현재 이병진씨의 삶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이병진씨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정비 기술을 익혀 직장생활을 하다가 오산에서 쌍용 자동차 부품 대리점을 직접 경영했다.

직원을 두 명이나 두고 경영했는데 2009년 무렵 쌍용차 파업 등으로 인해 2010년 자기 사업은 접고 이후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2014년말 아예 귀향했다.

타향에서 직장생활을 했다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시간을 금광면 개산리 집에서 출퇴근을 했기에 특별히 귀향이랄 것도 없었다. 2004년부터는 또래 친구들과 선후배 10여명과 함께 금광면 자율방범대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병진씨가 처음 축산을 시작한 축사에는 지금도 육우 송아지를 키우고 있다
이병진씨가 처음 축산을 시작한 축사에는 지금도 육우 송아지를 키우고 있다

이런 환경과 생활이 이병진씨로 하여금 농민의 길로 가게 했다.

아버지가 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논농사가 익숙했지만 현실적으로 논농사만으로는 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또 주변에 축산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축산을 먼저 시작했다

지금도 늘 곁에 있어 든든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육우 30여마리를 비교적 싸게 사서 시작했다.

이병진씨는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곁에서 도와줘서 든든했다. 축사를 빌리는 것부터 트랙터 등 농기계까지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던 적이 없다면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병진씨가 취재를 위해 찾은 축사에서 키우는 한우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병진씨가 취재를 위해 찾은 축사에서 키우는 한우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올해 부터 이병진씨가 짓기 시작한 콩밭
올해 부터 이병진씨가 짓기 시작한 콩밭

 

이병진씨는 저보다 더 부지런히 살고 있는 제 친구들이야 말로 진짜 농사꾼들이죠, 20년 넘게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요. 그 친구들처럼 한눈팔지 않고 농사를 지었으면 지금보다는 괜찮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려구요. 매일 보는 그 친구들이 버팀목이자 선생님이죠라며 거듭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약 16개월 후 출하한 육우 가격이 괜찮았다. 그래서 그렇게 남은 돈으로 다시 소를 늘리고, 우사도 늘렸다. 지금은 한우와 육우 약 130마리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아버님의 논농사 5,000평에 올해 시작한 콩농사 7,000평까지 합하면 어엿한 농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한여름이라 낮에는 일을 못하지만 하루 일과는 새벽 530분이면 일어나 소밥주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축분 처리를 위해 올해 구입한 트레일러 운전석에 앉은 이병진씨
축분 처리를 위해 올해 구입한 트레일러 운전석에 앉은 이병진씨

 

여기에 축산과 관련한 전문지식을 익히기 위해 한경대학교에서 최고농업경영자과정을 수료하는 등 축산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열심히 물어보며 농사일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농사는 때가 중요하다는 아버님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것같고, 나름의 축산 철학도 생겼다.

그래서 당장은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밀식사육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에게 배운 것은 아니지만 한 칸에 8마리~10마리씩 넣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한 5마리 정도 넣고 있어요. 그래야 동물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그것이 결국은 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실제 이병진씨의 축사는 넓고 쾌적해 보였다. 축분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올해는 1,000만원짜리 트레일러도 2대나 구입했고, 축사에는 톱밥을 넣어 냄새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이병진씨의 축사에서는 얼굴을 찡그릴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병진씨는 농사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옛 말에 농사는 노력한만큼 거둔다고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농촌현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다만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그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역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마을에 기여할 부분이 있으면 기여하고 농민의 한사람으로서 금광농협에 기여할 부분이 있으면 기여하고 축협 조합원의 한사람으로서 할 일이 있으며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어 이병진씨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농촌에 기반이 없고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의욕만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주변에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트레일러 앞의 이병진씨
트레일러 앞의 이병진씨

이병진씨는 금광면에 또 래 친구와 선후배가 10명 이상되어서 항상 농사일을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병진씨의 사례가 안성농업이 가진 가능성이자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주고도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인적자원이 안성에는 구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병진씨가 귀향할 엄두를 낼 수 있었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병진씨가 지금처럼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자신의 희망대로 열심히 노력해 그 성과를 거두고 지역에 기여하는 진짜 농사꾼으로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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